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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타인의 경험을 융합하고, 신선한 자극을 주다

신진 작가 발굴 프로젝트…변하연 작가 

기사입력2021-05-03 18:10
김찬용 전시해설가 (art_inside@naver.com) 다른기사보기

행위예술계의 대모로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말했다. “우리는 항상 삶 속에서 좋아하는 것, 편한 것만 하려 합니다. 그래서 변하지 못합니다. 저의 해결책은 제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거나 그래서 실패하는 것을 포함해서요. 같은 방식으로만 그렇게 살다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경험하고 그 다른 경험을 공유하고 때론 충돌하며 각자의 인생을 완성시켜 나간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생의 궤적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경험을 융합해 예술로 선보이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작가가 있다. 다채로운 기법으로 자신의 예술을 선보이는 작가 변하연의 작품을 만나보자.

 

Q.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해달라.

 

저는 개개인의 삶과 그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우리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공통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작업에 담아내고 있어요. 또한 비()가시적인 것들, 예를 들면 사물과 사물 사이 간극에 머무르기만 하다 종국엔 사라지는 것들을 구체화시킨다든가, 불안정하게 지속되는 찰나를 캐치해 작업으로 연장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사회 공동체를 아우르는 시스템 및 제도 같은 것들의 영향력과 이러한 체계 속에서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펼쳐지는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Q. 유년기부터 잦은 거주지 이동을 통해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고 들었다. 이러한 경험은 작품세계 구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현재의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 계기가 있는가?

 

누군가에게 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할 때, 유년기부터 빈번하게 이어졌던 이사 그리고 오랜 해외체류 경험과 같은 잦은 이동의 기억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것들은 제 삶에서 절대적인 사건이었어요. 그렇기에 성인이 된 후 홀로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 영국에서의 삶은 제 자신이 주체가 돼 능동적으로 선택한 첫 이사였기에 처음엔 스스로 대단히 의미를 두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시작된 외국인의 삶은 저로 하여금 제 스스로가 어떠한 집단에서는 뼛속까지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분리감과 괴리감을 체감하게 했어요. 저는 유학생이라는 안락하고 편안한 위치에 소속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제도나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매 순간이 타인에게 라는 인간을 최대한 노출시켜 내가 그 나라에, 그 집단에 위험하지 않고 무해한 인간임을 증명하고 또 확인받는 과정의 연속이었거든요.

 

때때로 배척 당하고 자주 평가 받는 게 당연한 위치에 놓여져 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더라고요. 그 때부터 사회가 규정해 놓은 시스템이나 암묵적인 약속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계층이나 집단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온전한 타인으로만 살아가게 되는 순간과 다수 집단이 설립해 놓은 특정 영역에 편입되기 위해 분투하는 생존 과정을 작업으로 풀어내게 되었습니다.

 

Q. 자신의 작품세계가 잘 담긴 대표작을 추천해준다면?

 

첫 번째 개인전 무생물 아노미에서 보여드렸던 통상적 방식에 대한 무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타인의 참여로 시작되고 완성된 관객 참여형 작업이었는데요. 전시를 앞두고 장기 해외 거주자들 및 이민자들을 상대로 익명의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 답안들을 서류작업으로 전시했어요. 설문지 작업과 함께 전시된 오브제는 폴리우레탄 덩어리들이었는데, 이 덩어리들은 제3의 공간으로 입장해 새로운 곳에서의 앞날을 그리던 존재들입니다.

 

‘통상적 방식에 대한 무지’, 혼합매체, 가변크기, 2020.

 

그러나 이 덩어리들의 존폐 여부는 작가(본인)로부터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 받아 갑의 위치에 서게 된 관람객들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제가 미리 만들어 둔 폴리우레탄 덩어리 각각의 개인정보가 짧게 서술된 서류 낱장이 이 덩어리들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의 전부였습니다. 지극히 한정적으로 제공된 정보에도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마음이 기우는 덩어리에게 투표를 하였고, 탐탁지 않은 엉터리 시스템의 수혜를 받은 덩어리들은 제 다음 작업에 합류하는 걸로, 득표율이 낮았던 덩어리들은 폐기처분 되었죠. 이 과정은 상당히 앞뒤가 맞지 않고, 허술한 듯 하면서 나름대로 강제성도 띠고.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었는데, 해외에서 거쳐가야 했던 수 많은 심사과정에 대한 에피소드의 직간접적 경험을 토대로 즉석 투표를 받아야겠다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이 작업이 조금 더 애틋했던 까닭은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기 때문인데요, 설문지 속 여덟 개의 질문들은 이방인으로서 해외에 거주하며 필연적으로 거쳐가는 서류화과정에 대한 본질적인 궁금증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답변을 읽어 보시고 설문지 속 익명의 대상이 설명하고 있는 상황에 깊이 이입하거나 그 감정에 공감해 주셨고, 그러한 기분이나 경험을 모르지 않는다고 얘기해 주시기도 했어요. 신기했던 점은, 설문에 참여해 준 분들이 몸 담고 있는 도시나 국가가 모두 달랐는데요. 관람객들 중 왜인지 저 답이 특히 공감된다혹은 저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고 고른 설문지를 보면 묘하게도 그 관람객과 설문의 응답자가 거주 중인 국가가 같았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아주 조금이라도 일시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아서, 이 작업을 하며 저 혼자서만 아무도 모르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 건 아닌 것 같으니 정말 다행이기도 하고 재밌었습니다.

 

Q. 재료에 제한 없이 굉장히 동시대적인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호하는 표현 방식이 있는지?

 

표현 방식은 주로 작업에 쓰인 매체에 의해 큰 틀이 정해지는 것 같은데요, 선호하는 방식은 딱히 없지만 재료에 의미를 많이 두고, 재료가 가진 물질적 특성과 새 작업의 방향이나 주제를 맞춰 나가는 편입니다. 작업 매체는 모든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데, 주위 환경이나 길거리에 분리되어 있는 조각 같은 걸 보고 이를 퍼즐처럼 연결시켜 확장합니다.

 

작년부터 빠져 있는 미디움은 단열재와 도자기인데요. 단열재 같은 경우는 건축물 기준법에 의해 정해진 사용 가능 단열재의 종류나 단열 방식이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다는 글을 접하고 나서부터 관심이 생겼어요. 폴리우레탄 같은 경우도 대표적인 단열재 중 하나인데, 모양이나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만들 수 있던 게 자유로워 좋았습니다. 도자기 같은 경우는 흙이라는 무형의 덩어리에서 도자기라는 하나의 형체로 완성되는 과정이 가시적인데, 이 도자기 하나를 키워내는 데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정성과 온 신경을 기울여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Q.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준비하며 선보일 계획인가?

 

우선 다가오는 6월에 그룹전이 있어 새로운 작업을 만들고 있는데, 도자기 오브제와 함께할 예정이고요. 이후에는 다른 작가님들과 2, 3인전을 해보고 싶어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도자기 오브제를 활용해 크고 작은 설치 작업을 만들 계획인데요. 아무래도 여기에 관객 참여형 작업도 추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작가 변하연의 꿈은 무엇인가?

 

누구 한 명에게라도 특별한 의미가 되는 작업을 살면서 한 번은 만들고 싶어요. 의미가 있다는 건 그만큼 마음도 통했다는 뜻 아닐까요? 그리고 작업 형식에 대한 구애 없이 새로운 분야에서 다양하게 협업도 하고, 작업세계를 확장해 나가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찬용 전시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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