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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

변화하는 세상의 이치를 잘 헤아려야 한다 

기사입력2021-07-05 14:41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지난달 야당에서 30대의 당 대표가 선출되고 정치계는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몰아치는 듯 보인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 중에 상대적으로 젊은 50대의 후보가 주목을 받는가 하면, 정부부처에 청년부를 신설하자는 주장이 있기도 하고, 청와대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25세의 대학생을 1급 비서관으로 임명하는 등 기존에는 없었던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됐다.

 

30대의 당 대표를 선출한 야당에서는 20대의 어린 비서관이 도대체 무슨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느냐며 우려한다. 1급 공무원이라는 지위가 이른바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다음 30여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무사히 하고 나서야 다다를 수 있는, 그야말로 공무원이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자리가 1급 공무원인데, 25세의 젊은이에게 그와 같은 자리를 내어 주는 것 역시 불공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 관계자는 그 비서관이 앞으로 실력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지켜봐 달라고 한다.

 

이처럼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계를 중심으로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본디 변화와 혁신은 진보를 내세우는 지금 여당의 주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여당이 오히려 야당보다 개혁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을 만큼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여기저기에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어째서 변해야 한다는 것일까?

 

예로부터 인간 삶의 원리를 변화라고 본 학파는 노자(老子)의 도가(道家). 노자가 살았다고 하는 기원전 6세기 즈음 주()나라 말기는 이른바 춘추(春秋)시대로서 각 지역의 제후국들이 치고받으며 싸우던 전란의 시대였으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탐구했던 때이기도 했다.

 

오늘날 도(道)는 ‘사람이 가야 할 올바른 바른길’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도리’나 ‘이치’라는 뜻으로 쓰지만, 본래는 ‘우두머리’라는 뜻의 ‘수(首)’자와 ‘간다’는 뜻의 ‘지(之)’자가 합하여져 ‘가다’ ‘움직인다’라는 의미로서 노자는 만물의 생성원리라고 했다. <자료제공=문승용 박사, 출처: 漢字演變五百例 참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햇볕, , 바람 등이 모두 하늘로부터 땅에 전해지는 것이니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하늘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노자 역시 인간이란 자연 만물의 하나로서 스스로 그러한 이치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노자는 도덕경 25장에서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연원에 대해 말하기를 뒤섞여 이루어진 어떤 것이 있는데, 하늘과 땅보다 앞서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적막하고 소리도 없지만, 홀로 서서 바뀌지 않는다. 널리 두루 행해도 위태롭지 않으니, 세상의 어머니라고 부를 만하다. 나는 그것의 이름을 몰라 도()라고 하였다(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라고 해서 도()가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연원이라 했다.

 

오늘날 도()사람이 가야 할 올바른 바른길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도리이치라는 뜻으로 쓰지만, 본래는 우두머리라는 뜻의 ()’자와 간다는 뜻의 ()’자가 합해진 글자로서 가다’ ‘움직인다라는 뜻이다. 노자는 만물의 생성원리가 운행하며 변하는데 구체적인 형상은 없지만, 그것에 의해서 현상계의 모든 만물을 생성한 원리로서 세상의 어머니(天下母)’라는 의미에서 그것의 이름을 도라고 지은 것이라고 했다.

 

노자는 도덕경 1장에서 도의 개념을 정의하기를 도를 말할 수 있으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할 수 있는 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없음은 천지의 시작을 이름한 것이고,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를 이름한 것이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라고 했다.

 

여기에서 노자는 우주 만물의 생성 연원인 도란 것이 늘 변화하는 상도(常道)이기 때문에 그 도를 무어라 일정하게 규정해 버리면 그때부터 그것은 본래의 성격을 잃게 되어 더이상 늘 그러한 도일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만물이란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서안(西安)에서 서남쪽으로 약 95Km 떨어진 누관대(樓觀臺) 부근에 노자의 무덤이 있다. 이것이 실제로 노자의 무덤인지는 검증할 수 없지만, 이 부근에는 노자와 관련된 여러 유적지가 남아 있다. <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그렇지만, 도를 말할 수 있다면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라는 것은 마치 나를 나라고 말하면 항상 그러한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으니, 이 말이 도무지 알 수 없는 궤변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나는 나라고 하는 순간 그 나는 1초 전, 2초 전, 3초 전의 나일 뿐이지 지금의 진짜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 이 말에는 세상 모든 것은 언제나 고정된 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세상 만물의 생성원인 즉, 도는 늘 변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노자는 도덕경 25장에서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라고 했듯이, 인간은 늘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치와 조화로워야 하며, 인간은 오직 그러한 자연의 변화에 잘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노자 도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순환하며 세상 만물이 어제로부터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면서 세상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듯이 노자는 세상이 움직이며 변화해 가는 그러한 이치를 도라고 했고 인간 역시 그렇듯 변화하는 도를 따라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이 늘 가난한 채로 있어야만 하고, 지배를 당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밑에서 평생을 굽신대고 살아야만 하는 것처럼, 세상의 질서가 변하지 않고 늘 그러한 채로 고정되어 있기만 하다면 이 역시 암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역시 희망이 있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왕조시대 우리나라나 중국을 지배하던 이념체계였던 유교(儒敎)에서 위와 아래의 절대적인 위계질서를 굳건히 지키는 것을 통해서 안정된 사회질서를 추구하다 보니, 변화하는 세계질서의 흐름을 외면하다가 근대산업화에 뒤처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이러한 변화에 뒤처지거나 거스르는 잘못을 거듭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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