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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고흐가 신던 구두인가? 아니면 둘 다 왼쪽 구두?

그림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고흐의 ‘구두’㊦ 

기사입력2021-07-20 11:56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빈센트 반 고흐, ‘구두’, 1886, 캔버스 위에 유채, 38.1×45.3cm. 암스테르담반 고흐미술관 소장.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세계적인 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그린 구두에 대해, 고단하고 남루하지만 그런데도 소박하고 경건한 농촌의 삶을 보라고 새로운 시각을 내놓자,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는 이 구두그림의 구두는 농부 여인의 것이 아니라 고흐가 신던 것이라고 주장하며 하이데거의 해석에 반박한다.

 

고흐는 구두 그림을 총 여덟 점을 남겼는데, 샤피로는 이 여덞 점 중 하이데거가 어떤 그림을 보고 이렇게 분석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편지를 보내서 물어보았고, 1886년 그린 구두그림인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는 1888년 아를(Arles)에서 고흐와 함께 지냈던 폴 고갱(Paul Gauguin)이 구두 정물화에 대해 고흐에게 들었던 말을 적어놓은 역사적 자료를 찾았다. 이를 통해서 샤피로는 구두그림의 구두가 파리의 도심을 활보하던 고흐 자신의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반 고흐가 그린 구두에 대해 자신의 공상을 넣어 말한 철학자 하이데거의 주장에서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 그림은 진짜 농부의 구두 한 켤레를 보면서 그렸다고 볼 수 없다.” “안타깝지만 그 철학자는 속고 있다.”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
샤피로는 그 구두가 농부의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그가 했던 말은 모두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반론을 제기한 미술사가 샤피로가 이 논쟁에서 이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라는 젊은 프랑스 철학자가 이 논쟁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데리다는 100페이지가 넘는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샤피로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1977마쿠라(Macula)’라는 잡지에 처음으로 이 논쟁과 관련된 대화체의 글을 실었고, 이후에 글을 조금씩 다듬어 논의를 정교하게 만들었다. 데리다는 이 글에서 하이데거와 샤피로 모두에게 질문한다.

 

그들은 이 구두가 한 켤레인지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이 물음에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다. “나는 이 구두가 한 켤레라고 확신할 수 없다. 이 구두가 둘 다 같은 크기인지조차 모르겠다. 왼쪽 구두의 꼭대기가 밑으로 처져 있어서 이 두 개의 크기가 같은지 파악하기 힘들다. 그것을 무시하고 보더라도 왼쪽이 오른쪽보다 더 작고 폭도 더 좁고 짧아 보인다.”

 

데리다는 이렇게 고흐의 구두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봤던 것이다.

 

이 구두는 보면 볼수록 더욱더 한 켤레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둘 다 왼쪽 구두로 보이지 않는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그는 하이데거나 샤피로뿐만 아니라, 그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이 구두 한 켤레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 켤레로 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구두를 농부 여인의 것으로 보는 하이데거와 화가의 것으로 보는 샤피로 모두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욕망 때문에 그렇게 본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해석은 자신의 상상을 고흐의 그림에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들이 신빙성 없는 말들로 고흐의 구두를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구두에 관한 해석은 더욱 모호해졌다.

 

이러한 논쟁을 보면, 고흐의 그림을 두고 세계적인 학자들이 주고받는 말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논쟁을 통해 그림의 해석은 풍부해진다. 그림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작가의 작업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앞서 말한 3명의 석학처럼 멋지게 논리적으로 해석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느낌으로 해석해 보는 것은 감상자의 권리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도 그림을 보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시도해보자. 그림 감상이 훨씬 즐거워지지 않겠는가.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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