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를 보호할 전문 독립기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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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금융소비자를 보호할 전문 독립기관 필요하다 ‘금융감독체계’와 ‘금융기관 지배구조’ 바꿔야 소비자 피해 막는다

기사입력2021-09-27 00:00

신동화 객원 기자 (hwa@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

금융기관의 공공성과 관련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 세 사건이 지난 8월27일에서 9월17일 사이에 있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전 우리은행장)에게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관련 ‘문책경고’를 결정한 금융감독원의 징계 취소 결정(서울행정법원, 8월27일), ▲‘금융산업 내부통제제도 발전방안’ 발표(은행연합회 등 6개 금융협회, 9월7일), 그리고 ▲손태승 회장에 대한 징계처분 취소 판결에 대해 항소하기로 결정(금융감독원, 9월17일) 등이다.

금융기관은 내부통제기준 마련하고 지키지 않아도 되나

50페이지를 조금 넘는 서울행정법원 제11부의 판결문 내용을 몇가지 문장으로 요약하면 ①법률의 해석에 있어 입법자의 의도가 함께 고려해야 한다, ②금융위원회의 위임을 받은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과 그 책임자를 제재할 권한이 있다, ③우리은행 각 영업점에서 내부통제기준이 준수되지 않은 것에 손태승 회장도 책임이 있다, ④그런데 현행 금융사지배구조법은 금융기관이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 마련’을 의무화하고 있을 뿐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제재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⑤우리은행의 문제점은 DLF 판매과정에서 내부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으며 적절한 내부통제기준 자체는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손태승 회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제재는 취소되어야 한다 등이다.

법원의 판결 요지를 더 단순하게 요약하면, 금융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규정 입법자는 금융기관이 내부통제기준을 형식적으로만 마련하면 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에서 해당 법을 입법했다는 것이다. 지키지도 않을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법으로 정했다? 당연히 이치에 맞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금융기관의 내부통제기준 마련으로 좁혀보더라도 법원의 결정 내용은 비판할 지점이 있다. 금융기관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규정을 ‘실효성 있게’ 마련해야 한다는 말은 곧 규정을 형식적으로만 갖출 것이 아니라 그 규정이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시스템 역시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조건은 명확한 권한과 책임 부여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손실이 예상되는 DLF를 일반 금융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전 임직원들이 내부통제기준상 절차를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 ▲다른 금융상품과는 달리 사모펀드는 원금손실조건에 해당해도 그 사실을 통지하지 않아도 되게 한 것, ▲준법감시인의 독립성과 함께 그 책임을 강하게 부여하지 않은 것 등은 모두 우리은행 내부통제기준의 빈틈이었다.

이에 참여연대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와 몇몇 국회의원들의 문제제기가 있었고, 금융감독원도 항소를 진행하기로 해 이 문제는 일단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금융협회가 선제적 ‘셀프’ 내부통제 방안을 발표했는데

손태승 회장의 금융감독원 징계취소 청구 소송이 원고의 승(勝)으로 결정나자, 이의 대응으로 자연스레 법령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금융협회들이 선제적으로 ‘금융산업 내부통제제도 발전방안’을 발표한다.

금융협회들이 제시한 주요 주장은 ①내부통제 결함 발견 시 이사회가 임직원을 징계하고 내부통제 개선계획을 마련하겠다, ②금융기관의 내부통제는 기관 자율에 맡기되 금융당국은 가이드만 제시해달라, ③금융사지배구조법을 개정한다면 내부통제기준을 “실효성”있게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을 삭제하고, ‘다수의 피해’나 ‘시장질서 저해’ 등이 발생한 경우에 한해서만 내부통제규정 위반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자체적인 내부통제 방안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지배구조상 ‘견제와 균형’ 원리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모펀드가 집중적으로 판매되던 2017년~2019년 각 금융지주회사의 이사회 원안가결률은 99%에 이르렀고, 이사회 구성원들의 역할은 사실상 거수기에 불과했다. 장기 연임 중인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사실 이사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경영진이 실적 위주의 경영방침을 고수할 때, 이사회가 금융소비자 보호 의무를 위반한 임직원을 징계할 동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관련 ‘문책경고’를 한 금융감독원의 징계 취소를 결정한 판결이 나오자, 자연스레 법령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중기이코노미

DLF 판매 당시 준법감시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영진이 전 판매직원을 대상으로 판매 교육을 실시하고, 성과평가지표(KPI)상 금융소비자 보호 항목에 가장 낮은 배점을 책정하면서까지 사모펀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분위기에서 준법감시인은 제 역할을 안 한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

또한, 금융기관의 내부통제에 관한 규정은 금융사고가 발생할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지 사후 제재를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이는 사실 아주 간단한 문제다. 자동차 과속운전에 벌금을 물리는 목적은 단순히 과속을 적발해 벌금을 많이 걷기 위함이 아니라 그에 따른 대형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이때 과속 여부는 처벌 수위나 손해배상 규모의 가중요소로 작용할 뿐이다.

금융사지배구조법상 금융기관의 내부통제에 관한 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내부통제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이유만으로도 제재할 수 있어야 대형 금융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한 후 내부통제 규정 준수 여부는 사고에 대한 제재나 배상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판단할 사항이다. 따라서 내부통제 규정을 위반하는 것만으로는 제재해선 안 되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제재를 받겠다는 금융협회의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금융 공공성, 산업 전체의 건전성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세 가지 방향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금융감독체계의 개편이다. 현 감독체계에서 금융위원회는 금융산업 선진화를 기치로 금융규제 완화의 첨병이 되어왔고, 금융위원회의 지도·감독을 받아 금융기관을 감시하는 금융감독원 역시 지난해 초 금융소비자 보호 조직을 확대·개편하긴 했으나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에 초점을 두고 있어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참여연대는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전문적으로 맡을 독립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어왔다.

두 번째는 금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이다. 금융기관 기관장과 경영진은 주주들에게 성과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이익추구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때 이사회는 금융소비자의 자금 보호 등을 위해 경영진의 수익 일변도 경영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금융기관은 타인의 자본을 기본으로 해 사업을 운영하는 조직으로 당연히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며, 이는 이사회가 제 역할을 수행할 때 가능하다. 이사회 구성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현재 금융소비자 등을 대변할 공익이사 선임, 근로자대표이사 선임,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및 운영의 독립성,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연임 제한을 위한 다양한 제도 개선안이 제안된 상황이다.

한편 금융기관이 고객의 손실을 무릅쓰고서라도 위험한 상품을 속여 판 사건은 해당 위험이 현실화되더라도 그 손실이 판매수익보다 크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자본시장법 및 같은 법 시행령 개정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방안이 마련되긴 했으나, 금융기관과 고객 간 정보비대칭성은 언제든지 금융기관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객을 주무를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금융기관이 무리한 영업행위로 이익을 얻더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그 이상을 배상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징벌적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도, 그리고 민사 손해배상소송 시 과실의 입증책임을 판매자로 돌리는 등 금융소비자의 법률적 힘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 역시 논의돼야 한다.

금융기관의 무리한 수익추구 경영은 비단 개인 고객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지난 키코(KIKO) 사태에서 수많은 중소기업인들이 흘린 눈물을 보았다. 금융에 대한 법률적 규제는 산업 전체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