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다시 새롭게 ‘감각’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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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어떻게 다시 새롭게 ‘감각’될 수 있을 것인가 미결정성의 미학…조현화랑 서울, 11월16일까지 김홍주 개인전

기사입력2025-11-09 10:00

조현화랑 서울은 지난 9월 2일부터 시작해 오는 11월 16일까지 김홍주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다시 불을 지핀다. 국내 현대미술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홍주(1945~)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극사실 회화, 그리고 서체와 구상 이미지, 실험적 조각까지 반세기에 걸쳐 회화의 ‘본질적 조건’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작가다.

전시 전경

이번 전시는 최근 신작과 과거 주요 작업을 한데 엮으며, 색채의 번짐과 선 긋기·흐름·중첩이라는 다양한 작법이 한 화면 안에서 의도와 우연을 병치시킨다. 동시에, 버려진 사물에 물감을 덧입히는 조각 또한 회화적 사유가 입체의 장르로 변주되는 현장으로, 평면과 입체의 경계조차 해체된다.

김홍주의 작업은 늘 고정된 내용이나 형상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남겨진 흔적과 발생하는 사건을 통해, ‘무엇을 그렸는가’라는 익숙한 미술 언어 자체를 비껴간다. 관람자는 남겨진 결, 번짐, 색의 흐름 앞에서 “보이는 것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고 사유하는가”라는 낯선 사고로 이끌린다.

김홍주의 그림에는 ‘정확히 무엇을 그렸는지’라고 단언할 만한 대상을 찾기 어렵다. 파란색·붉은색·초록색 등 순수한 색조와 번짐, 물과 천, 또는 세필의 반복된 결이 주연을 맡는다. 굵은 번짐과 얇은 선, 중첩된 붓질 혹은 물감의 중력과 시간, 이 모든 요소가 ‘의도와 우연’의 미묘한 긴장 속에서 오직 한 번뿐인 화면을 만든다. 회화는 구체적 형상, 도상, 표상에 매이지 않고, 그 순간의 사건과 체험, 감각하는 접촉의 결과다. 관람자는 도상 해석이나 도상학의 길이 차단된 채, 색채와 흔적에 감각적으로 머문다.

이번 전시에서 조각 오브제 역시 주목할 만하다. 모두 버려진 사물을 주워 토대로 삼고, 캔버스 작업 후 남은 물감이나 안료를 덧입혀 완성된다. 인체를 닮은 원형, 흐르는 물감이 그 윤곽조차 지워내는 대형 작품, 굳은 물감의 응고와 색의 울퉁불퉁한 흔적이 남겨진 소형 오브제 그 어느 것도 완결된 의미나 용도를 주장하지 않는다. 회화와 마찬가지로, 이 입체들은 생성-흔적-발생의 과정을 드러내며 ‘사건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김홍주 작업의 뿌리 깊은 철학을 말해준다.

아울러, 그의 작업 방식은 ‘발생-조건-체험-지각’ 네 고리를 반복한다. 캔버스에 물을 가득 머금게 하거나, 바인더 없이 생천 위에 안료를 겹겹이 얹는 등 재료의 특성과 접촉의 감각을 최대한 노출시킨다. 세필 붓질의 집적, 중력에 맡긴 안료의 번짐, 그리고 색의 결은 감상자에게 ‘무엇인가를 인식’하려는 습관을 해체시키고, 유예된 의미와 미결정성의 미학을 실현한다.

김홍주는 오랜 세월 극사실주의, 서체 회화, 자연주의, 오브제 등 여럿의 변화를 시도해왔지만, 그의 길은 늘 일관성 있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회화란 결국 무엇인가, 어떤 조건 아래서만 가능한가.” 하이데거의 예술작품론이 말하듯, 그의 작업에서 ‘진리’란 하나의 완결·표상·정의가 아닌 잠시 드러나다 이내 은폐되는, 끝없는 발생의 사건이다.

김홍주의 회화 앞에서 감상자는 ‘무엇을 그렸나’가 아니라, ‘나는 이 색, 흐름, 접촉에서 무엇을 감각하며 어디까지 세계를 사유하게 되는가’를 묻게 된다. 그의 작업은 결국 발생의 반복, 해체와 생성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 인식, 예술에서의 자유로운 사유 가능성을 제안한다.

그의 작품은 항상 완결에서 열림으로, 형상에서 흔적으로, 인식에서 감각으로 밀고 나간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동시대에, 김홍주는 ‘사건과 흔적’이라는 예술 본연의 언어로 회화와 세계를 다시 연결한다. 그리고 묻는다. 예술과 삶이 ‘무엇처럼 보일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다시 새롭게 감각될 수 있을 것인가.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