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편에서 변론하는 따뜻한 ‘우영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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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약자 편에서 변론하는 따뜻한 ‘우영우’를 바라며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보다 아픔에 공감하는 ‘법치주의’이어야

기사입력2022-08-16 09:45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은 입헌국가에서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정치원리는 법치주의라고 할 수 있다. 법을 근간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오늘날의 법치주의가 대체로 서양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법이란 것이 인류가 모여 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나 존재했다.

중국의 경우 법에 따른 통치를 주장한 학파가 나타난 것은 기원전 3세기 한비자(韓非子) 때로부터 비롯됐다. 한비자는 앞서 있었던 법치에 관한 여러 논의를 모아서 법가사상을 집대성했고, 시황제(始皇帝)는 법가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해 나라를 부국강병하게 하고 주변의 여러 나라를 통합,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족국가 진(秦)나라를 세웠다.

그렇지만 한비자의 법가사상이 집대성되기 이전부터 일반 사회에는 법률과 관련한 업무를 다루는 변론가(辯論家)가 있었다. 변론(辯論)이란 어떤 논쟁이 생겼을 때 사리를 밝혀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뜻으로, 법률적으로는 소송 당사자나 변호인이 법정에서 주장하거나 진술하는 것을 말한다.

변론에서 사리를 밝혀 옳고 그름을 따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루는 사항의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니, 어떤 사람이나 물건 또는 개념을 나타내는 ‘이름’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한자 해설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이름 명(名)’자를 “어두워져서 서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입으로 스스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冥不相見, 故以口自名)”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이름[名]이란 ‘저녁 석(夕)’자와 ‘입 구(口)’가 어우러져 있듯이, 저녁이 되면 어두워져서 어떤 사물인지 잘 분별할 수 없는 것처럼 일상에서 무엇인가 변별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서 이름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사유하고, 그 사유한 것을 말로 표현하고,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문자로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서 인류는 사회를 이루고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일찍이 공자(孔子)도 그의 정치사상 가운데 이른바 이름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해 내놓은 정명론(正名論)에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했다. 즉, 임금이 임금이라는 이름을, 신하가 신하라는 이름을, 아비가 아비라는 이름을, 자식이 자식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면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의식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老子)의 도덕경(道德經) 역시 도(道)와 덕(德)에 개념을 탐구한 저작이라고 볼 때 ‘이름’에 대한 탐구는 고대 중국에서 학파의 탄생과 더불어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서안(西安)에 있는 당대(唐代)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동상이다. 백거이는 안녹산 난 이후 피폐한 사회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일반 백성들의 삶을 시가로 잘 표현하였던 것처럼,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정치인은 물론 학자나 문인들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자 걱정하는 우환의식을 가지고 있었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그런데 공자의 유가나 노자의 도가와 같이 이른바 공식적인 학파라고 불릴 수는 없지만, 이름에 대해 탐구하는 학파로서 명가(名家)라고 불리는 이들도 있었다. 고대 중국 특히 주(周)나라 후반기인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로 진입하면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대변혁을 겪게 돼, 중앙의 왕실이나 지방 제후국들의 문물제도는 물론 일반 백성들의 생활과 관련된 의식이나 개념에서부터 사물의 명칭에 이르기까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원래 있었던 개념이나 명칭이 새로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들이 흔하게 나타나게 됐다.

명가에서는 당시 사회에서 혼란이 생긴 것은 이름과 실질이 일치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고, 모든 사물이나 개념의 이름[名]과 실질[實]의 관계를 바로잡아서 사회의 질서를 온전하게 회복해야 한다는 명실합일(名實合一)의 이상을 제시했다.

이처럼 명가는 이름과 실질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데에 이론적 관심을 두었지만, 일부 명가 학자는 변론가(辯論家)로서 당시 사회에서 벌어진 일반 백성들의 분쟁에도 참여해 시시비비를 가누는 일을 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심응람(審應覽)편에는 당시 일반 백성의 분쟁에 참여했던 명가 학자의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이 다음과 같이 실려있다.

정(鄭)나라의 어떤 부자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지나가던 이가 시신을 건졌다. 그는 부자의 아들에게 시신을 돌려준다는 조건으로 많은 돈을 요구했다. 너무 많은 보상금을 요구한다 싶었던 아들은 당시 변론가였던 등석(鄧析)에게 가서 의논했더니, 등석은 아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왜냐하면 시신을 건진 사람은 어디에다가도 아버지 시신을 팔 수 없으니 결국 아들에게 시신을 건낼 것이라고 했다. 한편 시신을 건진 사람은 더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역시 등석에게 가서 의논했다. 등석은 또 그에게도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왜냐하면 아들은 어디에 가서도 아버지 시신을 살 수 없으니 끝내는 더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등석과 같은 명가의 변론가들이 당시 민간에서 벌어진 분쟁을 해결하면서 얼마나 많은 수임료를 챙겼는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살다 보니 예나 지금에나 갖가지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분쟁을 현명하게 판단해 주는 것이 당시 등석과 같은 변론가의 역할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요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며 연일 시청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처럼 드라마가 많은 사람의 기대와 호응을 받는 이유는 자폐증을 앓는 드라마 주인공인 우영우 변호사가 천재적인 기억력을 발휘해 재판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늘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변론을 하고 있다는 점이 시청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어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법조인들 역시 젊은 시절 법조계에 들어섰을 때에는 사회의 약자 편에 서서 세상을 밝히고자 다짐했을 것인데, 오늘날 그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높은 학식과 전문적인 지식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분쟁을 해결해 준다는 것을 빌미로 때로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모름지기 법조인이라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자 걱정하는 우환(憂患) 의식을 잊지 않기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