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치기 하는 관행적이고 위계적 행동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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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갈라치기 하는 관행적이고 위계적 행동을 비판 몸을 통해 타인과 공명하는 작가…키키 스미스

기사입력2023-03-26 10:00

김현성 기자 (kimh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키키 스미스(Kiki Smith, 1954~)는 1990년대 신체미술 사조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신체미술은 몸을 이용한 행위예술로 이미 알려져 왔다.

1960년대의 신체미술 작가들이 몸을 예술의 수단으로 활용해 자신을 표현했다면, 1970년대 작가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인간의 극단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표적인 작가는 비토 아콘치(Vito Acconci). 1980년대 들어서는 여성의 신체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자 하는 페미니스트적 작품들이 등장했다. 사회적 성차별이나 여성의 욕망 등이 주제로 다뤄졌다. 1990년대의 신체미술은 한마디로 ‘페미니즘을 넘어서고자 하는 몸부림’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몸을 이용한 표현들이 더 과감해지고 솔직해졌으며,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육체에 대한 욕망과 복수의 성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가 미술판을 달궜다.

‘자유낙하’, 1994, 일본산 종이에 포토그라비어, 에칭, 사포질(표지_판지), 69×90.2cm. 작가 및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스미스는 1980~1990년대 여성성과 신체를 다룬 구상조각으로 세계의 관심을 받는다. 그녀가 작품을 대하는 철학적 태도는 주변의 크고 작은 모든 생명에 귀를 기울이며 상생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 삶과 죽음, 실제와 이상, 물질과 비물질, 남성과 여성 등을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남성이나 정신의 우위를 말한다거나 우월함과 열등함을 특정 기준에 따라 갈라치기 하는 사회의 관행적이고 위계적인 행동에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은 단정적인 해답보다는 비선형적 서사를 선택한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자유낙하’라는 작품은 판화이자 아티스북 형식으로 제작됐는데, 평면 매체에 입체적으로 접근한 조각가적 면모가 돋보인다.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책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벌거벗은 자신의 나체를 담은 사진을 적외선 필름으로 촬영해 동판 위로 옮겨 거친 느낌의 텍스처를 입힌 2차원과 3차원의 조각 사이를 넘나드는 작업방식을 취했다. 1994년도에 제작된 것으로 키키 스미스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불리는 대표 작품이다.

‘푸른 소녀’, 1998, 실리콘 청동, 인물, 91.4×49.5×55.9cm, 불가사리 146개, 1.3_17.8×1.3_17.8×6.4cm. 작가 및 페이스갤러리 제공. <사진=엘런 페이지 윌슨>

‘푸른 소녀’라는 작품은 성모 마리아를 소녀상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작가가 1994년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전시를 준비하던 중 예루살렘 시내에서 한 소녀를 우연히 마주친 것이 모티브다. 소녀가 두 팔을 곧게 뻗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성모 마리아의 전형적인 몸짓으로 기도, 경외, 축복을 상징한다.

“제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가 80대에 접어들어서 갑자기 여성주의 작가로 찬사받고 커뮤니티에서 추앙받는 동료 작가들의 모습을 보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지난 60년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서 자기 작업을 해왔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예술이라는 것이 사실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고요. 그것을 스스로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30년 전부터 여성주의 미술을 대표해 온 작가의 말이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