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없는 R&D 예산칼질, ‘불통’이 문제 더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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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명분없는 R&D 예산칼질, ‘불통’이 문제 더 키워 기초기술·미래과학 위기로 내몰고서, 건전재정 자랑이라니

기사입력2023-11-02 00:00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R&D ‘예산칼질’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과학계가 R&D 예산칼질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다. 명분없는 칼질 자체도 문제지만, 불통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지난 10월31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R&D 예산은 2019년부터 3년간 20조원 수준에서 30조원까지 양적으로는 10조원이나 대폭 증가했으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질적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라며, R&D 예산칼질이 대통령의 의지였음을 명확히 했다.

아울러, R&D 예산삭감을 통해 마련한 3조4000억원은 취약계층 지원에 배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정부의 불통에 과학계의 좌절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는 기초연구나 미래세대 과학자들의 연구기반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연구 중단이나 대학원생 감축 같은 흉흉한 얘기가 과학계 전반에 나돌고 있다.

정부의 R&D 예산삭감에 명분이 부족하고 정책과 연구의 일관성을 해친다는 구체적인 지적은 다양한 경로로 제기된 바 있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2024년 예산안 총괄분석’ 보고서 제1편은 “2024년도 예산안에서 보여준 정부의 R&D 예산 합리화는 국가재정운용계획 및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 등 그간 정부가 수립했던 중장기적 지출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종전 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R&D 지출계획은 32.0조원 규모였는데, 올해 새롭게 수립된 지출계획은 23.9조원으로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2027년까지 5년간의 R&D 지출 역시 당초 170조원 투자에서 145.7조원 투자로 크게 줄어 일관성이 떨어졌다.

보고서는 “2024년도 R&D 분야 예산안 내 재원배분에 있어서도 뚜렷한 방향·목표나 명확한 근거·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짚었다. “감액된 사업 중 완성도 높은 기술개발이 추진되어야 하는 단계에서 예산이 대규모로 감액된 사업(산업통상자원부의 전략 핵심소재 자립화 기술 개발사업)도 있는 등 감액의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근거를 들었다.

아울러 “정부는 2024년도 R&D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중장기적 시계를 갖고 합리적 기준에 근거해 정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규 또는 증액사업 역시 면밀한 검토 하에 편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비합리적인 예산안 편성은 R&D 관련 정책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저하하고 정책 신뢰도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민간의 R&D 투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R&D 예산삭감의 명분도 부족하고 내용도 잘못됐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오히려 예산칼질을 업적이라고 내놓고 자랑하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은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없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건전재정 기조를 ‘옳은 방향’이라고 호평했고,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사들도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등급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재정 건전화 노력을 꼽았다”고 말했다.

미래를 희생해가며 일관성없이 R&D 예산을 삭감하고서 이를 건전재정이라고 자랑하는 정부의 시각이 불통의 원인이며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대통령의 시정연설로 명확히 드러났다. 정부는 R&D라는 백년대계를 해칠 근시안적인 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기존에 수립한 중장기계획에 맞게 예산을 복원한 다음 명분없는 예산칼질에 대해 과학계에 사과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