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성평가’를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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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위험성평가’를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사업장 현실 고려해 개정했지만…홍보·공유·여건조성 안됐다

기사입력2023-12-18 00:00

몇 개월 전 ‘사업장 안전사고’와 관련된 기사를 준비하면서,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지원과 관계자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고용노동부에서는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위험성평가 중심 안전보건관리체계구축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의 만족감도 꽤 높다고 했다. 고용노동부가 진행한 컨설팅 후 산업재해 예방에 도움이 됐다는 의견이 81.5%로 집계된 것을 보면,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의식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고 본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정부에서 선정한 전문가로부터 체계적인 컨설팅을 받은 사업장의 만족감은 당장에 충족됐을지 몰라도, 컨설팅 이후 ‘자율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평가는 여전히 사업장에서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고용노동부의 컨설팅에 참여한 사업장 7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0.0%는 여전히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안전 전문인력 등 업무수행 인력이 부족해서(46.7%) ▲의무 사항이 지나치게 어렵고 불명확해서(24.4%) ▲업종별 맞춤형 컨설팅이 이뤄지지 못해서(15.6%)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또, 컨설팅에서 지적받은 사항을 모두 이행하기 위해서는 컨설팅 비용 외에 평균 6000만원이 추가로 더 필요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부에서는 ‘컨설팅 후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의식이 향상됐다’며 사업의 효용성을 부각하지만, 정작 컨설팅을 받았던 사업장에서는 ‘컨설팅을 받았을 때는 좋았는데,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왕좌왕하는 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우송대학교 소방안전학부 이동경 교수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에서 위험성평가를 실시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위험성평가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이에 고용노동부에서 모든 사업장이 원활하게 위험성평가를 따라 할 수 있도록 지난 5월22일에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을 개정했다. 그런데도 사업장에서는 이전에 해오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의 평가방법은 어땠을까. ‘몇 점 이상이면 위험’하다는 기준을 만들기 위해 곱셈, 덧셈, 행렬 등의 방법으로 위험성의 빈도와 강도를 수치로 계량화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1년마다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니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시행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 5월에 위험성평가를 개정한 이유다.

개정된 평가방식을 보니 확실히 간소화됐다. 중소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를 할 수 있도록 각 사업장의 여건에 맞게,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평가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또한, 위험요소를 확인하는 전 과정에 근로자가 참여하도록 했다. 사업장의 위험성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혹은 위험요소에 대해 잘 몰랐다 하더라도 근로자 스스로 ‘이 부분은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개정된 위험성평가에서는 이런 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에서 위험요소가 발견됐을 경우 개선될 수 있도록 기술지도부터 예산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 사업장 스스로 위험성평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우선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런데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위험성평가가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왜 이런 문제가 불거졌을까.

이동경 교수는 “위험성평가가 개정된 지 얼마되지 않아 사업장에서는 아직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컨설팅을 하기 이전에 교육을 통해 개정된 제도의 취지를 알게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홍보 부족으로 인해 현장에서는 위험성평가 개정내용도,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컨설팅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산업안전 관련 온라인 카페를 살펴봤더니 ‘위험성평가 받으라고 연락 오는데 이거 받아야 할까요?’, ‘안전보건공단에서 연락 오는데 광고 아닐까요?’, ‘위험성평가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양식 좀 받을 수 있을까요?’와 같은 질문들이 즐비하다.

개정된 위험성평가의 내용이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홍보와 교육이라는 기본과정은 빼먹고, 정부는 예산으로 사업장에 컨설팅을 진행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그러면 사업장 입장에서는 어떨까. 어느 날 갑자기 컨설팅을 해준다고 연락을 해오니 일단 받긴 받지만, 내용 파악은 제대로 되지 않고, 컨설팅 업체에서 해주는 대로 따라 하기 급급한 상황밖에 되지 않는다.

알맹이가 빠진 컨설팅을 받은 사업장은 ‘전문가가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외부에 위탁해서 위험성평가를 하기에 이른다. 의뢰를 받은 외부인 입장에서는 개선에 대한 부담을 느낄뿐만 아니라, 서류상으로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또 형식적으로 평가를 하기에 이른다. ‘자율성’에 초점을 맞춰 개정된 위험성평가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는 순간이다.

사업장의 편의를 고려해 평가방식을 현실화했더라도 현장에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정부는 ‘홍보’와 ‘공유’라는 기본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셈이다. 위험요소를 발견했는데도 이를 방치하는 회사는 없다. 위험성평가가 중요한 이유다. 이 중요한 사항을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로 돌아온다.

이동경 교수는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하는게 문제지,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를 자율적으로 잘 실시한다면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 도구임에는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위험성평가의 대원칙이 ‘자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면 사업장이 적극적으로 위험성평가를 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찾은 위험성은 ‘개선’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개선의 과정에서 규제의 형식을 띠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위험성평가가 형식적으로 되돌아갈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산업재해의 역사를 볼 때, 규제가 강하다고 해서 산업재해 비율이 떨어지진 않았다. 우리나라 사고사망만인율은 여전히 0.4~0.5% 수준에 정체돼 있다. 이는 OECD 국가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안전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려면, 우선 사업장 스스로 안전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중소기업에서 안전관리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위험성평가만큼은 기업의 규모, 인력, 기술력을 고려해 관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위험요소가 발견됐을 경우 개선될 수 있도록 기술지도부터 예산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 무엇보다도 개정된 위험성평가가 중소기업에서 활성화되도록 홍보해야 한다. ‘위험성평가를 받아보세요’라는 컨설팅보다 사업장 스스로 위험성평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