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이 어떻게 미술작업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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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소음이 어떻게 미술작업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하다 하얀 벽에 새겨진 하얀 별들…마르코 후지나토의 ‘별자리’

기사입력2023-12-13 09:53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쿵. 쿵. 쾅. 쾅.

여느 전시장이 그렇듯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공간은 고요했다. 그곳에서 들을 수 있는 건 전시공간을 서성이는 발소리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깜짝 놀랄 정도의 큰 소리가 전시공간에 울려 퍼졌다. 쿵. 쿵. 쾅. 쾅.

그리고 하얀 벽에 하얀 별이 하나씩 생겨났다. 벽이 움푹 패면서 하나씩 하나씩 별이 생겼다. 그 순간 우리가 보게 되는 건 야구방망이를 든 사람과 곳곳이 움푹 팬 벽. 그 사람은 다시 한번 벽을 향해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쿵. 벽에는 수천, 수만 개의 움푹 팬 별들로 가득했다. 결코, 낭만적인 별들은 아니다. 상처다. 폭력의 흔적이다. 하얀 벽에 새겨진 상처다.

벽을 향해 야구방망이를 내려친 사람은 특정인이 아니다. 그 당시 당신이 싱가포르 현대미술연구소(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에 있었다면, 그 사람은 당신이 됐을 것이다. 만약 2018년 시드니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당신이 시드니의 캐리지웍스(Carriageworks)를 방문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야구방망이가 벽에 부딪히는 순간 그 소리가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흠칫 놀랄 것이다. 그 조용한 백색 공간에, 오직 발소리만 들리던 그 공간에 울려 퍼지는 폭력적 소음에 자신의 행동이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나 호기심 정도의 의미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야구방망이의 흔적을 ‘별’이라 했다. 이 흔적을 이렇게 낭만적인 단어로 말하는 것은 단순히 이 벽면을 아름답게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벽이 ‘별자리’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공간에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하얀 벽과 야구방망이,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한 쇠사슬로 구성된 이 설치작품의 제목은 ‘별자리(Constellations, 2015)’다. 이 작업은 그 낭만적인 작품명과 다르게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폭력에 관해 말한다.

◇폭력과 소리 그리고 별들=‘별자리’는 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술가이자 노이즈 음악가인 마르코 후지나토(Marco Fusinato)의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시각예술 작품으로 채워져야 할 것만 같은 화이트 큐브 전시공간에 단순히 벽과 야구방망이, 그 둘을 잇는 쇠사슬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니멀리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 요소가 전체 전시공간을 구성하는 게 어색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작업이 단순히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서 이런 요소만을 전시장에 놓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단순히 벽, 야구방망이, 쇠사슬만이 작업의 요소가 아니다. 전시공간 전체가 작업에 속한다. 이 점이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벽을 힘껏 치라는 생경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작품에 흥미를 느낀 관람객은 누구나 쇠사슬이 연결된 야구방망이를 들고 벽을 강타하게 된다. 그 순간 쿵. 폭력적인 소리가 전시공간 전체를 울린다. 전시공간은 그 순간 하나의 커다란 울림통이 되어 사방으로 요동치며 소리의 울림을 키운다.

마르코 후지나토, ‘별자리’, 2015, 야구방망이, 쇠사슬, 내부에 PA 음향 시스템이 있는 특수 제작 벽면, 300×4000×150cm, 설치 전경, 싱가포르 현대미술연구소. <출처=Buxton Contemp Orary Art Museum, buxtoncontemporary.com>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방망이가 벽을 타격했을 때, 그 소리가 방망이를 휘두른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크게 전시공간에 울려 퍼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벽을 타격했던 관람객은 그 순간 십중팔구 흠칫 놀라거나 적어도 심리적 위축감을 느끼게 된다. ‘별자리’는 사실 시각적 작업이라기보다는 청각적 작업이다. 보이는 것보다는 육체의 행위와 그 행위가 유발하는 소음에 초점이 있다. 후지나토가 전시공간을 가로지르게 세운 벽은 단순한 흰 벽이 아니다. 46미터 길이의 이 벽 안쪽에는 120dB로 소리를 증폭하는 PA(Public Address, 공공 확성) 음향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관람객은 큰 소리가 야기하는 폭력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후지나토는 텔레비전과 기타 영상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폭력적 장면을 보면서, 이것이 어떻게 폭력과 연결되는지 그 문제의식 속에서 이 작업을 떠올렸다. 야구방망이와 쇠사슬은 그에게 스크린에 나타나는 폭력의 상징물이다. 사람들은 영상 미디어에서 폭력을 자주 접하지만, 실생활에서 그러한 폭력을 경험하거나 폭력적인 소리를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가는 증폭된 미디어 속 폭력적 행위를 전시공간으로 가져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지는 살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업이 바로 ‘별자리’다. 이 작업은 2015년 싱가포르 현대미술연구소에서 처음 선보였고, 2018년 시드니 비엔날레에서 다시 한번 전시되었다. 2015년 전시됐을 당시, 전시가 시작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4개의 야구방망이가 부러졌고, 그 이후 알루미늄 방망이로 교체했다. 전시가 마무리될 즈음엔 벽이 상당히 손상되어 벽의 표면이 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가거나 덜렁거렸다.

◇공기를 조각하는 방법=지하철 소음은 90데시벨(dB)이라고 한다. 공사장 소음은 110dB 정도. 그렇다면 120dB은? 사이렌 소리가 120dB 정도다. 이 정도 소리는 고통스러운 수준으로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

‘별자리’의 타격 소리는 120dB로 증폭되어 전시공간에 울려 퍼졌다. 이 작품은 위험한 소음이 발생시켰다. 층간 소음에도 칼부림 나는 현대사회에서 이 정도 수준의 소음이면 작품 철거를 요구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소음의 고통에 대한 민원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민원은커녕 관람객의 상당수가 전시장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벽의 곳곳이 움푹 패다못해 너덜너덜해졌다는 사실은 많은 관람객이 위협적인 소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경험하길 원했음을 알려준다.

작가는 전시공간이 관람객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모든 갤러리의 매력은 벽의 구조가 바닥과 어떻게 만나는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자 선이나 스커트 보드, 콘크리트 또는 마루판 등…. 갤러리의 입장과 태도는 이러한 결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며, 이는 관람객이 누구인지 결정합니다.” 작가의 머릿속에는 이미 전시공간에 관한 생각과 그 공간을 대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텅 빈 공간, 콘크리트벽, 평평한 바닥이 ‘별자리’의 소음을 어떻게 공명하게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 작업을 전시하기로 한 공간의 입장과 태도, 그리고 그 입장과 태도를 받아들이는 관람객까지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지나토는 자신의 작업이 ‘현대미술’과 ‘실험·노이즈 음악’으로 정의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를 미술가이자 (노이즈) 음악가로 부르는 것은 그가 소음을 연주할 뿐만 아니라, 소음을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기타 연주에 대해 “소음으로 허공에 조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리가 조각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움직이는 공기는 진동과 같다. 그는 듣는 것만큼이나 몸으로 느끼는 촉각에도 관심이 많은데, 강력한 앰프에서 뿜어나오는 진동은 귀로 듣는 것 이상으로 몸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앰프의 강력한 진동은 공기를 움직이고 바지와 셔츠를 펄럭이게 한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소리의 정지가 불러온 고요함은, 그 전환은 엄청난 동적 변화를 일으키며 일순간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후지나토는 이러한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을 ‘공기를 조각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소음으로 허공에 조각하는 것’은 경험을 조형하고 형성하는 것이라 한다.

작가는 현재도 소리가, 정확히는 소음이 어떻게 미술작업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 그는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호주관에서 200일간 라이브 사운드 퍼포먼스 전시 ‘DESATERES’를 진행하며, 노이즈 기타리스트로서 소음과 고요, 질서와 무질서로 무형의 조형성을 선보였다. 후지나토의 소리 조형성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