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삭감 R&D 예산…과기부는 책임회피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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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끝내 삭감 R&D 예산…과기부는 책임회피 일관 이권 카르텔 몰이가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예산 복구해야

기사입력2023-12-27 00:00

국가 R&D 예산이 끝내 4조원 이상 삭감된 가운데, 정부 담당부처인 과기정통부가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급기야 장관이 나서서 과학자들을 이권 카르텔로 몬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실은 종전에 R&D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기득권 세력의 부당이득”이라고 몰아붙인 사실이 있는데, 이에 대해 과기부 장관이 반박한 사실은 알려진 바 없다.

지난 22일 과기정통부 이종호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 R&D 예산에 대해 설명했다. 이종호 장관은 “R&D 예산은 6000억원 규모가 증액된 26조5000억원으로 확정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련한 당초안보다 국회가 증액한 사실만을 밝힌 것이다. 정부안이 지난해보다 5조2000억원 삭감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국회가 증액한 예산 6000억원을 합쳐도 지난해보다 4조6000억원 삭감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질의응답에서 이 사실이 지적되자, 비R&D 분야 삭감이 합쳐진 것이며 실제 R&D 분야의 삭감은 2조4000억원 규모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공연구노동조합은 22일 성명을 통해 “당장 연구현장에서는 내년 예산 확정이 계속 미뤄져 연구개발 수행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차질이 있었는데, 여전히 큰 폭으로 삭감된 채 확정된 결과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윤석열 정부는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객관적 이유도 없이 실체가 없는 카르텔로 연구자들을 매도하며 삭감하고, 연구현장의 저항과 국민적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 예산 복원 요구를 끝내 외면하다가, 연말에 이르러서야 겨우 조족지혈로 회복시켜 놓고는 마치 대단한 투자를 늘린 것처럼 자화자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R&D 연구자들을 카르텔로 지목한 사실에 대해 과기부는 갈팡질팡하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종호 장관은 앞선 브리핑에서 “저는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의 연구자분들께 한 번도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조성경 제1차관은 지난 12일 제74회 대덕이노폴리스포럼에 참석해 8가지 사례를 거론하면서, 특정 연구기관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거론하기까지 했다.

조 차관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이종호 장관은 “우리가 내부에서조차 논의한 바도 없다. 저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며, “(조 차관의)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해명했다.

장관과 차관의 말만 엇갈리는게 아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 행사 보도자료에서 “과학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정부 R&D 나눠먹기 등 기득권 세력의 부당 이득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낱낱이 걷어낼 방침”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이종호 장관의 “무슨 카르텔 그런 거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 R&D 예산 재구조화하는 것이 그런 것하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은 이같은 대통령실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심지어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R&D 원점 재검토 발언이나, 대통령실의 R&D 카르텔 지목에 대해 과기부 장관이 반박했다는 소리조차 들린 적이 없다. 정부 내부에서도 R&D 예산 삭감의 이유나 목표에 대해 제대로된 논의가 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R&D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가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R&D 예산 삭감을 주도한 무지한 공무원들”이 R&D 카르텔의 실체라고 비판하며, “국가과학기술의 미래를 위해 지금이라도 삭감 전 국가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삭감된 예산의 6분의 1정도의 복원으로는 국가과학기술의 후퇴를 막을 순 없다”는 이들의 우려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IMF 경제위기 시절에도 R&D 예산은 삭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즉각 예산 삭감 방침을 철회하고 내년도 R&D 예산 충원에 나서야 한다. 또 실체없는 카르텔 몰이에 대해 과학계에 사죄하고, 과학의 미래를 이끌 미래세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