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지속가능성 위해 을의 협상권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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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경제의 지속가능성 위해 을의 협상권 보장해야 함께 생존하는 거래환경 만들어 ‘상생’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사입력2024-01-03 11:30

신동화 객원 기자 (hwa@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

2024년 청룡의 해가 밝았다. 코로나19 유행과 인플레이션 등 연이은 악재로 모든 경제주체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지난 수년을 뒤로한 채, 새해에는 ‘돈맥경화’가 잘 풀려서 투자와 생산, 고용과 소비가 모두 선순환하는 한 해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 양극화가 심화되고, 부의 세습이 강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이는 한낱 꿈에 불과한 일이 될 것이다.

불균등한 ‘갑을 관계’는 소득양극화와 소비위축의 뿌리

2021년 기준 대기업 노동자의 월 평균 소득은 세전 563만원으로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 평균 소득 266만원의 2배가 넘는다(프레시안, 2023.6.11. 대-중소기업 노동자 임금 격차, 50대에는 2.4배까지 벌어져). 중소기업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83%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가계 다수의 살림살이가 빠듯하고, 소비 여력이 위축돼 있음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가계가 위축되면 기업의 매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 실적 역시 수출 감소와 적자를 기록했으므로 이러한 현실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러한 소득양극화의 기저에는 갑(甲)·을(乙) 경제주체 간 불균등한 이익분배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수요를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의 힘은 공급자인 중소상공인들로 하여금 본인들이 생산하는 상품·용역의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이에 충분한 이윤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상공인들은 피고용인들에 대해서도 낮은 임금을 제공하거나 고용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또한 중소상공인 스스로도 가계를 운영하는 만큼, 그들 스스로의 소비여력도 위축된다.

이미 기존의 대·중소기업과 수탁·위탁사업자 사이, 가맹·대리본사와 가맹·대리점주 사이에서도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꾸준히 지적돼 왔는데, 최근에는 대형 온라인플랫폼이 시장독점적 지위를 확보해나감에 따라 불균등한 갑을 거래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소상공인도 함께 생존하기 위한 거래환경 만들어야

소득양극화의 기저에는 갑(甲)·을(乙) 경제주체 간 불균등한 이익분배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물론 지금도 통상적인 갑을 거래관계에서 일방적이고 부당한 거래조건 강요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하도급거래, 가맹사업, 대리점거래에 관한 공정화법과 상생협력법이 존재한다. 이들 법률은 갑을 거래 시 계약서에 반드시 기재해야하는 사항, 부당한 거래조건 강요 행위의 유형 및 이러한 행위의 금지, 분쟁 발생 시 조정에 관한 사항, 그리고 법령을 위반할 시 제재사항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들 법은 모두 중소상공인들의 영업권을 보호하고, 불합리한 갑질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로서 의미가 있고, 시민사회와 여러 경제주체들의 요구에 따라 계속 개선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제도들은 중소상공인들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지지 않도록 갑질의 최소한의 한계를 정한 것에 한정돼 있다. 즉, 기울어진 시장 자체를 바로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궁극적으로 불공정한 거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을들이 주체가 돼 동등한 지위에서 거래조건을 협상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갑이 수요독점과 막강한 자본력을 전가의 보도로 삼을 때, 을은 공급조건을 통제함으로써 갑의 이윤 실현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대등한 협상주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을들이 단체를 구성하고 거래조건 협상에 나설 수 있게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하지만,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은 공동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을들의 단합과 교섭권을 제한하고 있다. 그나마 가맹사업법이 ‘가맹사업자단체의 거래조건 변경 협의’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가맹본사는 이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

경제의 지속가능성 위해…을의 주체화·협상권 보장돼야

이에 지난해 11월 정기국회와 12월 임시국회에 이르는 기간 동안 여러 중소상공인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 국회 내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주체들이 연대해 “을(乙) 협상력 강화 6법 통과”를 촉구했다.

그 주요한 내용은 ①가맹점주단체 신고제 및 협상권 도입하고자 하는 가맹사업법 ②대리점주들의 단체구성·협의권 도입 규정을 담은 대리점법 ③공급가격 결정을 위한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과 ④수위탁기업협의회의 단결권과 협의권을 보장하는 취지의 상생협력법 ⑤거래조건의 합리화 및 개선을 위해 열위적 지위에 있는 중소경제주체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과 ⑥플랫폼 이용사업자의 단체구성권을 담은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이다.

그러나 작년 마지막 국회까지 처리를 촉구한 법안들 중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가맹사업법뿐이었다. 하나의 법안이라도 입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다만, 현 정부가 그동안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에 대해 거침없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감안한다면, 개정 가맹사업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도 시행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열위에 있는 경제주체에게 정당한 영업 결실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국가경제의 선순환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을들을 주체화하고 공동으로 거래조건을 결정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제도개선이 이뤄질 때에야 비로소 새해 우리 경제도 청룡과 같이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