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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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역사적 사건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다 ‘아더랜드 II: 와엘 샤키, 아크람 자타리’전…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

기사입력2025-07-22 09:09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이 지난 6월 3일부터 시작해 오는 8월 17일까지 개최하는 ‘아더랜드 II: 와엘 샤키, 아크람 자타리’전은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두 중동 출신 뉴미디어 작가, 와엘 샤키와 아크람 자타리의 대표작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미 큰 반향을 일으킨 두 작품, 와엘 샤키의 ‘드라마 1882’(2024)와 아크람 자타리의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2013)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동시대 미디어 아트의 경향을 조명한다.

전시명 ‘아더랜드’는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세계’를 의미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실제와 허구,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다층적 이야기 공간을 창조한다. 관람객은 이 ‘아더랜드’에서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기억, 문화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생생한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된다.

와엘 샤키…제국주의와 민족의 기억, 오페라로 재현

와엘 샤키, ‘드라마 1882’, 2024,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48분 16초, ed.57,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집트 출신의 와엘 샤키는 중동의 역사와 신화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온 작가다. 이번 전시의 ‘드라마 1882’는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집트관에서 큰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19세기 말 이집트 우라비 혁명을 8장으로 구성된 오페라 형식으로 풀어낸다. 우라비 혁명은 수에즈 운하 건설 이후 프랑스와 영국의 영향력 확대에 맞선 이집트 민족주의 운동이자, 서구 역사가들이 ‘실패한 혁명’으로 간주해온 사건이다.

샤키는 이 작품에서 오페라,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해, 제국주의 시기 이집트인의 내면과 집단 기억을 다채로운 시각 언어로 구현한다.

특히 슬로우 모션으로 연기하는 배우들과, 꼭두각시 인형을 연상시키는 연출은 외세에 의해 조종당했던 당대 이집트인의 현실을 은유한다. 샤키는 “역사는 누구의 시선으로 기록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제국주의 시기의 역사를 재평가하는 동시대적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드라마 1882’는 48분 분량의 영상작품으로, 전시기간 중 매시 30분마다 상영된다.

아크람 자타리…전쟁, 소문, 그리고 인간의 존엄

아크람 자타리,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 2013, 영상 설치; 단채널 영상(×2), 컬러, 사운드/무음; 빈티지 의자 1개, 스툴 8개, 영상: 35분 58초, 1분 20초, 빈티지 의자: 85×56×44cm, 스툴: 44×37.5×37.5(×8)cm, ed.5/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레바논 출신의 아크람 자타리는 중동 현대사의 트라우마와 기억을 사진, 영상, 아카이브 작업으로 풀어내는 대표적 뉴미디어 작가다.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는 1982년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당시, 작가의 고향에서 이스라엘 조종사가 학교 폭격 명령을 거부했다는 소문에서 출발한다. 이 학교는 자타리의 아버지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곳이었다. 소문의 진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실제 조종사를 만나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과 도덕,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제목은 알베르 카뮈의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차용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적대적 입장에 놓인 두 인물이 어떻게 인간적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점에서, 카뮈의 문학과 자타리의 영상이 공명한다. 영상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샹송 등 프랑스 문화의 흔적이 교차하며, 레바논의 복합적 정체성과 문화적 특수성을 드러낸다. 관객은 전쟁의 상흔이 남은 도시 풍경과 성장기 소년의 일상이 교차하는 두 편의 영상 사이에서, 역사와 개인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오페라 극장과 영화관을 연상시키는 공간 연출로, 관람객이 마치 공연과 영화를 직접 관람하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해외 뉴미디어 소장품의 국제적 스펙트럼을 확인하고, 동시대 미디어 아트의 흐름을 국내에 소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더랜드 II: 와엘 샤키, 아크람 자타리’는 동시대 예술이 역사와 현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지, 그 치열한 사유의 현장을 보여주는 자리다.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예술이 만들어내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