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 있는 ‘기술탈취 근절 제도’ 실효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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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특허변리 흩어져 있는 ‘기술탈취 근절 제도’ 실효성 없다 계약체결 전 기술탈취 막고, 가해기업이 입증책임 갖도록 개선을

기사입력2023-04-21 11: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등은 20일 ‘스타트업 기술탈취·아이디어 도용 피해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주민 의원실>

#1. “모방해서 빠르게 개발하는게 소송·분쟁보다 훨씬 저렴하다. 막강한 자금력, 모회사 중심의 원활한 투자유치 등 애초부터 공정하고 건강한 경쟁은 불가능하다.”…골프장 운영 솔루션 개발기업 스마트스코어는 카카오VX가 스마트스코어의 제품을 무단 도용하고 모방했으며, 해킹을 통해 불법으로 망침입을 했다고 주장했다.

#2. “아이디어기술 탈취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구제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피해기업인 스타트업이 입증 책임을 지는 구조를 개선해, 가해기업이 부정경쟁행위가 없었음을 입증할 책임을 부담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인공지능 기반 영양제 카트리지를 개발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는 롯데지주가 투자파트너십을 빌미로 접근해 아이디어와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했다.

#3. “대기업이라는 거래상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가 없이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피해기업의 경쟁업체에게 기술을 유출해 피해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등 피해를 초래했지만, 현행 하도급법으로는 규제대상이 아닌 상태다. 계약 체결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기술탈취를 막을 수 있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드론장비 개발기업 스카이텍은 포스코 건설이 공동입찰을 빌미로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이를 제공받아 최종 낙찰됐지만, 포스코 건설은 스카이텍의 기술자료를 타 기업에 제공하고 스카이텍과의 부당한 거래거절을 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등이 20일 개최한 ‘스타트업 기술탈취·아이디어 도용 피해 증언대회’에서는 대기업으로부터 기술탈취 등을 경험한 스타트업들의 사례가 소개됐다.

이날 이재승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중소기업 기술탈취 보호제도의 과제와 해결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 또는 인수 제안을 통해 공유된 기술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불법적으로 가져와 유사 모델을 출시하면서, 협력한 스타트업에게 재기 불가능한 손해를 입히는 기술탈취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양한 법률과 부처로 흩어진 기술침해 근절 제도를 일원화하고 제도가 실효성을 갖도록 디스커버리제도 도입, 입증 책임 전환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정·중재 제도, 징벌적 손배 실효성↓=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2022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중소기업 기술침해 피해 건수는 280여건이며, 이에 따른 피해액은 2827억원에 달한다. 기술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침해당하는 과정으로는 ‘거래관계(납품, 수출, 계약 등)’가 42.1%로 가장 높았고, ‘사업제안’이 15.8%로 그 다음이었다.

중소기업의 기술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5년부터 기술분쟁 조정·중재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접수된 조정신청 177건 중 실제 조정이 성립된 경우는 40건(22.6%)에 그쳤다. 나머지 89건은 신청인 취하 및 피신청인 불응 등의 이유로 ‘조정 불가’ 판정이 났고, 또 45건은 조정을 진행했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조정 불성립’으로 처리됐다.

이재승 변호사는 “분쟁조정 제도의 경우 피신청인이 조정절차에 응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통지하거나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 조정안 제시까지 진행되지 못하고 종결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미비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기술침해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2011년 하도급법에 처음 도입됐지만, 이후 중소기업이 승소한 사례는 단 1건 뿐이었다.

2021년 기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특허소송을 보더라도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무려 7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부처별로 산재된 기술분쟁 창구=기술탈취와 기술보호와 관련해 국내법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하도급 공정화에 관한 법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특허법 ▲실용신안법 ▲중소기업 기술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 ▲대·중소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발명진흥법 등에서 관련 규제와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자료=이재승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각 법률에 따른 소관부처가 달라 민원창구가 여러 법률별로 산재해 있다보니, 기술분쟁 사건이 발생한 경우 여러 부처에서 중복조사가 진행돼 피해기업 부담은 가중되는 실정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 변호사는 계약 체결 전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서는 보호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하도급법에서는 하도급 계약 체결 전의 기술유용 행위도 이후 하도급 계약이 체결됐다면 하도급법으로 규율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정보를 탈취한 후, 하도급거래를 체결하지 않거나 거래를 거절한 경우에는 하도급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보호할 수 없다.

또한 구체적인 손해액이나 기술가치를 산정하는 것이 어렵고, 증거의 대부분이 기술침해자인 대기업 손에 있어 증거를 수집하고 침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계약체결 전 탈취행위…법적 보완 필요=이 변호사는 중소기업의 기술탈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계약 체결 전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약을 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만든 후, 대가없이 기술을 탈취한 것은 대기업이라는 거래상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이익을 유용하는 것임에도 법 적용을 달리하면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변호사는 하도급법 및 상생협력법으로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분쟁조정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했다. 조정신청을 접수하면 지체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할 필요성이 있으며, 피신청인이 참여를 거부하더라도 조정부에서 강제조정 또는 화해 권고를 통해 조정안을 의무적으로 제시하도록 해 조정수락률을 높이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애기다.

이 변호사는 손해배상액의 산정 근거를 마련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5배까지 부과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현행 특허법에 도입돼있는 손해배상 추정 규정을 하도급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에 도입해, 손해배상제도의 실효성과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때 기술평가기관에서 손해액을 산정하도록 위탁할 수 있는 내용을 명문화하고 감정인, 전문심리위원 등 기술배심제를 통해 손해액 산정의 객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 손해액 산정이 곤란해 피해액과 법원에서 인정되는 손해액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고려해, 손해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우도록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디스커버리제도 도입, 입증책임 전환을=이와함께 디스커버리 제도도 도입하고, 입증 책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본안소송 전 절차로서, 소송에 관계되는 모든 정보를 얻기 위해 활용되는 제도다.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상대방 주장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하는 등 강력한 제재수단이다. 이 변호사는 기술침해 증거 대부분은 침해자가 보유하고 있는 만큼, 미국 등 선진국처럼 강력한 증거확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기술자료 유용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기업이 민사소송에서 위반사실을 구체적으로 주장하는 경우, 이를 부정하는 가해기업이 자기의 구체적인 행위 태양을 제시하도록 함으로써 피해기업의 입증책임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이 변호사는 기술침해를 신고할 수 있는 창구를 일원화하고 기술침해 사건을 여러 부처가 공동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해, 피해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