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반도체법 실종…실망스런 한미 정상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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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IRA·반도체법 실종…실망스런 한미 정상외교 우리 첨단산업 수출과 우리 일자리가 걸린 문제였는데

기사입력2023-04-29 00:00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은 2020년 기준 약 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2024년 하반기부터 가동될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현대차 공장도 연간 30만대의 전기차와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27일 자정 즈음,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일자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강조했다.

이같은 미국 현지에서의 일자리 창출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 등의 영향으로, 자동차와 반도체 등 한국 주력산업의 미국 수출길이 막힐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IRA나 반도체법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미국에 생산거점을 마련하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국내 굴지의 첨단산업 생산기지가 중국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당장 생산기지를 철수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하고, 당장 수출길이 막혀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번 정상외교를 기회로 IRA와 반도체법의 개정이나 한국에 대한 예외적용을 모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단기적으로는 수출이, 장기적으로는 일자리 문제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외교사안이다.

그런데 양국 정상이 IRA와 반도체법에 대해 내놓은 입장은 실망스런 수준이다. 한미정상 공동성명에는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하였다”는 문구만 포함됐다.

앞뒤를 살펴보면 “양 정상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에 관한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한미 양국이 기울여 온 최근의 노력을 평가하였다”며, “양 정상은 동 법이 기업활동에 있어 예측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상호호혜적인 미국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긴밀히 협의해 나간다고 했다.

당장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면 향후 논의를 지속한다는 발판이라도 만들어놓아야 하는데, 이 사안을 놓고 실무 협상테이블을 구성한다는 등 구체적인 협의절차가 나온 것도 아니다. 한국 산업부와 미국 상무부 장관의 협의에서도 “지속 협의”와 같은 추상적인 표현만 보일뿐이다.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중견기업연합회는 27일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법 관련 명문화된 추가 조치를 도출하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쉽지만”이라면서도, “정상 간 상호 우호적 이해를 바탕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의 투자 및 사업에 대한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큰 변화의 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당장은 아쉽지만 후속조치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IRA나 반도체법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안일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지난 1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IRA 세액공제 차종발표 관련 언론보도에 해명하면서, “IRA 가이던스 발효 이후 세액공제 대상 차종(39개→22개) 및 금액(모두 7500불→7500불 또는 3750불)이 축소된 것은 우리 자동차 업계의 미국 시장 내 경쟁 측면에서 크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임”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기존에 세액공제를 받던 현대차 GV70이 공제대상에서 제외된 데 대해서는 “핵심광물·배터리부품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배제됐다”는 설명이 전부였고, 세액공제 제외의 영향에 대한 진단을 내놓지도 않았다.

반도체법 역시 마찬가지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내놓은 ‘미국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요건의 문제점 및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보조금 신청요건 중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초과이익 공유, 상세한 회계자료 제출, 중국 공장증설 제한 등을 4대 독소조항으로 지적하며, 한미 협력을 통한 미국 반도체법 보조금 지원요건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 거듭 확인됐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업들이 잘 해낼 것이라는 말만 할 뿐 IRA나 반도체법의 방향 수정 및 예외 확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각자도생을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인게, 이 나라 첨단산업의 수출과 일자리가 걸린 일이다. IRA와 반도체법 개정 논의를 지속하기 위한 실무회담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중요한 기회를 헛되이 놓친 결과가, 향후 일자리와 소득에 고스란히 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