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시간과 기억, 신화와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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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회화는 시간과 기억, 신화와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 기억과 신화의 경계…나이젤 쿡 개인전 ‘Sea Mirror’

기사입력2025-05-08 17:05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영국 출신의 화가 나이젤 쿡(Nigel Cooke)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강렬한 회화적 언어로 동시대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지난 4월 11일부터 5월 17일까지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Sea Mirror’는 그의 신작 20여 점과 더불어, 스페인 포르멘테라 섬에서 제작된 11점의 종이 회화작업을 선보인다. 쿡이 최근 몇 년간 집중해온 기억, 신화, 시간의 흐름이라는 주제를 한층 깊이 있게 조명한다.

나이젤 쿡의 작품은 인물, 풍경, 추상적 형태가 한 화면에서 중첩되고 해체되며, 문학, 신화, 고생물학, 신경과학, 동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받아 다층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의 회화는 섬세한 붓질과 직관적인 제스처가 어우러져, 심리적·물리적 공간의 초상을 그려낸다. 쿡은 “회화, 사고, 인식의 교차점에서 이미지와 의미가 어떻게 발생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며, 회화의 신비와 서사, 감정적·심리적 깊이를 탐구한다.

‘Sea Mirror 6’, 2024, gouache on paper, 17×26cm, 27.2×36.3cm, framed, Nigel Cooke, Courtesy of Pace Gallery.

이번 전시의 제목 ‘Sea Mirror’는 쿡이 최근 아이슬란드와 스페인에서 체험한 자연의 인상에서 비롯됐다. 아이슬란드의 폭포를 매일 그리며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무상함을 경험했고, 포르멘테라 섬에서는 바닷물을 재료로 사용해 종이 위에 구아슈(gouache) 작업을 남겼다. 바다의 리듬과 조수의 움직임,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면의 이미지는 쿡의 창작과정과 맞닿아 있다. 그는 “물은 늘 움직이고 사라지며, 창작의 과정 역시 그러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연의 일시성과 재생, 변화와 소멸의 이미지는 쿡의 최근 작업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쿡의 신작들은 이전의 강렬한 색채와 그래픽적 마크메이킹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서정적인 색조와 인상주의적 선의 흐름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의 캔버스와 종이 작업은 티치아노, 루벤스, 터너 등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거장들과의 대화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쿡은 고전회화의 전통을 동시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며, 회화라는 매체의 본질과 그 미스터리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나이젤 쿡은 1973년 영국에서 태어나 1990년대 후반부터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의 작업은 세계 각지의 경험과 자전적 소재에서 출발해, 개인적 기억과 신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독특한 서사구조를 만들어낸다. 쿡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LA 해머 미술관, 런던 테이트, 파리 피노 컬렉션, 스톡홀름 모데르나 뮤지엄, 상하이 롱 뮤지엄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나이젤 쿡은 “회화는 시간과 기억, 신화와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이미지와 의미, 현실과 상상, 자연과 인간, 정신과 신체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조화를 포착한다. 이번 ‘Sea Mirror’전은 쿡이 오랜 시간 탐구해온 회화의 본질과, 그 안에 깃든 미스터리,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낸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예술만세 김현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