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성과 존재, 정체성과 생명성…조형 언어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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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시간성과 존재, 정체성과 생명성…조형 언어의 제안 5월 7일까지 권용주·마지드 술리만 2인전 ‘giggly watermelon’

기사입력2025-05-04 10:00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권용주, 폭포, 하품하생, 300×300×200cm.

IAH Seoul이 조각이라는 매체를 매개로 ‘움직임’이라는 조형 언어를 탐구하는 권용주와 마지드 술리만의 2인전 ‘giggly watermelon’을 지난 4월 11일부터 시작해 오는 5월 7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일상적 오브제를 낯선 방식으로 전환하고, 살아 움직이는 구조를 통해 관람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두 작가의 태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권용주는 평범한 사물과 자연물을 결합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반응하는 조각을 발표했다. 그의 작업은 반복과 순환, 예측 불가능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조각이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생명체처럼 ‘살아가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 식물, 빛 등 유기적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물질의 자율성과 인간의 개입 사이의 경계를 탐색한다. 관객은 그의 작품 앞에서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변화하는 ‘과정’으로서의 조각을 마주하게 된다.

권작가는 도심 속 폐기물이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을 새롭게 조합해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노동 현장이나 사회 구조에서 발견한 장면을 예술로 치환하며, 조각의 재료와 형식, 색채를 다변화하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이러한 태도는 조각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확장하고, 관객에게 현실과 예술, 자연과 인공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마지드 술리만은 조각과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이주와 정착, 경계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시각화한다. 그는 태양광, 모터, 진동 등 다양한 기술적 장치를 활용해 외부 환경에 반응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구조물을 만든다.

마지드 술리만, I exist for attetion, 16×10×5cm, 목재, PLA 3D 프린팅, 태양광 패널, 16×2 디스플레이, 마이크로컨트롤러 및 기타 전자부품, 충전식 리튬 배터리로 구동.

술리만의 작업은 개인적 서사와 사회적 맥락이 교차하는 조형 언어를 구축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를 통해 유동적이고 탈영토화된 정체성을 은유한다. 그의 작품은 이주민, 난민, 주변화된 타자의 존재 방식을 사회적·정치적 층위와 연결시키며, 권위적 제어를 벗어난 자율성과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관객은 변화 그 자체를 수용하고 응시하는 태도를 경험하게 된다.

전시 제목 ‘giggly watermelon’은 유쾌하면서도 알 수 없는 생명력을 지닌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수박, 빗자루 같은 친숙한 오브제가 두 작가의 작업 안에서 은유적 장치로 등장하며, 개인적 기억과 보편적 감정을 매개한다. 동시에 불확실성과 변화, 경계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관계 맺고 생성되는 감각들을 제안한다. 두 작가가 구축해온 서로 다른 궤도의 예술세계가 한 공간에서 교차할 때, 그 사이의 긴장과 간극, 그리고 피어나는 시너지가 관객에게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권용주는 인간의 개입과 물질의 자율성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며, 일상 사물에 자연적 요소를 결합해 자율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이는 조각을 제안한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오토마타를 넘어, 예측 불가능한 상태를 수용하며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조각을 탐구한다. 물, 식물, 빛 등 유기적 재료를 통해 시간성과 관계성을 강조하고, 기계와 자연의 경계를 허문다. 관객은 그의 작업 앞에서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살아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마지드 술리만은 시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하며, 탈영토화된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질문을 신체와 사물의 언어로 풀어낸다. 기술적 장치를 활용해 비정형적이고 비계획적인 운동을 유도하며, 외부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구조물로 정체성의 유동성과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이주민, 난민 등 주변화된 타자의 존재 방식을 사회적·정치적 맥락과 연결해, 조각이라는 매체를 정체성과 시간성, 감각의 복합적인 장으로 확장한다.

IAH Seoul의 이번 전시는 권용주와 마지드 술리만, 두 작가가 각기 다른 배경과 맥락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이라는 조형 언어를 통해 시간성과 존재, 정체성과 생명성에 대한 사유를 제안한다. 두 작가의 작업이 나란히 놓일 때 발생하는 긴장과 시너지는 관객에게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과 동시대 예술의 확장된 지평을 경험하게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예술만세 김현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