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네트제’ 근로계약시에도 퇴직금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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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의사 ‘네트제’ 근로계약시에도 퇴직금 지급 월급·일당에 퇴직금 포함됐다면 사용자 ‘퇴직금 두 번 줘야’

기사입력2015-11-03 00:00

박현진 객원 기자 (kpla123@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노무법인 ‘사람과 사람’ 박현진 대표노무사

신경과 전문의 A는 B병원에서 신경과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2011년 8월31일 퇴직했다. A는 재직 중 B병원으로부터 2010년 1월부터 2011년 7월까지 매월 1150만원과 100만원 상당의 기프트카드를 지급받았으며, 2011년 8월에는 1250만원을 받았다. 퇴직 후 2년3개월이 지난 시점에 A는 병원을 상대로 퇴직금 등 6600여만원의 미지급 임금 청구소송(본소청구)을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병원, 퇴직금 청구 않기로 한 ‘네트제’ 근로계약 체결했다

A의 청구에 대해 병원은 “A는 일정한 고정급을 지급받되, A가 납부해야 할 근로소득세, 주민세, 국민연금보험료, 건강보험료, 고용보험료 등 제세공과금을 병원이 대납하고 대신 퇴직금을 청구하지 않기로 하는 이른바 ‘네트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병원은 또 “대납한 금액이 A가 주장하는 미지급 퇴직금보다 훨씬 많으며, 퇴직 후 2년3개월이나 지났음에도 퇴직금을 청구한 한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항변했다.

본소청구 심리를 통해 법원은 병원이 주장하는 네트제 근로계약의 내용 중 고정급 지급과 함께 근로소득세 등 제세공과금을 대납키로 한 합의 사실은 인정됐다. 그러나 ‘병원이 제세공과금을 부담하는 대신 A가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해 퇴직금을 청구하지 않기로 했다’는 병원의 합의 주장에 대하여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법원, 퇴직금청구권 사전포기 약정은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

또 법원은 ‘신의칙에 반한다’는 병원 주장 역시 기각했다.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에 위반되는 퇴직금청구권의 사전포기 합의를 부인하는 것은 정의관념, 형평의 원칙 또는 신의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재확인했다(대법원 2015.06.11. 선고 2014다 88161 판결).

이러한 결론은 지금까지 다뤄진 퇴직금 관련 소송에 비춰 보자면 충분히 예상된 것이다. 병원 입장에선 새로운 반전카드가 필요했고, 본소청구 소송 중에 병원은 A를 상대로 대납한 근로소득세 등 제세공과금 1억6800여만원의 부당이득금반환을 법원에 청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반소청구).

반소란 민사소송법에 따라 소송계속 중 피고가 원고에 대해 본소의 소송절차에 병합해 제기하는 새로운 소를 말하며, 반소청구가 제기되면 피고와 원고가 바뀌게 된다. 이 사건에서는 병원이 반소를 제기함으로써 법원은 병원의 퇴직금지급의무 존부에 대한 심리와 동시에 A의 부당이득 취득 여부에 대해서도 심리했다.

본소청구 심리 결과 퇴직금 청구권 포기 약정의 존재 자체도 인정되지 않았고, 설사 그 같은 약정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강행규정에 반해 무효라는 점에서 병원이 퇴직금 지급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확정됐다.

법원, 병원이 의사 대신 대납한 제세공과금은 임금

사용자와 근로자가 매월 지급하는 월급이나 매일 지급하는 일당과 함께 퇴직금으로 일정한 금원을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는 무효다.<자료=비자트>

본소청구에 대해 A의 손을 들어 준 법원은 퇴직금액을 계산했다. 법원은 “근로소득세 등은 납부 주체가 근로자인 원고이기 때문에 피고가 대신 부담했더라도 근로의 대상인 임금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고, 기프트카드 역시 계속적·정기적·일률적으로 원고에게 지급된 것이므로 근로의 대상인 임금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매월 현물로 지급된 기프트카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원이 A 대신 부담한 근로소득세 등 제세공과금을 임금으로 판단한 데는 “근로자에게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고 그 지급에 관하여 근로계약 등에 의해 사용자에게 지급의무가 지워져 있으면 그 명칭을 불문하고 모두 포함되는 것(대법원 2005. 9. 9. 선고 2004다41217 판결)”이란 기존 판례에 따른 것이다.

법정 퇴직금 지급액을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면 1년 재직 시 1개월 평균임금이다. A의 병원 재직기간은 1년8개월이다. 기프트 카드를 포함 A가 퇴직 전 3개월간 지급받았던 월 평균임금 1440만원이기 때문에 A의 퇴직금은 2592만원 정도여야 한다.

그러나 근로소득세 등 제세공과금을 임금으로 인정한 이 사건의 경우 A의 퇴직금은 총 6300만원에 달한다. 병원은 A 대신 제세공과금을 A 퇴직 전 3개월간 월 평균 1985만원을 대납했음에도, A에게 추가적으로 6300만원의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병원, 대납한 제세공과금 1억6800여만원 부당이득반환청구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는 병원의 반소는 이같은 결론이 예상됐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병원이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하는 제세공과금의 법적 성격이 퇴직금이 아니라면 병원은 법률상 원인 없이 A에게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병원은 A 재직기간 중 대납한 제세공과금 1억6800여만원의 손해를 입은 반면 A는 같은 금액 상당의 이익을 얻은 셈이 되므로 부당이득을 반환해야 한다는 법리가 성립할 수 있다.

병원은 A의 부당이득 취득을 입증하기 위해 병원의 취업규칙을 법원에 제출했다. 병원의 의사복무규정 제11조에 따르면 의사의 연봉에는 퇴직금이 포함돼 산정되며, 별도로 퇴직금을 원하는 의사는 연봉협상에서 특별 계약항목으로 해 조정할 수 있다. 병원의 취업규칙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A를 포함 병원에 종사하는 모든 근로자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규율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복무규정에 따른 ‘특별 계약항목’이 존재하지 않는 한 A의 연봉에는 퇴직금이 포함된 것이다. 그런데 연봉 속에 포함된 퇴직금이 퇴직금으로서의 효력을 갖지 못한다면 퇴직금 명목의 해당 금원은 법률상 원인없이 지급된 것으로써 부당이득 반환 대상이 될 수 있다.

법원, 퇴직금 분할약정에 의해 지급된 것 아니어서 부당이득 아니다

그러나 법원은 병원의 반소청구에 대해 “근로관계 계속 중에 퇴직금 분할 약정에 의해 월급과는 별도로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했으나 퇴직금 분할 약정이 무효여서 퇴직금 지급으로서의 효력이 없는 경우 근로자는 수령한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부당이득으로 사용자에게 반환해야 하나(대법원 2010. 5.20. 선고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판결) 피고가 대신 부담한 근로소득세 등은 위와 같은 퇴직금 분할 약정에 의해 지급된 것이 아니므로 피고가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경위와 달리 병원과 A가 퇴직금 분할 약정에 합의하고, 그 합의에 따라 병원이 근로소득세 등 제세공과금을 납부한 것이라면 병원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판례에 따르면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된 금원의 실질이 임금이 아니고 사용자가 퇴직금 지급을 면탈하기 위해 퇴직금 분할약정의 형식만을 취한 것인 경우에는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 근로자에게 매월 지급한 금원 중에서 임금·퇴직금이 명확히 구별되는지 여부, 그 금액, 기타 근로조건 등을 참작해 그 약정이 실질적인 퇴직금 분할약정에 해당하고, 퇴직금 명목의 일정한 금원이 실질적으로 지급됐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대법원 2010.5.27. 선고 2008다9150 판결 등 참조).

지금도 실무에서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매월 지급하는 월급이나 매일 지급하는 일당과 함께 퇴직금으로 일정한 금원을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퇴직금 분할 약정은 무효다. 따라서 퇴직금 분할 약정에 의해 지급된 퇴직금은 퇴직금으로서의 효력을 갖지 못하고, 근로의 대가인 임금인 것이 원칙이다. 사용자 입장에선 퇴직금을 두 번 지급해야 한다.

퇴직금 지급을 면탈하기 위해 취했던 병원의 조치가 결과적으로 병원에게 상당한 금전적인 손해와 함께 금품 미지급에 따른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음을 이 사건 병원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