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업체 대신 협력업체로 쓰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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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하도급업체 대신 협력업체로 쓰면 어떨까 뜻도 어렵고 개념도 애매…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바뀌는 계기

기사입력2016-03-22 18:46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는 “사회구조나 언어구조 등의 ‘구조’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란 짜여진 어떤 틀을 일컫는데 푸코는 인간의 자아나 관념이 이 틀안에서 탄생하고 전개·소멸한다고 봤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인식을 결정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정부의 보도자료나 보고서를 읽는 경우가 많은데, 중소기업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하도급(下都給, 다시 맡김)’ ‘하청(下請, 아래 도급)’이다. 사전적 의미를 쉽게 정리하면, 일의 전부나 일부를 다른 사람이나 업체에 준다는 뜻이다. 발주자가 원도급자에게, 원도급자가 또 다른 업자에게 주는 도급계약의 체계가 반영된 말이다. 실제 산업구조에서 발주자 및 원도급자는 대기업이, 하도급업체는 대부분 중소기업인 경우가 많아, 한자 자체나 뜻풀이로 보면 중소기업이 대기업 ‘아래’에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중소기업 규모나 종사자수, 매출 등이 대기업 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아래’의 개념은 아니다.

‘모기업’과 ‘자기업’도 마찬가지다. 사전적으로 ‘모기업’은 ‘이미 있던 기업에서 한 기업이 독립해 나왔을 때 그 모체가 되는 기업을 이르는 말’인데 정부부처에서는 종종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그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을 자기업이라 칭한다. 이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종속돼 있다는 정부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널리 잘 사용하고 있는 말에 왜 딴지를 거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를 비롯해 공공기관 만큼은 말도 뜻도 어려운 하도급업체나 자기업이라는 표현대신 ‘협력업체’로 바꿔 사용했으면 한다. 사소한 변화겠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부처의 인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푸코의 주장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