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폐기…헌법 이념과 가치를 외면한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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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개헌안 폐기…헌법 이념과 가치를 외면한 국회 대통령의 개헌안을 폐기했다면, 국회는 이제 자신의 개헌안을 내야 한다

기사입력2018-05-26 08:56

조한무 기자 (chohm011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국회는 지난 24일 본회의를 열어 대통령 개헌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의결정족수 미달로 좌초됐다. 야 3당은 예고한대로 표결에 불참, 의결정족수 192명에 못미치는 114명만 투표한 결과다.

같은 날 청와대는 야당을 향해 “헌법이 부과한 의무를 저버렸다”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직무유기”라며 유감을 표명했지만, 불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안 취지와 내용은 차치하고, 국회를 패싱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의 개헌안 제출은 국회통과가 아니라, 꺼져가는 개헌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함이었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정작 국민이 씁쓸함으로 표정을 찌푸린건 다른 부분이다. 헌법의 이념과 그 속에 담긴 무게와 가치를 외면한 국회의 행태다. 헌법 제130조제1항은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이내에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개헌안 내용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국홰에 발의된 개헌안을 의결하라는게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명령이다. 따라서 이번 정족수미달은 위헌이고, 국회에 대해 청와대가 헌법위반이라고 비판한 대목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국회의 헌법위반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헌법 제54조제2항에 따르면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 자동부의 조항이 적용된 2014년 이전, 국회는 거의 매년 헌법 제54조제2항을 위반해 예산안 처리기일을 넘겼다. 그리고 못된 버릇이 재발해 지난해 연말 국회는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2일)을 넘긴 12월6일,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의 헌법 경시 관행·행태는 기록으로 켜켜이 쌓여있고, 이번 개헌안 의결정족수 미달은 여기에 한획을 더했을 뿐이다.

이번 국회에서 폐기된 대통령 개헌안은 노동권과 주거권, 경제민주화와 토지공개념, 지방분권 등 시대적 요구라 할만한 가치를 모두 포괄적으로 담았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이 지난 낡은 헌 옷을 대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국민적 평가도 받았다.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호불호와 무관하게 이를 폐기했다면, 국회는 이제 자신의 개헌안을 내야 한다.

지난 촛불대선에서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답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 야3당 대선 후보 모두 6월 지방선거에 동시개헌을 공약했다. 이미 집권여당이 민주당을 포함 모든 정당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국회 개헌특위 시한인 6월30일까지는 국회가 국민 앞에 개헌안을 내놔야 한다. 지난 24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6월30일까지 교섭단체간 합의된 국민 개헌안을 만들겠다”고 다시한번 국민 앞에 약속했다. 기억하고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 약속을 지켜라. 그리고 대통령 개헌안보다 국민들이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개헌안을 제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