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치, 바르지 못한 법제도가 죽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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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잘못된 정치, 바르지 못한 법제도가 죽음 불렀다 윤한덕 센터장의 순직, 김용균 씨의 참사…더 이상 되풀이해선 안된다

기사입력2019-02-11 11:26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설 전날인 4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 센터장이 순직했다. 심장마비가 직접적인 사인이고 원인은 과로라는 것이 의료진의 판단이다. 지난 1일에는 인천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당직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33살의 전공의는 외상이나 타살의 흔적이 없고 특별한 지병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죽음에 의료계가 침통함에 빠졌다. 많은 국민들도 추모의 대열에 줄을 이었고, 대통령도 ‘미안하고 고맙다. 숭고한 정신 잊지 않겟다’며 SNS에 글을 남겼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윤한덕 센터장의 생전 헌신적인 봉사와 응급의료체계 정비에 헌신한 공을 생각하면, 그의 죽음은 국민들에게 많은 빚을 남겼다. 가천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터지고 나면 고인의 생전 활동을 반추해 영웅으로 만드는 언론과 정치인들의 행태는 온전히 바르다고만 할 수 없다. 윤한덕 센터장의 숭고한 죽음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동환경을 지적하고 개선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일이고 정치인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주 80시간 이상의 노동에 내몰려 의료인 두 명이 돌연사 했는데, 이건 의로운 죽음이기 전에 과로 노동이 부른 참사인 것이다.

의료인의 과로 참사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주 80시간 이상의 퇴근 없는 밤샘 근무가 비일비재하고, 응급실 등은 연휴에 더 혹독한 노동으로 내몰린다는 것이 의료계의 전언이다. 의료인의 과로사 문제가 사회 이슈화 될 때마다 ‘의료인의 헌신, 제 몸 돌보지 않는 봉사’로 포장하고 칭송하지만, 이는 엄연한 노동착취다. 국민의 건강권이 의료인의 희생과 헌신만으로 지켜지는 사회를 의료 선진국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의사가 과로사하는 병원,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에 끼여 죽는 화력발전소는 다르지 않다. 법정 기준에도 못 미치는 적은 인원과 저렴한 노동으로 투자 대비 최대의 성과를 만들어 내려는 욕심이 과로 사회, 죽음의 노동을 만드는 것이다. 응급실에 있어야 할 인력이 제대로 갖춰졌더라면, 2인1조 투입의 원칙만 지켜졌더라면,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 센터장이나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 씨의 죽음은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과도한 노동으로 지탱되는 사회나, 저렴한 노동으로 유지되는 사회나 그 해악은 같다. 부자들은 더 큰 부를 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위험과 가난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나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나라도 아니고, 우리가 원하는 나라도 아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픈 나라는 더더욱 아니다. 의사가 과로로 죽어 나가는 사회에서 필요한 건 추모에 앞서, 분노다. 누더기 같은 김용균법은 또 다른 김용균을 막지 못한다.

정치인들.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조화만 내건다고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입안하고 집행되는 각종 법이 바르지 않아서, 의사가 과로로 죽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에 압사당하는 것이다. 주 80시간 노동에 내몰리지 않는 응급실, 안전이 보장되는 사업장, 인간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사회…, 정치가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림없는 일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피라미드 맨 꼭대기라고 이야기하던 의사들이 과로로 죽는 사회, 피라미드 아래쪽 서민들의 삶은 오죽할까?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 센터장의 죽음은 안타깝다. 그리고 몇 번 똑같이 추모만 되풀이하는 이 사회, 화가 치민다. 이젠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