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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평생 함께 했지만 사랑의 결실을 보지 못한 연인

아름답기에 더욱 불안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기사입력2021-02-14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키스는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연인은 누구일까?

 

클림트는 자신의 작품에 관해 설명해달라고 할 때면 내 그림을 보면 거기에 답이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연인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

 

에밀리, 평생의 친구이자 연인=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평생 함께 지냈지만, 사랑의 결실을 보지 못했던 에밀리 플뢰게(Emilie Louise Flöge)에 대한 클림트의 갈망이 엿보인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클림트 본인과 에밀리인 것 같다는 것이다.

 

클림트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여러 여인과 연애를 했다. 그런데도 평생 친구이자 연인처럼 함께했던 사람은 오직 에밀리 플뢰게뿐이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다가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졌을 때, 외치듯 했던 말이 바로 에밀리를 불러와!”였을 정도로, 클림트에게 그녀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이렇게 쓰러진 후 채 한 달도 못 되어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 번도 에밀리에게 청혼한 적이 없었지만, 그에게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였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1902, 캔버스에 유채, 181×84cm, 빈 시립 박물관 소장.
그런데 이렇게 평생의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에밀리를 클림트는 거의 그리지 않았다. 함께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연극과 오페라를 보러 갔으며, 여름이면 해마다 아터 호수로 함께 여행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클림트는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있는 작품이 바로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Portrait of Emilie Flöge, 1902)’이다. 이 작품은 실물 크기의 긴 초상 작품으로, 몸에 딱 맞는 초록과 파랑이 섞인 드레스를 입은 에밀리가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있다. 푸른 눈과 불그스레한 뺨에 얇은 입술, 풍성하게 부풀려진 갈색 곱슬머리, 화려한 의상, 머리 뒤로 나타난 후광 같은 커다란 모자 등 에밀리를 향한 애정이 스며 있다.

 

그런데 에밀리는 이 초상화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클림트는 그녀에게 초상화를 다시 그려주겠다라고 약속하며, 이 그림을 1903년 전시회에 출품했다. 그 후 이 그림은 1908년 오스트리아의 한 미술관에 판매됐다. 그리곤 그는 그녀를 다시 그리지 않았다. 에밀리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모두 담지 못한다고 생각해서일까? 그 마음은 알 수 없다.

 

에밀리는 사실 인척(姻戚)이다. 동생 에른스트가 1891년 헬레네 플뢰게와 결혼했는데, 제수씨의 여동생이 바로 에밀리다. 동생의 결혼 당시 에밀리는 18세로, 클림트보다 12살이나 어린 나이였다. 그의 동생 에른스트는 결혼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젊은 나이에 일찍 죽게 됐는데, 사망하기 직전에 제수씨가 동생의 딸을 낳았다. 클림트는 자신의 동생을 대신해서 갓 난 조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었다. 그러면서 동생 아내인 헬레네 가족뿐만 아니라, 에밀리와도 더욱더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됐다. 조카가 첫 세례를 받을 때, 대모(代母)는 바로 에밀리였다.

 

이러한 관계를 생각해보면, 조카에게 클림트는 아빠와 같은 존재였고, 에밀리는 이모면서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어찌 보면 클림트와 에밀리는 조카의 부모와 다름없었다.

 

클림트와 에밀리는 30년 이상 수많은 편지와 엽서를 주고받았다. 거기에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작업에 대한 이야기, 에밀리의 의견과 조언을 구하는 내용도 많았다. 클림트는 글을 쓰는 것을 무척 어려워했지만, 에밀리에게는 수백 통의 엽서와 편지를 보냈다. 많을 때는 하루에 여덟 개의 엽서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클림트가 세상을 떠난 후 에밀리는 이 편지들을 대부분 불태워 버렸다. 클림트는 자신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빈틈없이 숨겼는데, 아마도 에밀리는 그런 클림트의 심정을 알았던 것 같다.

 

클림트의 마지막을 지킨 에밀리는 그의 유산 집행인이 됐고, 그를 기억하며 홀로 살았다고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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