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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자본주의적 희소가치를 부여한 NFT

NFT는 현대미술의 미래인가? 자본주의가 낳은 사생아인가?㊦ 

기사입력2021-06-01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 미술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미술계가 출렁이고 있다.

 

어떤 이는 NFT가 예술가의 재정적 보상을 확대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다른 이는 지금의 이 현상이 단순히 투기의 다른 얼굴일 뿐이며, 국제 사기꾼의 소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비플의 작품을 바보 같다(silly)”고 말하며, NFT를 띄우는 사람은 모두 국제 사기꾼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시중에 유동하는 투기자본의 양이 늘어나면서 투기현상이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상황이 경제를 급속도로 가라앉히는 것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대규모 자금을 방출했다. 그로 인해 자금의 유동성이 급증하면서 투기자본이 먹잇감을 찾아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있다.

 

가상화폐 열풍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가상화폐 투자를 투기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NFT 미술작품 경매의 결제수단이 이더리움(Ethereum)이라는 가상화폐라는 사실이다. 현재 가상화폐 거래가 투기라면, 그것을 결제수단으로 삼고 있는 NFT도 그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더불어 복제, 수정, 편집, 재가공, 재생산을 중요 속성으로 지닌 디지털 미술을 복제할 수 없는 디지털 미술로 만들려는 NFT는 디지털 기술을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뱅크시, ‘멍청이’, 2007, 스크린 판화(실크 스크린), 56×76cm.<출처=hanguppictures.com>

 

부디 선한 기술이 되기를=현재의 제도권 미술시장은 NFT가 지닌 디지털의 자산화 가능성을 진지하게 실험하고 있지만, NFT를 희화화하는 화제성 거래도 곳곳에 존재한다. 뱅크시의 멍청이’ NFT나 알렉스 라미레스 말리스(Alex Ramírez-Mallis)방귀의 해: 마스터 컬렉션(Year of Farts: Master Collection)’이 대표적이다.

 

멍청이’ NFT는 뱅크시가 2007년에 제작한 실물 작품 멍청이를 블록체인 기업 인젝티브 프로토콜이 뉴욕에 있는 타글리아라테라(Taglialatella) 갤러리에서 구매해 스캔한 후 NFT로 전환한 작품이다. 인젝티브 프로토콜은 원본 스캔 후 그 원본을 불태웠으며, 그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 뱅크시 진품 태워버리기 의식이란 제목으로 유튜브에 공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든 NFT를 경매에 올렸고, 올해 37일 약 43000만원(228.69이더리움)에 거래됐다.

 

이런 일련의 퍼포먼스는 사실 NFT의 가치를 알리고자 기획된 것이다. 이 거래를 기획한 인젝티브 프로토콜의 관계자는 원본 소실 영상에서 “NFT와 실물이 둘 다 존재한다면 작품의 가치는 실물에 종속된다, “실물을 없애면 NFT가 대체 불가능한 진품이 되고, 작품의 가치는 NFT로 옮겨온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멍청이라는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의미도 발견할 수 있다. 미술 경매장의 풍경을 조롱한 멍청이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이런 쓰레기를 사는 멍청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 그림 자체가 미술작품의 경매를 조롱하고 있다. NFT 작품 경매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뱅크시 진품 태워버리기 의식, 뱅크시의 ‘멍청이’를 태우는 영상.<출처=유튜브 캡쳐>

 

방귀소리를 모아서 NFT로 만들어 판매를 한 경우도 있었다. 바로 방귀의 해: 마스터 컬렉션이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알렉스 라미네스 말리스는 자신과 친구 네 명의 방귀소리를 1년 동안 모아 NFT로 만들었다. NFT는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가 자신의 대변을 통조림에 담아 작품으로 내놓은 예술가의 똥’(1961)을 연상시킨다. ‘방귀의 해: 마스트 컬렉션은 약 48만원(0.2415이더리움)에 판매됐다.

 

열광과 희화화가 교차하는 NFT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디지털에 자본주의적 희소가치를 부여하려는 욕망이다. NFT는 무한히 복제 가능한 디지털 작품에 인위적으로 희소성을 부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디지털 작품에 고유성을 확립하려는 시도다. 이것은 지적재산 규제, 즉 저작권 확립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는 전통적인 자본주의 의제와 상당히 흡사하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NFT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라이선싱과 목록화 시스템이 되어 예술가가 재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기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사실은 NFT가 복제, 편집, 수정, 재가공, 재생산이 가능한 디지털의 역동성을 크게 훼손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기술의 변화를 쉽게 예견할 수 없다. 부디 NFT가 선한 기술이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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