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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미술과 시대는 떨어져 있는게 아니고 같이 간다”

Life is pain.ting #43. 2002가 2021에게㊤ 

기사입력2021-07-11 00:00

이제는 쓰지 않는 이메일을 몇 년 만에 접속해서 보니중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나를 가르치던 스승과 주고받은 이메일이 가득하다한국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하고 미국으로 떠난 그는 그림을 그만 두었다아래의 편지는 이십대 중반의 내가 작업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을 때 그가 보낸 답장이다편지의 도입부는 생략했으며두 번에 나눠서 싣는다.
[2002가 2021에게㊤]  첨부터 네가 내게 질문하려고 하는 심리 밑바닥의 일부엔 너 스스로의 현재를 합리화시켜 줄 명분이 될 만한 얘기를 기다리고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건 내가 그렇게 경험해 왔었으니깐, 물론 너하고 나하고 똑같진 않지만 던져오는 질문들을 통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생각했던 답이 안가고 스스로 설마 하던 대답이 날아오니깐 힘 빠지지. 하지만 어쩌냐. 편하게만 할 수는 없는 걸. 이걸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게 과정이란 거지, 사람이 진짜로 커지려면 가지게 되는. 좀 거창하게 말해, 자기 정체성을 찾는 첫 단추 같은 거다.

 

지금 네 앞에 다가온 줄을 잡고, 놓지 않고 계속 사유를 거듭해 올라간다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지금처럼 질문하고 답하고 하면서 논리를 찾아나가고 답을 찾아 나가다 보면 굳건한 네가 생긴다. 그렇지 않고 주변에 만들어져 있는 답을 큰 문제의식 없이 자기화시켜 나가다 보면 자신의 껍데기만 남아서 바람에 떠 있는 연처럼 되어버린다.

 

연 줄을 잡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조정하는 줄의 끝에 매달려서 자신이 무척 높이 날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높이 날지는 못할지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눈을 가지고 세계를 보고 만들며 혹 세상의 이목에서 동 떨어져 살게 되더라도 행복을 만들 줄 알고 사랑을 키워나갈 줄 아는 사람들이 난 더 부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들은 작은 행복을 잃어버리고 사는 거 같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 밀려서 아등바등하며 살게 되고 자신과 좀 다른 누군가를 보면 이해하려고도 안하고 무작정 거부하고 질시하고, 다수에서 동떨어진 사람을 왕따시키고. 그러면서 자신은 개성 있는 존재라고 믿지.

 

집단 안에 있는 개성, 결국은 몰개성이지. 조작되고 만들어진 개성이니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개성이라고 불리길 바라는 개성. 누가 봐주길 바라는 개성이란 거지. 그러다 보면 개성에도 패턴이 생기고 유행이 생긴다. 집단의 보호를 받는 개성을 우리들은 좋아한다. 일정한 룰을 갖는 개성.

 

그것을 거부하고 담 넘어 나가는 놈들은 집단 몰매를 맞는다. 이런 게 우리 사회다. 그 안에서의 개성을 갖는 창조란 것들도 가만 보면 진정한 창조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작가의 눈으로 볼 때는 참신하지 못하단 얘기지. 그저 집단이 좋아하는 재미를 잘 충족해 내고 있는 정도지. 무엇이 그럴듯하더라 하고 매스컴이라도 타봐라. 개나 소나 다 달려들어서 와~ 이러지. 그러다 보면 정말 대단해져 보이고.

 

오늘은 이 얘길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잠깐 언급하려던 건데 수습이 안되고 삼천포로 빠지네.^^;

 

미술하고 시대는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고 동시에 같이 가는 유기체이다. 그 예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상주의의 얘기를 해 보려고. 대학 가면 미술사 시간에 맨날 첨에 똑같이 시작하는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인상주의 아니냐. 우리 땐 그랬다. 선생이 바뀌고 수업명이 바뀌어도 똑같이 시작은 인상주의.

 

모네 ‘지베르니 정원’

 

잘 알고 있겠지만 인상주의란 게 등장한데는 어느날 천재 화가들이 갑자기 그걸 하게 된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로 급작스럽게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게 된다. 이때 나오게 된 것이 사진기이고 또 튜브 물감이 만들어지지. 과학 쪽에선 빛에 대한 연구가 점점 고조되고, 사회적으론 부르주아가 사회의 기득권으로 등장을 하게 되고, 군주들의 몰락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와 함께 제3세계에 대한 관심과 정복이 점차로 커지고, 이 모든 이유들이 인상주의라는 미술을 필두로 미술판에 급 페달을 밟게 만든다. 이 후론 거의 정신 없지.

 

하나씩 얘기를 해 보자면, 사진기가 만들어지니깐 그 이전에 미술이 해 왔던 기능, 그러니깐 대상을 재현해내는 기술 중 닮게 형상을 옮기는 기능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다. 똑같이 그려야 할 이유가 없어진 거지. 사진기가 더 정확하니깐.

 

그럼 사진기와 그림이 대상을 재현하는데 차별화 하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당근 색이다. 당시엔 칼라 사진기가 없었으니깐, 이전에 그림에서 닮게 재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색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여기에 튜브 물감이 만들어지면서 간편하게 재료를 들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사생이 가능해진 거야.

 

그러니깐 아무래도 안에서 그릴 때보다는 색이 밝아지겠지. 거기에다 과학자들 사이에 빛의 입자설이니 에너지 설이니 파동설이니 하는 빛의 이론들이 등장하면서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색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여기에 무식한 부르주아들의 돈이 인상주의의 등장을 거들게 된다.

 

이전에 그림의 소비층은 주로 귀족들이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귀족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지. 귀족들이란 우리나라 과거 사대부들처럼 어릴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들이어서 소위 문자 좀 쓰는 사람들이지. 그러니깐 그들이 원하는 그림이란 것들이 고대 신화 속의 이야기나 복잡한 신학 속의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장사하면서 돈 번 무식한 부르주아들이 보기엔 깝깝하거든. 돈 벌어서 그 동안 잘난 척하던 귀족들처럼 뭔가 자신들도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싶은 건데.

 

옛날 그림은 그들에게 너무 어려웠다. 그 때 마침 등장하는 밝은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하게 된다. 색깔도 뽀시시하고 환하고 알록달록하고. 그림 안에 복잡한 내용도 없어서 그저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그러니 굿~! 아니었겠냐. 당시에 미술판이 인상주의로 전환하는데 엄청난 폭발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인상주의 미술을 하던 사람들이 수만명이 넘었단다. 그 중에 우리는 몇 명만 아는 거지. 그렇게 그 사람들이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어느 만큼 소비가 되었다는 사실인데. 놀랍지 않냐. 백년도 넘는 그 시기에 그것들이 가능한 문화의 수준이란 게!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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