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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구두에 스며있는 삶을 발견한 철학자

그림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고흐의 ‘구두’㊤ 

기사입력2021-07-18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그림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1886년 가을, 프랑스 파리의 레픽 거리(Rue Lepic)에 있는 아파트에서 그는 구석에 놓인 구두를 그리고 있다. 동생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온 지 6개월 정도 지났고, 지금 지내는 아파트로 이사온 지도 3개월 정도 지난 어느날이었다.

 

그는 파리에 와서 모네(Claude Monet)와 드가(Edgar Degas), 쇠라(Georges-Pierre Seurat), 피사로(Camille Pissarro) 등 여러 인상주의 화가를 만났고, 그들과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그 당시 파리의 미술은 변하고 있었다. 개성 있는 그림체와 붓놀림은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그는 파리의 변화를 한껏 느끼며 자신만의 그림을 찾기 위해서 며칠이고 답답한 아파트 구석에서 구두를 그리고 있다. 오랫동안 신어 낡고 해진 구두. 끈은 풀려 있고, 모양은 찌그러져 있는 구두. 그는 그가 그린 이 보잘 것 없는 구두 그림이 나중에 세계적인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리라는 걸 전혀 몰랐으리라.

 

빈센트 반 고흐, ‘구두’, 1886, 캔버스 위에 유채, 38.1×45.3cm. 암스테르담반 고흐미술관 소장.

 

그는 이 구두 작품을 완성한 후에도 다른 모양의 구두를 찾아서 일곱 점이나 더 그렸다. 이 화가는 20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지만, 평생 헐값에 단 한 작품밖에 팔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1890727일 일요일, 반 고흐는 자신의 가슴을 향해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719일 새벽 1시경에 그의 고단했던 삶은 그렇게 끝났다. 그 후 고흐의 작품은 조금씩 사람들에게 인정받았고, 미술사에 획을 그은 화가가 됐다. ‘해바라기’(1888)별이 빛나는 밤’(1889) 등은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1886년 가을에 그렸던 구두(Shoes)’는 그려진지 50여 년이 지날 때까지 눈여겨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해진 구두가 덩그러니 놓인 그림은 그리 아름답지도, 인상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93511월에 있었던 예술작품의 기원이라는 공개 강연에서 고흐의 구두그림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면서, 이 그림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고흐가 그린 이 구두의 어두운 내부를 보십시오. 들로 일하러 나가는 사람의 고통이 보이지 않습니까? 거친 바람이 부는 넓게 펼쳐진 평탄한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강인함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구두 가죽 위로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구두 창 아래에는 해질녘 들길을 걷는 고독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대지의 소리 없는 부름이 있고, 다 익은 곡식의 조용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지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겨울철 들판의 황량한 들길이 느껴집니다. 이 구두의 주인은 굶주림에도, 출산의 위험에도,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이데거는 이 작품에서 구두의 외형이 아니라, 고단하고 남루하지만 그런데도 소박하고 경건한 농촌의 삶을 보라고 말했다.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까지 바라보라고 말한 것이다.

 

지금은 그림에 있는 요소들의 의미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림에 나타난 형상만을 보고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철학자가 농부 여인의 삶을 함축하고 있는 구두라는 존재를 느끼라고 말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평생을 존재에 관해서 생각했던 실존주의 철학자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철학을 고흐의 구두라는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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