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신분’보다는 인재의 미래 가능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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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과거 ‘신분’보다는 인재의 미래 가능성을 보았다 정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를 받들어서 등용해야

기사입력2021-12-14 11:58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 가운데 ‘두루 사랑하라’는 겸애(兼愛) 사상으로 잘 알려진 묵자(墨子) 역시 당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아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여러 방책을 내놓았다. 묵자 정치사상의 핵심은 맹자가 말한 어질고 정의로운 정책을 실천하는 왕도(王道) 정치나 힘으로써 세상을 제압해 군림하려는 패도(覇道) 정치가 아닌 ‘하늘의 뜻’을 따르며 세상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을 펴는 정책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하늘의 뜻을 따르고 사람들을 두루 사랑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묵자의 주장이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의미의 조물주에 대한 인식이나 내세관이 당시 중국에도 있었다고 여길 수 있지만, 묵자가 말하는 하늘에 대한 인식과 사랑은 기독교에서 일컫는 것과는 달라서 묵자 사상을 종교의 범주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묵자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하늘의 사랑이란, 하늘이 세상에 빛을 쪼여 주고 비를 내려주고 바람을 불어 주어 사람들이 따스하게 지내며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그 자체가 하늘의 은혜이며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서로 남처럼 살면서 서로 이익을 다투며 때로는 목숨을 걸고 싸우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두루 서로 사랑하게 되면 남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남의 자식을 제 자식처럼 여기게 되어 서로 싸우지 않고 사랑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묵자 겸애 사상의 요점이다.

그리고 묵자는 군주가 자신의 정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를 받들어서 등용해야 한다고 해 그의 책 상현(尙賢)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동성 등주시(滕州市)에 있는 묵자기념관에는 묵자 사상의 요점인 ‘두루 사랑하라’는 뜻인 겸애(兼愛)라고 쓰여진 족자가 걸려있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아주 옛날 이상적인 군주로 알려진 요(堯)임금이 순(舜)을 등용했던 것은 그들 사이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기 때문이 아니었으며, 상(商)나라를 세운 탕(湯) 임금이 이윤(伊尹)을 등용했던 것이나 무정(武丁) 임금이 부열(傅說)을 등용해 세상이 잘 다스려지게 됐는데, 이윤이나 부열이 부귀한 집안 자제였거나 뛰어난 외모로 인해 발탁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으니, 나라 정치에는 오로지 능력이 뛰어난 이를 등용해야만 한다고 했다.

순임금이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죽었고 시각장애인이었던 순의 아버지는 후처를 얻었는데, 순은 계모와 이복동생 상(象)이 자신을 미워해 여러 차례 죽이려고 했지만 슬기롭게 극복하며 효행의 도를 다했다. 이처럼 순이 효성스럽다는 평판을 요임금이 듣고 발탁되었다가 마침내 임금의 자리에 올라 훌륭한 정치를 폈다.

이윤은 원래 유신씨(有莘氏)의 나라에서 도살업을 하던 집안의 노비 출신이었는데, 유신씨 군주의 딸이 탕 임금에게 시집갈 때 스스로 따라가서 자신이 요리한 음식 맛으로 탕 임금을 기쁘게 한 다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탕 임금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을 건의하였다가 등용돼 하(夏)나라를 물리치고 상나라를 세우는 데에 큰 공을 세우고 마침내 승상이 돼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

부열의 경우는 좀 더 독특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임금으로 즉위한 무정은 왕조를 중흥시키기 위해 인재를 두루 찾아다녔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성인(聖人)을 만났고 꿈에서 깨고 난 뒤에도 성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그를 그림으로 그리게 해 닮은 사람을 찾아오라고 했다. 마침내 부암(傅巖)이라는 들판에서 담장을 쌓던 노예들 가운데 초상화와 꼭 닮은 부열을 찾아냈고, 그를 재상으로 등용했더니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무정 임금이 꿈을 핑계로 부열을 기용했다고 해 ‘무정탁몽용부열(武丁托夢用傅說)’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정 임금이 진작에 부열의 능력을 알고 있었는데 그를 등용하기 위해서 꿈에서 성인을 보았다는 식으로 꾀를 내었던 것이라는 설이 있기는 하다.

<자료제공=문승용 박사, 출처=漢字演變五百例 참조>

위의 이야기가 소개된 묵자 책의 편명이 ‘어진 이를 숭상한다’는 뜻의 상현(尙賢)편인데, 순임금, 이윤, 부열이 정작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어진 이’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 현(賢)자를 흔히 ‘어질 현’이라는 뜻으로 새겨서 역시 ‘어질 인(仁)’자처럼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착하다는 뜻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賢’자의 원형은 신하라는 뜻의 ‘臣(신)’자와 일을 잘 처리한다는 뜻에서 손을 그린 ‘又(우)’자가 합하여진 것으로 본디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이 있는 신하라는 뜻에서 ‘臤(현)’이라고 쓰이다가 뒷날 ‘재물’이라는 뜻의 ‘조개 貝(패)’자가 보태져서 ‘賢’이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능력이 있는 신하라도 정치자금으로 쓸 재물(貝)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 변한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는 하다.

실제로 한(漢)나라 때 한자 해설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현(賢)자를 “재능이 많은 것이다(多才也)”라고 풀이했다. 즉, 현(賢)자는 성품이 너그럽고 착하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본래의 뜻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너그럽고 착한 덕목을 중시하는 유가 사상의 지배를 받다 보니까 본디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던 현(賢)자가 성품이 너그럽고 착하다는 뜻으로 인식이 변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요즘 여당과 야당에서는 인재 영입이라는 명목으로 각계각층의 인사를 불러들이고 있다. 이미 각 정당에 들어와 정계 입문을 준비하고 있던 인사들을 뒤로 한 채 새로운 인재 영입을 급히 하다 보니 검증이 미처 되지 못해 새롭게 영입된 인재들의 이런저런 과거 전력 때문에 뒷말이 이래저래 쏟아지고 있다.

장애인 집안에서 계모의 미움을 받으면서 자란 순임금이나, 도살업을 하던 노비 출신 요리사였던 이윤이나, 들녘에서 막노동하던 노예 출신 부열 같은 이들이 정치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한 시대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과거(신분)보다는 미래 가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