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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있는 인사를 공정하게 임용해야 한다

보잘 것 없는 유방(劉邦)이 어떻게 한나라를 세웠을까 

기사입력2022-03-21 15:36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우리나라와 중국은 역대 왕조의 존속기간이 확연히 다르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가 중국에서 최초의 통일왕조를 이루고 나서 이후 한(), (), (), 남북조의 여러 분열된 왕조들, (), (), (), (), () 등 주요 왕조들만 얼추 꼽더라도 이 가운데 당나라가 289(618~907), 청나라가 276(1636~1912)을 지속했던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왕조는 대체로 2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새로운 왕조로 교체되곤 했다.

 

물론 한()나라가 기원전 206년에 건국돼 220년에 멸망했으니 400년 정도 지속하지 않았느냐고도 볼 수 있지만, 실제로 한나라는 서기 8년에 왕망(王莽)에 의해서 1차로 멸망했었다가 서기 25년에 수도를 낙양으로 옮겨 재건해서 명맥을 유지했지만 결국 서기 220년에 멸망했으니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실질적으로 200년을 채우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500여년 동안 혼란을 거듭하던 춘추전국시대를 종식해 최초의 통일왕조라고 일컫는 진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했고, 400여년 동안 분열돼 있던 남북조의 혼란기를 통일했던 수나라도 38년을 지속했을 뿐이다.

 

그에 반해서 우리나라의 고구려는 705(B.C. 37~668), 백제는 678(B.C. 18~660), 신라는 992(B.C. 57~935), 고려는 474(9181392), 조선은 518(1392~1910) 등 일단 왕조가 들어서면 대개 500년을 훌쩍 넘게 이어갔던 것에 비하면 중국 역대 왕조는 그야말로 단명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왕조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반도 국가이다 보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세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던 지리적인 요소가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는 동쪽으로 태평양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을 거의 당하지 않았지만, 서쪽과 북쪽으로 흉노, 몽골, 거란, 여진 등 강력한 유목 민족들이 빈번하게 침략해 왔기 때문에 왕실을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보존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실제로 몽골과 여진족의 경우에는 한족 왕조를 물리치고 원()과 청()의 이민족 왕조를 새로이 열기까지 했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 왕조 교체에 있어서 확연히 다른 점으로 우리나라 고구려의 주몽이나 신라의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등이 하늘의 뜻을 띠고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건국에 신화적인 요소가 강한 것을 제외하고 백제를 세운 온조나 고려의 왕건, 조선의 이성계 등은 모두 나라를 건국하기 전에 이미 일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거나 장군의 신분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평민 출신으로 새 왕조를 건국한 이가 없는데, 중국은 외래민족이 세운 원나라와 청나라 이외에도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 삼국시대 촉한(蜀漢)을 세운 유비(劉備),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과 같이 그야말로 평민 출신들이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일이 자주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의 장릉(長陵)이다. 유방은 보잘것없는 평민 출신이었지만, 인재를 잘 등용해서 중국의 대표적인 왕조인 한나라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유방이나 유비, 주원장 같은 이들이 어려서부터 나는 이다음에 커서 황제가 되고야 말 것이라는 포부를 갖고 마침내 나라를 건국했다기보다는 난세에 태어나 어찌어찌하다 보니 황제 자리에까지 올랐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아무나 나라를 열고 황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 가운데 특히 한나라의 고조 유방은 누가 보더라도 장차 새 왕조를 열 황제가 되리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인물이다. 실제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기재된 그의 전기를 보면, 유방은 젊은 시절 하는 일이 없이 지내다가 장년이 되어서야 사수(泗水)라는 고을의 정장(亭長)이 되었다고 한다. 정장이라고 해봐야 오늘날의 촌장(村長) 정도의 직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평소 관리들을 깔보고 멸시했으며 술과 여색을 좋아하고 술집에서 늘 외상술을 마시다가 취하면 그냥 드러누워 자버렸고 그리고 나서 술값을 치른 적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술 잘 마시고 무책임했던 유방이 어떻게 중국의 대표적인 왕조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까? 어느 날 유방은 연회 자리에서 자신이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방 자신은 당시 유력한 세력가였던 항우(項羽)와의 싸움에서 계책을 짜내어 승리를 결정짓는 일에는 장량(張良)만도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위로하며 양식을 공급하는 등의 살림살이에는 소하(蕭何)만도 못하고, 백만대군을 통솔해 싸움터에서 공격하는 일에는 한신(韓信)만도 못하지만, 이들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한초삼걸(漢初三傑)을 등용해 부릴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자신이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라고 했다.

 

한번은 유방이 고향을 지나다가 옛 친구들과 어른들을 불러서 연회를 열어 즐겼다. 유방은 술이 거나해지자 축()이라는 악기를 직접 타며 큰바람 몰아치니 구름이 날리고, 위엄을 세상에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도다. 어찌하면 굳건한 선비를 얻어 천하를 지킬 수 있을까!(大豊起兮雲飛揚. 威加海内兮歸故鄕. 安得猛士兮守四方!)”라고 노래 불렀다.

 

당시 좋은 집안 출신에다가 막강한 군대를 이끌며 용맹을 떨치던 항우가 자신의 배경과 능력에 자만해 인재 등용에 실패하면서 결국 천하를 얻는 데에 실패했다면, 별다른 배경이나 학식도 없이 젊어서 술 잘 마시고 허풍만 부릴 줄 알았던 유방이 인재를 등용해 그들의 의견을 잘 들어서 천하를 얻을 수 있었고 또 황제에 오르고 나서도 나라를 안정되게 잘 다스리려면 역시 담력과 식견이 뛰어난 인재를 잘 써야 한다는 점을 유방은 명심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인수위원회가 꾸려져서 주요 업무를 맡을 인사들의 이름이 매스컴에 한창 오르내리고 있다. 역시 사람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능력이 있는 인사를 공정하게 임용하는 것이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한 초석이라는 점을 잘 새겨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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