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이코노미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 매체
2022/07/06(수) 17:41 편집
스마트복지포털

주요메뉴

스마트CFO
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프린트
라운지중국을 읽다

도덕성 갖추고 정정당당하게 나랏일 할 인물이어야

공직자는 자식의 허물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기사입력2022-04-25 11:55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세상에서 조조를 흔히 간사한 영웅이라는 의미에서 간웅(奸雄)이라고 일컫게 된 것은 허소(許劭, 150~195)그대는 치세의 능신(能臣)이요, 난세에는 간웅이 될 것이다(子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也)”라고 했던 말에서 비롯됐다.

 

조조가 활약했던 시대는 한()나라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의 건안연간(建安年間, 196~220)이다. 이때는 황건적(黃巾賊)이 세상을 휩쓸고 조정에는 황제를 끼고 정권을 농단하던 십상시(十常侍)의 전횡으로 인해서 나라의 기운이 다해가던 때였다. 허소의 말대로 조조가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재상이 되었을 것이지만, 조조가 한나라 말기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났으니 간웅이 될 것이라고 평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옳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역사에서 조조를 간사한 영웅이라 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된 것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이 명나라를 세우면서 몽골족의 원()나라 때 폐지되었던 과거제도를 부활하고 몽골식의 복장이나 변발을 폐지하는 등 한족의 전통문화를 회복시키고자 했던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의 전통을 다시 세우고자 했던 명나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한나라 황실의 후예라고 자처하고 한나라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던 유비(劉備)가 소설 삼국지에서 주인공으로, 그리고 유비의 라이벌이었던 조조를 악인으로 묘사하게 됐던 것이다.

 

섬서(陝西)성 치산(岐山)현 봉황산(鳳凰山) 남쪽 기슭에 위치한 주공(周公) 사당의 현판이다. 당 고조(唐高祖) 때 건립됐고 사당 내부에는 주공을 모신 정전(正殿) 이외에 강태공과 주나라의 선조 및 공신들이 배향돼 있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위나라를 세웠던 이는 조조가 아니라 그의 셋째 아들인 조비(曹丕). 본래 조비에게는 형인 조앙(曹昂)과 조삭(曹鑠)이 있었지만, 모두 일찍 죽는 바람에 셋째 아들로서 220년에 죽은 아버지 뒤를 이었던 것이다. 조조는 죽을 때까지 한나라 조정을 좌지우지 농단하기는 했지만, 끝내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는 않았다. 뒷날 조조가 죽은 다음 조비가 아버지를 위해서 황제급으로 추존해 위무제(魏武帝)라고 부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황제의 권력을 뛰어넘는 권력을 누렸던 조조가 한나라에 이어 새로운 왕조를 세워 황제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조조가 한나라를 무너뜨리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당시 조조가 새 왕조를 열고 황제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렇게 실행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주공(周公) ()을 닮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조뿐만 아니라 공자(孔子) 역시 흠모해 따르고자 했던 주공 단은 아버지와 형을 도와서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조조의 대표적인 시가인 단가행(短歌行)’에서 어지러운 세상을 끝내고 평화로운 시대를 함께 열 인재를 산만큼이나 바다만큼이나 다 모아 거두고 싶다고 해서, 인재들이 찾아오면 밥을 먹거나 머리를 감다가도 뛰쳐나가 반갑게 맞이하겠다고 해 토포악발(吐哺握髮)이라는 말이 생긴 것처럼 조조는 인재 받아들이는 일에 늘 열중했던 주공을 닮고 싶어 했다.

 

실제로 주공은 주나라를 세우기 전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열심히 받들며 최선을 다했고, 형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왕(武王)에 올랐을 때는 아우로서 형을 도와 최선을 다했으며, 형 역시 일찍 죽고 조카인 성왕(成王)이 즉위하자 역시 삼촌으로서 최선을 다해 조카를 도왔던 인물이다. 이처럼 주공이 늘 자신이 처해 있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서 끝내 조카의 자리를 무리하게 빼앗아 차지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다.

 

이런 점이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왕이 되려 하거나 이웃 나라를 쳐서 좀 더 너른 땅과 많은 백성을 차치하려고 전쟁에 몰두하던 춘추시대를 산 공자에게 주공은 흠모를 받았고, 조조 역시 단가행에서 그러한 주공의 뒤를 따르고자 한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주공(周公) 사당 안에 있는 주공의 묘소 입구에 세운 패루(牌樓)다. 정면에 “세상 사람의 인심이 하나로 모인다”는 의미인 ‘천하귀심(天下歸心)’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그런데 그의 아들 조비는 아버지가 죽자마자 선양(禪讓)이라는 형식으로 헌제를 압박해서 한나라를 빼앗아 새로운 왕조인 위나라를 세우고, 자신을 반대하던 형제들을 죽이는 등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후대에는 조조가 한 황실을 농단했고 아들 조비가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세우게끔 여건을 마련해 줘 결국 한() 문화 전통이 끊어지게 되었다는 비난을 아들 대신 아버지 조조가 뒤집어쓴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을 아들에게는 묻지 않지만, 자식의 잘못은 아버지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아들이 잘하고 잘못하는 것 역시 모두 아버지가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므로 자식의 잘못 역시 아버지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가운데 자식이 저지른 이러저러한 잘못으로 인해서 정치활동을 접는 경우를 흔히 본다. 전통적인 유가(儒家) 사상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수신제가(修身齊家)를 하지 못한 정치인이 그 다음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온 세상을 평안하게 한다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이상정치를 달성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음 정부 각 부처의 책임을 맡을 인사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정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데, 이번에도 예외 없이 후보자들의 여러 가지 의혹과 비리가 불거져 논란이 일고 있다. 도덕성과 능력을 고루 갖추고 정정당당하게 나랏일을 맡아 볼 인물이 세상에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top
스마트에듀센터

객원전문 기자칼럼

 
  • 기업법률
  • 상생법률
  • 공정경제
  • 법률산책
  • 생활세무
  • 상가법
  • 인사급여
  • 4대보험
  • 노동정책
  • 판례리뷰
  • 지적재산권
  • 무역실무
  • 부동산법
  • 부동산
  • 금융경제
  • 세상이야기
  • 가족여행
  • 예술만세
  • 작가노트
  • 예술별자리
  • 개인회생
  • 무역물류
  • 스마트공장
  • 민생희망
  • 미국문화
  • 중국상인
  • 노동법
  • 플랫폼생태계
  • CSR·ESG
  • 정치경제학
  • 빌딩이야기
  • 글로벌탐험
  • 가맹거래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