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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한 우물만 판 수출 강소기업의 뚝심과 도전

‘산업용 다리미’의 기술과 신뢰의 역사…은성전기 김성은 사장 

기사입력2022-05-04 17:06
“은성전기의 5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1972년 창업한 은성전기의 50주년을 축하하고자 해외 각지의 협력사에서 보내온 축하영상들이 이어졌다. 첫머리에 나온 홍콩 바이어는 창업주 김득래 회장 시절부터 수십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김성은 사장은, 홍콩 바이어의 자녀와 마치 가족같이 가까이 지내왔다며 웃었다. 

50년의 역사를 이룬 은성전기는 산업용 다리미 전문기업이다. 현재 세계 12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50주년 축하영상을 보내준 수많은 해외 바이어들과의 협력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산업용 다리미는 주로 세탁소, 봉제공장, 의류매장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김성은 사장은 가정용 다리미 시장과 다른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가정용 다리미는 글로벌 대기업들의 시장이지만, 산업용 다리미는 규모가 작은 틈새시장이다. 해외에도 다양한 업체들이 있지만, 독일 등의 제품은 가격이 높고 고급 원단에 국한돼서 사용되고 있다. 중국이나 터키에서도 산업용 다리미가 생산되지만, 품질에서 앞선 은성전기의 제품이 시장의 리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김성은 사장은 품질과 AS가 성공요인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오늘 작업을 해야 하는데, 고장이 나면 로스가 생긴다. 가정용 다리미가 고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신속하게 대처하는 AS와, 무엇보다도 고장이 잘 나지 않는 좋은 품질이 은성전기의 성공비결이라며 김 사장은 자부심을 내비쳤다. 

50년 한 우물만 판 역사…김득래 회장의 혜안과 뚝심

김득래 회장의 은성전기 창업기에는 1970년대 이후 서울의 제조업 변천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진=은성전기>
김성은 사장이 전하는 김득래 회장의 은성전기 창업기에는, 그시절 서울의 제조업 변천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70년대에는 서울 한가운데에서 봉제공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기공학을 공부한 김득래 회장은 수많은 봉제공장들 속에서 한가지 발견을 한다. “봉제공장이 망하면 재봉틀은 가져가지만 다리미는 가져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새로 공장을 차리면 다리미를 재차 구매한다는 것인데, 반복 구매가 일어나는 상품이라는 아이디어는 산업용 다리미 개발로 이어졌다. 

당시 을지로는 봉제기계를 비롯한 제조업이 번성했다. 김득래 회장은 제기동과 을지로 등을 터전으로 삼아 사업을 시작했고, 80년대 들어 영등포로 공장을 이전했다. 

80년대 서울의 제조업은 이미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수많은 봉제공장이 밀려나고, 산업의 중심에서 의류 등의 비중은 축소됐다. 하지만 은성전기는 여전히 산업용 다리미 한 우물을 파고 있었다. 돌파구는 수출이었다. 일찍부터 수출의 필요성을 내다본 김 회장은 1982년 미국 수출에 성공했고, 이후 세계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50년간 산업용 다리미라는 하나의 품목으로 한 우물을 판 뚝심에는 세계시장을 향한 도전이 있었던 것이다.  

30여명의 직원을 둔 소기업이 1991년에 수출 100만불 탑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로 바쁜 시기, 직장을 다니다 잠시 쉬고 있던 김성은 사장은 아버지의 사업을 돕기 위해 남편 배범삼 부회장과 함께 은성전기에 합류하게 됐다.  

90년대 들어서 젊은 피를 수혈한 은성전기는 BI와 CI를 정비하고, 수출용 명칭인 ‘실버스타’를 토대로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적극 나섰다. ERP(전사적자원관리)를 도입하고 법인전환을 하는 등 내실도 다졌다. 특히 각종 해외전시회에 적극 참여하며 수출시장 확대를 도모했다. “해외전시회에서 적극적인 브랜드마케팅을 펼친 것도 성공요인 중 하나”라고 김성은 사장은 강조했다. 그 결과 IMF와 같은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2001년에 수출 300만불 탑을 이뤄냈다.

다리미 밖에 모른다”…시련 이겨낸 힘은 기술과 신뢰

해외시장 개척과 함께 타사의 제품보다 한단계 앞선 새로운 제품 개발에도 열을 올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며 세계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은성전기의 현지 투자방식은 다른 기업과 좀 달랐다. 통상은 중국 현지기업과의 합자 형태를 갖추는게 일반적이다. 외국기업은 토지 구매부터 시작해 각종 행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성은 사장은 “그런 힘든 점을 불사하고 독자로 사업을 벌여나갔기 때문에, 합자 투자에서 오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은성전기는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며 브랜드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사진은 2019 CISMA 상하이국제봉제기계전시회에 참가한 모습 <사진=은성전기>

은성전기의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힘을 쓰자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했다. 중국 등을 중심으로 불법 모조품이 활개를 친 것이다. 은성전기는 담당 직원을 중국에 상주시키며 지식재산권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중국에서 모조품에 대한 소송전을 벌여 한국기업이 승소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는데, 은성전기는 끝내 승소를 이끌어내기까지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고난의 시절이었다. 전세계가 힘들다보니 해외 바이어들의 자금사정도 악화됐다. 게다가 은성전기는 선금을 받고 나서 물건을 보내주는 시스템을 갖췄는데, “돈이 안오면 물건을 안 만들어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오더도 안 내는 상황”이 수개월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그때는 조금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이런 위기에도 한 우물을 판 은성전기의 기술력은 외면받지 않았다. “결국 다시 돌아오더라”고 김 사장은 웃었다. 특히, 바이어와의 관계를 중시한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50주년 축하영상을 보내온 수많은 바이어들이 내보인 신뢰가 큰 무기였다. 

기술과 신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파고를 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전세계인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서 의류제품의 개발이나 판매경쟁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은성전기의 제품을 사용하는 의류매장 등의 업종들도, 백화점에 입점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게 되는 등 큰 영향을 받았다. 은성전기 역시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김성은 사장은 이제는 코로나19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며, “우리 제품은 한번 쓰면 계속 쓸 수밖에 없다. 대체품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또, “다리미밖에 모르고 다리미를 기반으로 50년을 지내왔는데, 앞으로도 지금 지위를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한 우물을 판 뚝심과 변화에 대한 도전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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