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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든 늘 뭔가 발견하고 다시보기 해왔는데

Life is pain.ting #54. 실종신고 

기사입력2022-06-10 13:51

새로운 레지던시 입주를 앞두고 5월 일정을 짜서 베니스 비엔날레에 다녀오기로 했다. 소각장을 지나든, 평범한 풍경에 머물든 그곳에서도 늘 뭔가를 발견하고 다시보기를 해오던, 일종의 나를 구성하던 하나의 장기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실종된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의심했다. 지금껏 잔고장 한번도 없이 함께 뒤엉키고 잠들고 깨어나고 걸어오던 장기가 하루아침에 실종되었을 리 만무했다.

 

그랬다. 유년시절부터 어찌보면 피곤할 만큼 발달이 빨랐던 그 장기는 작은 체구에 담기지 못할 만큼 커져서 늘 등교시간을 늦추거나 결석을 일삼게 했다. 졸업할 때까지 단 한번도 개근상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봇대 앞에 놓인 쓰레기 위로 불룩이 오르다 못해 튀어나와 버린, 고장나거나 이유도 없이 버려져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수많은 물품들 사이에서 보석을 발견이라도 한 듯 무엇을 어디서부터 주워 담아야 하는지 황홀감에 대책없이 머물던 시간들.

 

비행기를 타고 비싼 돈을 들여 물리적으로 새로운 풍경으로 들어가 볼 필요도 없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고 친구들과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방학 때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온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발견한 즐거움도 컸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주로 서구권에서 목도했던 아시아권(특히 남성)을 향한 하대에 분노키도 했고, 보는 것만으로도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이 어느 시기에는 편견을 가지게 하기도 했다가 또다른 경험이 쌓이면서 모양이 변형되고 납작해지거나 색깔이 바뀌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바다 앞에 서서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는 풍경에 압도당해서 몇 날 며칠을 어쩔 줄 몰라 했던 통증과 흡사했던 순간이 있었고, 순식간에 어두운 하늘이 창창한 초록 오케스트라로 바뀌던 하늘 아래에서 왈칵 숨이 멎을 것만 같던 순간들과 사막을 찾아가던 길에 만난 딱 참외 크기만 하던 올빼미를 보고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는 사실을 느끼기도 했었다.

 

관광지가 아닌 로컬로만 말 그대로 쑤시고다니기를 좋아하던 나는 평생을 어느 골목에서 국수만 팔아온 할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을 문지방 닳도록 다니면서 짧은 만남과 이별, 그것이 주는 아쉬움이 결코 작지 않다는 걸 느꼈고 그 아쉬움이 때때로는 평생 그를 혹은 그녀를 궁금해 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여름밤 배앓이처럼 지나기도 했다.

 

공용주방에서 삼삼오오 모여 말을 트게 되고 긴긴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던 호스텔이나 백패커스에서 만난 히피스럽던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그 짧은 밤에 나누던 삶에 대한 고민들. 저마다의 삶에 대한 가늘지만 강렬하던 철학들. 마지막임을 알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던 눈동자들. 삶에 대한 연구 때문이라고 하지만 과열된 열정 때문인지, 그 공허함을 일찍 눈치 채버려서인지 스스로도 감당이 안될 만큼 자신을 끝으로 밀어붙이던 미친년들과 미친놈들이라 불리기 십상이던 사람들과의 애써 내색하지 않던 숨막히던 소통과 빈혈증세를 방불케 하던 두통.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배울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그것들을 다 배우기에는 삶이 기껏해야 백세 정도라는 사실이 억울했던 어떤 순간들이 분명히 내게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 이 장기가 조금 변했다는 걸 알아버린 때가 약 십년 전 즈음 비행기에 올랐을 때였다.

 

내가 선호하는 좌석은 어느새 복도쪽이 되어 있었고, 탑승 후 단 한번도 창밖을 내다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륙과 동시에 창문을 내리고 이어폰을 꽂거나 긴 비행에 대비한 카프카 단편집을 읽다가 잠들어 버렸다. 그게 일종의 신호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만 해도 일단 도착하고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면 다시 에너지가 솟곤 했다.

 

어딜 갈까. 어디서 보석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 가슴에 차올랐다.

 

그렇게 생생하게 내 몸속에서 장기처럼 나와 함께 살아가던 녀석이 스스로 자멸했을 리 없었다. 실종인지 죽음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실종이라면 실종신고를 서둘러서 내야 할 것이고, 사망이라면 장례를 치러줄 요량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경유를 하면 족히 스무 시간은 되는 여정이었고, 긴긴 비행시간만으로도 몸살기운이 도는 것만 같았다.

 

미루고 미루다가 출발 하루 전이 되어서야 트렁크를 열어 간단히 짐을 쌌고, 그대로 잠들었다가는 비행시간 내내 뒤척일 것 같아서 밤을 새고 공항으로 향했다.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도착한 베니스는 그 특유의 바다 냄새가 공항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고, 먼 곳까지 조명이 닿는 항구 근처의 바다 표면은 매끄러운 푸딩처럼 찰랑거렸다. 젖은 청바지처럼 쳐지고 무거웠던 몸이 그 표면 어딘가에 가볍게 던져진 기분이 스쳤다. 리도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약 한 시간 정도의 여정이 소요되었고, 잘 매만져 놓은 표면을 거칠게 부수면서 배가 이동하는 내내 지난 몇 년간의 팬데믹 기간과 그 사이 취소된 프로젝트와 좌절되었던 일들이 경로를 따라 거품처럼 솟아올랐다가 잘게 부서지고 납작해지는 듯했다.

 

사실 이러한 기분이나 느낌은 갑자기 떠나온 여행지나, 탁 트인 공간에 놓여질 때 어렵지 않게 혹은 매우 자연스럽게 스민다는 걸 안다. 어쨌거나 바닷바람은 쾌적하면서 시원했고, 아주 잠시나마 온갖 스트레스와 무력감에 쪄든 무거운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예약해 놓은 숙소는 리도섬에 도착해서도 버스로 약 20분 정도 이동해야 나오는 오래되고 작은 호텔이다. 자정이 훨씬 지나서 도착하는 나를 위해 호텔에서는 리셉션에 키와 몇 가지 메모사항을 프린트해서 친절하게 올려놓았다.

 

숙소는 지나가는 고양이 발자국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조용한 곳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창문을 열고 상체를 깊게 내밀고 숨을 들이켰다. 장시간의 비행에 완전히 방전된 체력과 작업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끊임없이 나를 파고들었던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두통과 심리적 압박들에 잠식되어 곧 고꾸라질 것 같은 상태였던 나는 샤워가 급했다.

 

일단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자는 거야.’ 내일이 없다는 듯이 잠들고 일어나서 그때 생각을 해보든, 생각을 접든 그때 알아서 해보자. 비행기 내부의 화장실처럼 좁은 화장실에는 한 사람이 겨우 서서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구석에 방수 커튼으로 나눠져 있었다. 굼벵이처럼 웅크리고 샤워를 하러 들어가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샤워젤을 스폰지에 짜 넣으며 무심코 그 컨테이너에 적혀있는 약 다섯줄 가량의 문구를 읽다가 나는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너는 너의 영혼이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몰라. 너는 너의 욕망이 깨끗하거나 순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너의 생각이 깨끗하거나 순수하거나 정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 젠장!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몸을 깨끗하게 하는 샤워젤을 만들었어!”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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