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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와 문학계의 대가…끝까지 말 못한 깊은 우정

우정의 침몰…폴 세잔과 에밀 졸라 그리고 소설 

기사입력2022-07-20 12:57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이건 나를 모욕하는 거야! 어떻게 졸라가 나에게 그럴 수 있어. 그 녀석이 나에게 화가를 해보라고 했잖아. 내가 화가로서 천재성이 있다고 했잖아. 고향에 있을 때, 파리로 와서 화가가 되라고 여러 번 편지에 썼던 것도 그 녀석이잖아. 졸라가 편지에 징징대며 파리로 오라고, 파리에 와서 그림을 그리라고 해서, 미술은 절대로 안 된다며 하던 법학 공부나 계속하라던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파리로 왔는데. 어릴 적 단짝 친구가 내가 유명해지지 못했다고 나를 이렇게 깔아뭉개다니. 대중이나 좋아하는 살롱전에 계속 낙선한다고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나는 미술계에서 별 볼 일 없지만, 자기는 문학계에서 유명하다고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다니. 그 녀석이 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랑티에는 분명 나야. 마지막에 자신의 그림에 만족하지 못해서 날뛰다가 자살해 버린 인물 말이야. 난 결코 자살 같은 걸 할 사람이 아니라고. 그리고 내 그림은 분명 언젠가 인정받을 거야!”

 

화가는 씩씩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폴 세잔, ‘사과 바구니’, 1890~1894년, 캔버스에 유화, 60×80cm, 헬렌 버크 바틀릿 기념 컬렉션.

 

화가를 광분케 한 문제의 소설=1886년 어느 날 40대 후반의 화가는 자신의 화실에서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었다. 급기야 그는 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는 책을 있는 힘껏 구기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얼마나 강하게 내동댕이쳤는지, 책은 바닥에서 튕겨 나와 탁자의 다리에 부딪혔다. 하얀 천 위에 사과들과 몇 개의 접시가 놓여 있는 탁자는 휘청거렸고, 우르르 소리를 내며 그 위에 있는 사과들이 떨어졌다.

 

분노에 가득 차 책을 던졌던 화가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이 사과들은 화가가 그리고 있던 정물이었다. 탁자 위 정물들은 그가 깊이 고민하며 공들여 하나하나 놓은 것이었다. 그 정물과 씨름하며 그림을 그린 것도 벌써 몇 달째였다. 그런데 탁자가 휘청거리면서 사과는 떨어지고 접시와 천은 흐트러져버렸다. 그 순간 분노에 가득 차 있던 화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사과들을 쫓아다니는 걱정 많은 사람으로 변했다. 화가는 겨우 바닥에서 나뒹구는 사과들을 주워서 양손으로 끌어안고 탁자로 갔다. 그리고는 탁자 앞에 있는 미완성 그림을 보면서 이전에 있던 대로 사과를 놓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탁자 다리 옆, 화실 구석에는 화가가 던진 책이 표지가 조금 찢긴 채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표지의 윗부분에 큼지막하게 L’ŒUVRE(작품)라는 제목이, 중앙에는 약간 작은 글씨로 ÉMIL ZOLA(에밀 졸라)라는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에밀 졸라(Émile Zola, 1870~1902)목로주점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겸 저술가다. 자연주의는 과학자가 보고서를 작성하듯이 인간 군상을 냉철하게 묘사하는 특징을 지닌 극단적인 사실주의를 의미한다. 졸라는 1886년에 클로드 랑티에라는 비운의 화가를 주인공으로 프랑스 미술계를 다룬 소설 작품(L’ŒUVRE)’을 썼다.

 

1886년 에밀 졸라가 출간한 소설 ‘작품’
그런데 이 소설책을 읽고 어떤 화가가 광분한 것이다. 누가, 왜 그랬을까? 그 화가는 바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이다. 사실 이 글 처음에 나오는 세잔의 혼잣말과 그가 분노하며 졸라의 책을 던졌다는 것은 그 당시를 상상하며 적은 글이다. 하지만 세잔은 아마 그때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가 후배 화가와 와인을 마시며 했던 말이 있다. “어느 날 그의 책 작품을 받았지. 그 책은 정말 충격이었어. 그가 날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게 됐거든. 한마디로 몹시 나쁜 책인 데다가 다 틀린 얘기야.”

 

절친의 결별=폴 세잔과 에밀 졸라는 어린 시절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부르봉 학교를 함께 다녔던 단짝 친구였다. 졸라가 파리로 떠난 후에도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며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는 내용의 편지를 자주 교환하던 사이였다. 세잔은 은행가로 자수성가한 권위적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향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미술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그런 사정을 잘 알던 졸라는 세잔에게 편지를 써서 파리에 와서 화가가 되라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젊은 시절 졸라는 세잔을 무척 그리워했기에 어쩌면 세잔과 가까이에서 지내고 싶어서 그를 파리로 오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세잔은 22살이던 1861년에 진정한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에 왔다.

 

하지만 그는 졸라가 생각했던 것처럼 화가로 유명해지지 못했다. 세잔은 파리에 있으면서 그저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하루하루 살아갔다. 하지만 졸라는 30대 후반에 쓴 목로주점이 외설스럽고 부도덕하다고 강력히 비난받았지만, 많은 지식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고 명성까지 얻게 됐다. 세잔은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졸라와 자주 연락했는데, 졸라는 늘 세잔에게 추진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그를 무시했다.

 

세잔은 위대한 화가의 천재성을 지녔을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위대한 화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사소한 장애물에도 좌절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졸라는 세잔을 이렇게 평가했다. 서로 단짝이었고 20대 시절 서로가 너무 그리워 편지를 자주 했던 사이였지만, 결국 그 둘은 1886년 절교하게 된다. 그 이유가 바로 작품이라는 소설 때문이었다. 세잔의 나이 47세 되던 해의 일이다.

 

2016년에 개봉한 다니엘르 톰슨 감독의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Cézanne et Moi)’ 포스터.
세잔이 분노한 이유는, 이 글의 처음에 서술된 혼잣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소설에 등장하는 실패한 화가인 랑티에가 자신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랑티에는 천재성과 혁명정신을 가진 뛰어난 화가였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도 자신의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그림 앞에서 목을 매고 자살하는 화가다. ‘작품속 주인공 랑티에는 세잔과 여러 면에 비슷했다. 세잔은 졸라가 자신의 예술적 신념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소설을 빗대어 자신을 실패한 화가처럼 만들었다고 분노했다. 이 소설의 출판을 계기로 이 둘은 완전히 갈라섰다.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그렇다면 정말 랑티에가 세잔을 모델로 한 화가일까? 혹시 세잔의 피해망상은 아닐까? 비운의 주인공 랑티에의 모델이 세잔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졸라가 훗날 쓴 비망록에 랑티에를 극적으로 각색된 마네 또는 세잔, 굳이 말하면 세잔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졸라가 세잔을 조롱하려고 이 소설을 쓴 걸까? 그렇다고 보기 힘들다. 여러 정황상 졸라는 예술가의 창작에 대한 어려움을 보여주고자 이 소설을 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의도를 죽는 날까지 세잔에게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세잔과 졸라의 우정과 파국, 그리고 창작에 대한 고통은 다니엘르 톰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2016년 개봉된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Cézanne et Moi)’에 세잔과 졸라 사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톰슨 감독이 이 영화에서 허구적 설정을 중심에 뒀다는 점이다. 바로 1888년 세잔이 졸라의 집에 방문해 졸라와 만나는 사건이다. 사실 작품이 발표된 1886년 이후 이 둘은 다시 만난 적이 없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파국 이후 이 둘이 만나는 허구적 상황을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룬다. 그는 인터뷰에서 서로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를 털어놓는 기회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우정이 깊었던 세잔과 졸라가 이렇게 끝난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30대 후반에 문학계에서 인정받은 졸라와 50대가 돼서야 미술계에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 세잔. 인정의 시간 차가 결국 30년 우정을 깼다. 역사에 가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 둘이 끝까지 깊은 우정을 나눴다면, 미술계와 문학계의 대가가 나눈 세기의 우정으로 남지 않았을까. 우정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본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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