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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꾸며낸 여성성 통해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 표현했나

모나리자의 콧수염과 여장한 뒤샹 

기사입력2022-08-17 17:15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이 모나리자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을 정도로, ‘모나리자는 미의 상징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품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페르나도 보테로의 ‘12세의 모나리자’(1959)나 장 미셸 바스키아의 모나리자’(1983), 뱅크시의 바주카포를 든 모나리자’(2001) 등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하거나 풍자한 작품이 많다.

 

그중 시초격인 작품이 바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문제작 ‘L.H.O.O.Q.’(1919)이다. ‘수염 난 모나리자라 불리기도 하는 이 작품은 다 빈치의 사망 400주년을 기념해서 제작된 모나리자 작품 인쇄엽서에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을 그려넣고, 그 밑에 L.H.O.O.Q.라는 짧은 문구를 써놓은 작품이다. 뒤샹은 1919년 파리의 한 길거리에서 이 엽서를 구매해 장난처럼 약간 가공해서 작품으로 선보였다. 뒤샹은 레디메이드(Ready made, 기성품)인 남성의 소변기를 미술작품으로 제시한 으로 유명한데, L.H.O.O.Q. 또한 일종의 레디메이드 미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모나리자 그리고 수염과 뜨거운 엉덩이=L.H.O.O.Q.는 신비로운 미소를 지녔다며 우상시 되었던 모나리자를 우스꽝스럽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명작에 대한 권위와 창조성에 대한 숭상을 전복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뒤샹의 문제작인 것은 단순히 신비로운 미소를 지닌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린 것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L.H.O.O.Q.라는 글자 때문이다. 이 글자를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L). 아쉬(H). (O). (O). (Q)’인데, 이러한 엘 아쉬 오 오 퀴를 붙여 읽으면 엘라쇼퀼(Ell a chaud au cul)’로 들린다. 그런데 문제는 프랑스어 엘라쇼퀼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라는 통속적인 의미라는 사실이다. 이는 여성을 일종의 성적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앞서 밝혔듯이 뒤샹이 장난처럼 이 작업을 제작한 시기는 다 빈치의 사망 400년이 된 해로, 그의 업적에 프랑스 미술계가 열광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과거의 전통과 권위를 대표하는 명작을 장난스럽게 조롱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것은 분명 크게 논란이 될만한 일이었다. 뒤샹이 다 빈치의 사망 400주년을 생각하며 이러한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기가 시기인 만큼 여론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 작품은 모나리자의 명성을 끌어안고 또 하나의 명화로 남았다.

 

마르셀 뒤샹, ‘L.H.O.O.Q.’, 1919, 엽서 위 드로잉, 19.7×12.4cm<출처=arthive.com>
그렇다면 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모나리자 인쇄엽서의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리고, 아래 글자 몇 개 끄적거린 정도의 작품에 어떤 해석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성에게 남성성의 상징이라고 해석되는 콧수염을 그려넣은 것은 성 정체성과 관련해서 이야기할 부분이 있다. 수염은 주로 남성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뒤샹은 신비로운 여성상의 대표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려넣음으로써 성 정체성을 뒤짚는다. 그에 반해 엘라쇼퀼로 발음되는 제목은 여성을 향한 통속적인 은어다. 이 둘이 함께 있으면서 모순적인 느낌을 증폭시킨다.

 

그렇다면 뒤샹이 여성에게 남성의 이미지를 덧씌운 후에 다시금 직접적으로 그녀를 언급한 사실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오미 새월슨-고스(Naomi Sawelson-Gorse)다다의 여성들(Women in Dada)’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뒤샹과 같은 남성 다다이스트(dadaist)에게 여성은 오염되지 않은 성모여야 하면서도, 동시에 그 순진함이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뮤즈 같은 존재로 대상화 및 차용됐다고. 남성 다다이스트의 여성혐오성(misogyny)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뒤샹의 이후 행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참고로, 다다이즘을 신봉하는 작가를 다다이스트라고 한다. 다다이즘은 줄여 다다로도 불리며, 1차 세계대전 중 반이성, 반도덕, 반예술을 표방한 예술사조이자 예술운동이다. 뒤샹 또한 다다이스트였다.

 

여장의 역설=뒤샹은 L.H.O.O.Q.를 선보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과 친했던 시각예술가 만 레이(Man Ray)가 자신을 찍은 사진 몇 장을 공개했다. 이 사진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뒤샹이 여장한 모습으로 촬영한 에로즈 셀라비(Rrose Sélavy)’(1920~1921) 사진이다. ‘에로즈 셀라비는 처음에 로즈 셀라비(Rose Sélavy)’였으나, 이후에 변경된 명칭이다. 이 명칭은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여성으로서뒤샹의 또다른 서명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뒤샹은 에로즈 셀레비를 사용함으로써 여성으로서 정체성까지 갖고자 한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여성으로써 정체성을 가지려 했던 건 아니다. 단지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먼저 생각한 것은 유대식 이름이었다. 그렇게 하면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종교적 정체성이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히 마음에 드는 유대식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고민하던 중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가 아예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더 쉽겠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로즈 셀라비로 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름을 통해 남성 가톨릭 신자가 유대인 여성의 정체성을 품게 되었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as Rrose Sélavy’, 1920, 사진 인화, 21.6×17.3 cm, Man Ray Trust/ADAGP, Paris and DACS, London 2015.
이러한 뒤샹의 행위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자기 안에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거나, 젠더의 모호성을 강화한다고 평가되곤 한다. 이 때문에 뒤샹의 이러한 작업이 젠더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끌고, 여성을 보다 주체적인 위치에 앉힐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엔 부정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에로즈는 에로스(Eros)처럼 들리기 때문에 에로즈 셀라비는 프랑스어로 에로스, 그것이 인생이다(Eros, c’est la vie)’라는 의미가 된다. 다다이스트가 말장난을 즐겨썼는데, 에로즈 셀라비는 이러한 의미를 갖도록 의도적으로 지은 이름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는 여성을 주체에 놓는 것보다 그저 에로스를 더욱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한 건 아닐까? 뒤샹의 생각을 알 수 없지만, 의심의 여지가 있다. 더불어 뒤샹이 여장한 것이, 또는 여성의 정체성으로 작업한 것이 여성을 주체화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가도 질문해야 한다. 리저(Todd W. Reeser)와 같은 젠더학 학자들은 여장으로 남성이 여성성을 입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남성임에도 남성이 아닌 것이 되려는 시도에서 오는 좌절은 결국 성의 이분법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뒤샹이 셀라비로서 취한 행동들은 젠더의 모호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남성성을 강화하는 또 다른 양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분명히 여성처럼 꾸미고 있지만, 그가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보일 때, 그의 남성성은 꾸며낸 여성성을 통해 자기 자신을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나리자의 여성성을 희화화한 L.H.O.O.Q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젠더를 모호하게 하거나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은 것은, 뒤샹이 의지와 계획을 가지고 하지 않았을지라도, 남성을 우월한 존재로 보이도록 재탄생시킨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뒤샹의 L.H.O.O.Q와 에로즈 셀라비 작업은 여성을 남성으로, 남성을 여성으로 뒤바꾸는 작업이나, 여성 혹은 남성의 정체성에 관해 작업할 때 깊이 고민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서 성 정체성 작업은 장난스럽게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속에는 무의식 깊이 파고든 젠더의 위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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