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이코노미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 매체
2023/03/27(월) 12:05 편집
스마트복지포털

주요메뉴

스마트CFO
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프린트
라운지예술을 읽다

전쟁의 폭력성과 인류의 상실감을 그리다

을씨년스런 숲, 장엄한 폐허, 공허한 대지…‘전쟁과 예술’ 안젤름 키퍼 

기사입력2022-10-06 09:55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대부분은 하루 전까지도 전쟁이 정말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으로 급히 대피한 한국인의 말이다. 하지만 2022224일 오전 5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겨냥해 160발 이상의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키이우 시민은 이른 새벽하늘에 번쩍이는 섬광을 봤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그 전날 밤까지도 다음 날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시작됐다. 그리고 6개월이 넘어선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 수가 1000만명이 넘었는데, 이 숫자는 제2차 대전 후 최대 규모다. 또한, 지난 814일까지 민간인 5500명이 죽고, 7700명이 다쳤다. 양국의 군인도 10만명 이상 죽었다.

 

안젤름 키퍼, ‘바루스(Varus)’, 1976, Oil and acrylic on burlap, 200×270cm, Photo by Jochen Littkemann, Berlin. <출처=Artsy>

 

이 전쟁은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한 사람의 결정으로 시작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러시아에서 푸틴의 인기는 고공 행진 중이라는 사실이다. 침공 바로 전에 69%의 지지율이 침공 직후 80%대로 치솟았고, 8월 초의 여론조사에서 81.3%가 나왔다. 그의 만행을 규탄하는 사람 중 다수는 그가 제2의 히틀러라고 말한다.

 

우리는 히틀러가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 7000만명이 죽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며, 유대인 600여만명을 학살한 극단적인 인종주의자다. 전후(戰後) 독일은 나치 정권의 부끄러운 역사를 민족적인 트라우마로 지니게 되었다. 러시아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전쟁의 폭력성과 인류의 상실감을 그리다

 

전후 독일 정부는 나치의 발자취가 잊히길 원했다.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고자 나치 정권 시절의 주요 건축물을 모두 파괴했다. 전후 서독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오로지 경제부흥에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과거는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전후 독일은 나치 정권이 벌인 잔혹한 전쟁 때문에 치욕스러운 과거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독일의 전후 세대는 앞세대를 비판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갔다. 그들은 자기 민족의 죄상을 폭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들 중 가장 주목을 받은 미술가는 아마도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일 것이다. 그는 전후 독일에서 가장 유명할 뿐만 아니라, 가장 논쟁적인 미술가이기도 하다. 잔혹한 전쟁을 벌이며 세계를 피로 물들게 한 독일의 어두운 과거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보여주었던 그는 을씨년스런 숲, 장엄한 폐허, 공허함이 가득한 대지 등을 통해 어둡고 무겁지만 강렬한 방식으로 전쟁의 폭력성과 인류의 상실감을 드러냈다.

 

안젤름 키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에 독일에서 미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쩌면 자신이 태어난 해에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전쟁을 더 의미 있고, 특별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태어난 도나우싱겐은 전쟁이 유독 심했던 지역으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전쟁의 폐허 속에서 그 참혹함과 비극을 보며 자랐다. 1970년대부터 키퍼는 정치와 사회문제를 미술로 담아내었던 요제프 보이스에게 미술을 배우면서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키퍼는 작품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았는데, 특히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숨기고, 지우고 싶은 나치 정권의 부끄러운 역사를 상징적이면서도 강력하게 보여줬다.

 

안젤름 키퍼, ‘실내(Innenraum)’, 1981, Oil, acrylic and paper on canvas, 287.5×311c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테드릭 근대 미술관 소장.

 

예를 들어, 1976년 발표한 바루스(Varus)’는 독일 민족의 탄생으로 신성시되어 온 토이토부르크(Teutoburg) 숲 전투를 연상시키는 제목과 을씨년스럽게 그려진 숲의 형상을 통해 전쟁에 관한 독일인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작품 제목인 바루스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게르만족의 영웅 아르미니우스(헤르만)에게 패한 로마 장군의 이름(Quintilius Varus)이다.

 

깊은 원근감과 흘러내린 핏자국, 바람에 날리는 실처럼 흩뜨려져 있는 흰색 선, 암울한 숲속 장면 등은 작품을 무겁고 어둡게 만든다. 특히 독일 영웅들의 이름을 곳곳에 배치해 을씨년스러운 숲의 이미지가 스며들게 함으로써 독일의 유산과 전쟁을 일으켰던 과거에 대해 반추하게 한다. 전경에 있는 영웅의 이름인 ‘Hermann(헤르만)’은 독일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독일의 정신적 영웅들 이름‘von Schlieffen’, ‘Kleist’, ‘Holderlin’, ‘Königin Luise’ 등은 자긍심을 고취하지만, 그 분위기는 무척 암울하다.

 

1981년 발표한 실내(Innenraum)’도 유사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나치 집권기에 총통의 남자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가 지은 총통 관저의 실내를 폐허처럼 그린 작품으로, 유화를 바탕으로 사진과 목판을 첨가하고 거기에 지푸라기와 재 등을 부착했다.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지푸라기와 재와 같은 자연소재의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폐허의 우울한 느낌을 더욱 짙게 한다. 압도하는 크기와 과도한 원근감, 그리고 거친 표현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독일사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그런가 하면, 1986년 선보인 -(Eisen-Steig)’은 수용소로 가는 유대인들이 탄 기차의 운전자가 본 철로를 그린 작품으로, 거친 표현과 암울함 분위기가 진하게 풍긴다. 이 작품은 폭이 4미터에 가까운 대형작품(220×380×27.9cm)인데, 죽음의 공간으로 향하는 열차를 운전하는 가해자의 시각을 압도적인 크기로 표현함으로써 감상자를 공포감에 휩싸이게 한다. 키퍼는 그 외에도 많은 작품에서 온갖 독일적인 상징을 넣음으로써 가해자로서 독일을 거듭 소환한다.

 

과거와 대면 하기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안젤름 키퍼, ‘Occupations’ 연작 사진, 1969.
안젤름 키퍼는 나치 정권의 폭력성을 수면으로 떠 오르게 했지만, 그는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특히 그는 초기에 나치와 파시즘을 숭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학위 취득을 위해 제출한 ‘Occupations’ 사진 연작 때문이었다.

 

칼스루에 아카데미의 미술전공 학생으로 그는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기념될 만한 곳에서 군복을 착용하고 히틀러를 흉내 내는 포즈(히틀러식 경례)를 재현했고, 그것을 사진 자화상 시리즈로 발표했다. 이 학위 취득 작품을 받아든 교수들뿐만 아니라, 대중과 비평가는 패닉에 빠졌고, 안젤름 키퍼를 맹비난했다.

 

이외에도 독일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키퍼의 작품 중에는 히틀러의 나치 제3제국의 선전물과 유사한 표현방식을 노골적으로, 혹은 강한 암시를 내포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이 나치에 대한 반어적 표현인지, 아니면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우월감을 표현하는 파시즘적 태도인지에 관해 논쟁이 벌어졌다.

 

그는 이러한 표현방식을 통해 그저 숨기기에 급급했던 과거 독일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후 세대가 이전 세대의 죄상을 폭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지만, 그러한 행동이 파국에 이른 민족적 유산과의 적극적 대면이라기보다는 그로부터 벗어나는데 주안점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반성이라는 미명 아래 덮어두려고만 했다.

 

키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1945년 사람들은 자신들이 완벽한 새 출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난센스다. 과거는 터부시되었고, 땅속의 그것을 다시 파내 지상으로 끄집어내놓은 것은 격렬한 저항과 혐오감을 낳는다.” 이 말을 통해 우리는 그의 문제작이 실은 그가 터부시되었던 독일의 과거를 일부러 다시 파내 지상으로 끄집어내놓은행위의 일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안젤름 키퍼는 독일인이 과거와 적극적으로 대면하길 원했던 것이다.

 

키퍼의 작업을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혹한 상황이 떠오른다. 과연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독일인이 히틀러에게 열광했듯이, 러시아인은 푸틴에게 열광한다. 하지만 후대의 러시아인은 지금의 전쟁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안젤름 키퍼의 작품을 바라보며,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길 기도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top
스마트에듀센터

객원전문 기자칼럼

 
  • 기업법률
  • 상생법률
  • 부동산법
  • 상가법
  • 생활세무
  • 판례리뷰
  • 인사급여
  • 노동정책
  • 노동법
  • 세상이야기
  • 민생희망
  • 무역실무
  • 금융경제
  • 부동산
  • 가맹거래
  • 기본소득
  • CSR·ESG
  • 예술만세
  • 작가노트
  • 예술별자리
  • 개인회생
  • 빌딩이야기
  • 플랫폼생태계
  • 정치경제학
  • 가족여행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