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또 반대하는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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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또 반대하는 대기업 상생의지 의심…오히려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했다는 증거로 읽힌다

기사입력2022-12-09 14:27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중소기업계는 오랜 기간 납품단가 연동제의 법제화를 요구해왔다. 사진은 지난 4월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습 <사진=중소기업중앙회>

납품단가 연동제가 마침내 법제화됐다. 하지만 새로 도입될 제도의 한 축인 대기업들은 여전히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상생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반대로, 법제화하지 않았다면 납품단가 연동제가 자율적으로 작동하기 힘들 것이란 증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8일 국회는 납품단가의 연동제 등을 포함한 상생협렵력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납품계약을 할 때 원재료의 가격이 변동하는 경우 대금을 조정한다는 내용을 담도록 했는데, 최대 10%의 상한을 뒀다. 원재료의 가격이 10% 급상승했는데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않으면 납품기업의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세부 비율은 양자간 합의로 정하기로 했으니, 업종별 상황에 따른 유연한 적용도 가능하겠다. 소액이나 단기계약, 위탁기업이 소기업인 경우 등은 적용에 예외를 두기도 했다.

중소기업계의 오랜 염원이자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의 공통공약이기도 한 납품단가 연동제는, 지난 정부에서 시범사업 시행까지 결정하며 법제화에 속도가 붙고 있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납품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이라, 이번 국회에서 연내에 법제화를 의결한 것은 좋은 결정이라 평할 만하다.

문제는 대기업 측의 반응이다. 전경련은 8일 논평을 통해 “심히 우려를 표한다”고 했고, 대한상의는 “무리하게 입법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기업 측은 그동안 납품단가 연동제 논의과정에서 반대의사를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 지난 11월에는 “경제 5단체” 명의의 법제화 반대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통상 경제단체들이 공동성명을 낼 때는 주요 경제 6단체가 함께 참여한다. 그러나 이 성명의 경우 대한상의, 전경련, 무역협회, 경총, 중견기업연합회가 참여했고 중소기업계의 대표격인 중소기업중앙회가 빠졌다.

납품단가 연동제 반대 성명에 중기중앙회가 빠진 이유는 명확하다. 납품단가 연동제의 법제화를 중소기업계가 10년이 넘게 추진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11월에만 해도 중기중앙회는 정부·여당과 함께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협의를 한 바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속도로 치솟아 납품업체 전반이 명재경각의 위기에 내몰린 와중이라, 어느 때보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의 필요성이 큰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시기에 대기업들이 일제히 납품단가 연동제의 법제화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것은 우려스럽다. 법제화 이전에 자발적인 납품단가 조정이 활발히 이뤄졌는지가 우선 의문이다. 납품업체가 먼저 납품단가를 조정해달라고 하기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상력 차이의 벽이 너무 높다. 상생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납품단가를 올려준 기업들도 있었지만 일부에 그쳤다. 대기업의 선의만 기대하기에는 원자재 가격 급상승의 충격이 너무 큰 것도 문제다.

결국 납품단가 연동제가 법제화되기에 이르자, 이제는 법제화로 인해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대기업들이 반대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상생의지가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된다. 반대로,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 계약 시 납품단가 조정 요건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제화하는 것이 오히려 분란을 줄이는 합리적인 방향이란 결론에 오히려 힘이 실리게 된다.

이제는 법제화가 됐으니,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경우 납품단가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계약을 체결한 뒤 이를 성실히 이행할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 상황일수록 상생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겠다. 간신히 마련된 납품단가 연동제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감시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