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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공상·환상 아니다…“명쾌한 대안”

뜨거운 의제가 된 이유는…기능부전에 빠진 ‘복지체제’ 살리기 위해 

기사입력2023-01-26 00:00
오준호 객원 기자 (munard@daum.net) 다른기사보기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저자)
어떤 어젠다가 다양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기본소득이 주요 의제로 떠오르자, 그에 대한 비판도 여러 방향에서 제기된다.

 

지난해 기본소득은 공상이거나 환상이라고 비판하는 책이 출간됐다(김공회, ‘기본소득, 공상 혹은 환상’, 오월의봄). 저자는 기본소득론이 실현 가능성이 없고, 실현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공상 혹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기본소득론은 역사적으로 삶의 안정이 흔들릴 때 ‘기본을 보장하라며 등장한 즉자적이고 발본적인 주장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응하며 구축된 정교한 시스템이다. 반면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라는 너무 단순한 해법이라, 현대국가가 받아들이기엔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기본소득의 공유부 수익배당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권에는 도전하지 않고 공동재산의 이익 분배에만 관여한다고 한다. 그래서 보수적 해법이고, 이것으론 실업과 빈곤 등 자본주의의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은 타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기본소득의 그 단순성이야말로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복지국가의 무기력함에 대한 효과적 해법이 될 수 있다.

 

현대국가, 특히 서구 복지국가는 양극화와 불평등, 이로 인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데 전혀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 불평등이 커지는 원인 중 하나는 기존 복지체제가 현대사회의 새로운 위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다.

 

현대국가들의 복지체제는 정규직 남성노동자가 기준인 사회보험 위주 복지체제로, 완전고용 시대에 그 틀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플랫폼 자본주의로 변화하면서 비표준적 일이 늘자, 사회보험 체제가 포용하지 못하는 노동의 사각지대가 커졌다. 하지만 기존 사회보험 위주 복지체제에선 고용과 소득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자가 더 후한 복지를 제공받고, 그 결과 양극화는 더 벌어졌다.

 

조건 없고 보편적인, 기본소득의 ‘단순성’은 현대사회가 복잡할수록 장점이 된다. 사회보험제도 개혁과 더불어 기본소득이라는 선제적이고 보편적인 안전망이 꼭 필요하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노동 형태뿐만 아니라 사회위기 양상도 점점 예측하기 어렵다. 팬데믹이 수년이나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를 차단할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갑작스러운 위험이 닥친 다음 선별해 구제하는 방식은, 정작 지원이 필요한데 누락되는 사람이 생기고 지원의 공정성 시비에 따른 사회갈등을 일으킨다. 20205월 전 국민에게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과 달리, 20219하위 88퍼센트국민만 지급한 상생국민지원금에 대해 비판 여론이 뜨거웠던 것을 기억해보라.

 

조건 없고 보편적인, 기본소득의 단순성은 현대사회가 복잡할수록 장점이 된다. 기본소득은 기여 여부나 소득 수준을 따지지 않으므로 현 사회보험과 공적부조처럼 사각지대가 없다. 사회보험제도 개혁과 더불어 기본소득이라는 선제적이고 보편적인 안전망이 꼭 필요한 이유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복지체계에서 누락돼 비극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같은 사건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공유부 수익배당으로서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적 소유권에 도전하지 않는 보수적 해법이란 지적도 타당하지 않다. 기본소득은 개인의 성취가 상당한 부분 모두의 것인 공유부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그 이익을 독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곧 사유재산을 개인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봐서 절대가치를 부여하는 자본주의 소유권체제에 근본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공유부 수익배당의 철학에 관해, 인공지능 개발의 선구자이기도 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1978) 허버트 사이먼의 말을 들어보자. 사이먼은 소득은 사회적 자본, 특히 사회가 공통으로 쌓은 지식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공통 유산을 활용해 얻은 수익은 그 상당 부분을 사회에 되돌려줘서 공통 유산 형성에 기여한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

 

미국이나 북서유럽 같은 부유한 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은 소득의 90퍼센트 이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90퍼센트의 소득세를 걷어 사회적 자본의 실제 소유자에게 그 부를 돌려주라고 주장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70퍼센트의 비례세만 거둬도 세수 절반으로 정부 지출을 충당하고 그 나머지로 모든 주민에게 연간 8천 달러의 유산을 지급할 수 있다.”(허버트 사이먼, 2000, 김찬휘, ‘기본소득101’, 스리체어스에서 재인용)

 

진보적 기본소득론자들은 지식공유부의 활용에서 나온 수익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자고 주장한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는 토지 사용, 탄소 배출(대기 사용), 지식공유부 사용 등에 목적세를 부과하고 그 세수로 1인당 월 65만원 이상 기본소득을 보장한다고 공약했다.

 

기본소득은 공상도 환상도 아니다. 정당성도 충분하고 구체적 계획도 있다. 당장 실시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스페인 카탈루냐주가 하듯 정책 실험을 벌여 효과를 확인해볼 일이다. 기능부전에 빠진 현대국가의 복지체제를 살려내려면 과감한 발상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기본소득이라는 명쾌한 대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중국 원나라 어느 선사는 칼 든 무사 앞에서 웃으며 번갯불로 봄바람을 베려는가?” 했다고 한다.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도 시절이 되어 부는 봄바람을 벨 순 없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때를 만난 사상은 막을 수 없다라고 했다. 기본소득이 뜨거운 의제가 된 건 그것이 시절이 되어 부는 봄바람이요, 때를 만난 사상이어서다. 여러 비판이나 반대에도 기본소득의 인기가 꺾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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