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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이 돈 많은 대기업 대신 유권자 보게하려면

모든 유권자에게 정치후원금 지급하는 ‘민주주의 기본소득’ 어떨까 

기사입력2023-05-09 00:00
오준호 객원 기자 (munard@daum.net) 다른기사보기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저자)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11표는 상식이다. 부자든 빈자든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배웠다. 그런데 실제로 모든 표는 동등할까?

 

정치에는 돈이 든다. 그래서 정치인은 정치자금 모금에 사활을 건다. 정치인이 고액 후원자의 영향을 아니 받을 수 없는 이유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선 후 고액 기부자들을 해외 대사로 지명해 눈총을 샀다. 50만 달러를 기부한 메그 휘트먼 전 이베이 CEO는 케냐 대사로 지명됐다. 외교 분야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유권자가 1표씩 똑같이 가졌다 해도 정치인이 고액 후원자의 관심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 표의 영향력은 동등하지 않다. 정치인이 고액 기부자의 관심사를 좇아갈수록, 정치에 후원할 여유가 없는 일반 유권자는 정치 효능감을 잃는다. 갈수록 민주주의 운동장은 기울어진다.

 

11표는 과연 민주주의 정치의 상식인가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시는 2024년 선거부터 민주주의 달러(Democracy Dollars)’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등록한 모든 유권자에게 연간 100달러의 정치후원 바우처를 제공해 시 교육위원, 시의원, 시장 후보자에게 자유롭게 후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2022년 시의회가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울어진 민주주의를 평평하게 만들자는 취지다.

 

그동안 공직선거는 고액 기부자의 후원을 받는 엘리트 정치인들 무대였다. 하기에 제도 도입을 지지한 운동가들은 이 제도가 풀뿌리 후보자를 위한 게임체인저가 되리라 기대한다. 많은 자산이나 부유한 기부자 인맥이 없어도, 리더십을 발휘해 소액 후원을 모은다면 부유한 후보들과 겨룰 수 있기 때문이다.

 

오클랜드시 민주주의 달러는 선거제도 개혁과 함께 도입됐다. 민주주의 달러 제도로 후원 받는 공직 후보자는 최고액 기부자 세 명을 공개해야 하고, 강화된 선거자금 지출 규제를 지켜야 한다. 후보 토론회 등 주요 행사에도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지금껏 소수 고액 기부자에 의지한 후보자들은 토론회 등 일반 유권자를 위한 선거운동에 무관심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 달러 제도는 2016년 미국 시애틀시에서 시작해,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자 다른 지자체로 확대됐다. 시애틀에서 제도 시작 후에 소액 후원 참여가 활발해졌고, 특히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된 인구집단에서 참여가 늘었다. 바우처를 사용한 흑인 유권자와 히스패닉 유권자 비율은 2019~2021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백인 유권자도 바우처 사용률이 늘었다. 저소득계층과 청년집단도 괄목할 만큼 바우처 사용률이 증가했다.

 

1인1표를 동등하게 만들 게임체인저가 필요하다. 차별적인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 대신, 모든 유권자에게 정치후원금 지급하는 ‘민주주의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어떨까?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민주주의 달러는 민주주의 기본소득이라 부를 수 있다. 기본소득의 요건을 엄격히 갖추지 못했지만, 모든 유권자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기본소득은 기울어진 민주주의 운동장을 바로잡고 다원적 민주주의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영향력을 동등하게 조정하며, 신생정당과 풀뿌리 정치인 등장을 돕는 까닭이다.

 

게임체인저 민주주의 기본소득 상상하자

 

한국에는 깨끗한 정치문화를 북돋는 취지의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가 있다. 정당과 정치인에게 후원하면 세금을 덜어준다. 흔히 ‘10만원 내고 10만원 돌려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제도는 상당히 차별적이다.

 

후원금 10만원까지 전액을 세액에서 공제해주지만, 혜택을 받으려면 납부세액이 10만원 이상 돼야하기 때문이다. 소득이 면세점 이하거나 연말정산 대상이 아닌 국민은 소외된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전체 유권자 4400만명 가운데 30% 정도다. 학생, 주부 등 비경제활동인구나 일용직 노동자는 쌈짓돈을 털어 정치후원을 해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 제도는 안정적인 소득원이 있는 국민만을 위한 것이다.

 

차별적인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 대신, 민주주의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어떨까? 기본소득당은 대선에서 기본정치후원금 도입을 공약했다. 모든 유권자에게 기본정치후원금 1만원씩 매년 지급하고, 공직선거가 있는 해엔 선거당 1만원을 추가 지급한다. 지난해처럼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겹치면 3만원을 지급한다(1+1+1). 돈은 정치 후원에만 사용할 수 있고 시한이 지나면 소멸된다.

 

예산은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를 폐지하고, 거대정당만 유리한 국고보조금과 선거보조금 제도를 개혁해 마련한다. 국고보조금, 선거보조금, 선거비용보전금으로 거대양당이 지난 3년간 받은 돈이 5500억원이다. 납세자 세금으로 거대양당만 지원하고 고액 후원자와 정규직 시민의 기부에 과하게 의지하는 현 제도를 고치면, 모든 주권자를 위한 민주주의 기본소득을 설계할 수 있다.

 

소수정당, 신인정치인은 항상 자금 부족으로 허덕인다. 거대정당은 기본만 해도 선거자금을 돌려받지만, 소수정당 정치인은 선거 치르면 빚을 지기 일쑤다. 특히 진보정당은 그 지지자들도 사회적 소수자일 때가 많아 자금마련이 더 어렵다. 정치자금 양극화는 유권자의 선택지를 획일화하고, 그럴수록 기성정당은 국민의 눈치를 안 보게 된다.

 

민주주의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시민은 자신과 가치가 일치하는 신생정당을 후원해 키워낼 수 있다. 기성정당에서도 계파에 줄서지 않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성장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당들이 돈 많은 이익단체나 대기업 대신 유권자의 눈치를 보고, 유권자가 바라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이는 국민주권 성숙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국회는 19년 만의 전원위원회를 열어 선거제 개혁을 논의했으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성과 없이 끝났다.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란 불신을 바꿔야 한다. 11표를 동등하게 만들 게임체인저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기본소득이 그것일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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