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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생명윤리 넘어선 작업으로 충격 주려는 예술가

생활세계를 무시하는 ‘영감’은 ‘홀림’일 뿐이다…예술의 윤리㊦ 

기사입력2023-07-23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예술과 생명 중 무엇이 우선인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부분 당연히 생명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간혹 어떤 예술가는 생명보다 예술을 더 중요시하기도 한다. 금기를 깨는 행위에 박수를 보내는 사회적 분위기는 예술가에게 충격적인 작업을 선보이도록 강요한다. 이 때문에 생명윤리를 넘어서는 작업으로 충격을 주려는 예술가가 등장한다. 생명윤리는 예술의 윤리적 논란에 자주 거론되는 또 다른 중요 쟁점 중 하나다.

 

예술과 생명 중 무엇이 우선인가=생명윤리의 경우, 사회윤리와 관계 맺는 경향이 강한데, 특히 아동을 대상화하는 것이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다. 아동 생명윤리의 논란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케빈 카터(Kevin Carter)독수리와 소녀(Vulture and the Child)’ 사진을 들 수 있다

 

이 사진은 아프리카 수단의 참혹한 상황을 극적으로 찍은 사진으로, 오랜 굶주림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아 힘없어 무릎 꿇고 엎드려 있는 어린아이와 마치 그 어린아이를 먹잇감으로 삼으려는 듯 뒤 편에서 아이를 노려보는 독수리를 함께 찍은 사진이다. 1993323일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이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작가에게는 다음 해 퓰리처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케빈 카터, ‘독수리와 소녀’, 1993년 3월23일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사진. <출처=뉴욕타임즈>

 

하지만 신문에 실린 이후, 생사의 갈림길에 선 어린아이를 사진에 담기 이전에 위험에서 구하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니냐는 비난이 지속해서 쏟아졌다. 작가의 윤리의식을 비난한 것이다. 케빈 카터가 사진을 찍은 후 바로 그 아이를 구해서 구호소로 갔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윤리적 비난은 계속됐다.

 

지금도 카터의 이 사진은 사진윤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 이유는 카터가 퓰리처상 이후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비난을 못 이겨 자살했다는 식으로 알려지면서, 더 주목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삶이나 주변의 여러 정황으로 봐서 꼭 이러한 비난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사례로, 카텔란의 목매단 아이들(Hanging Kids)’이라는 설치작품을 들 수 있다. 2004년에 밀라노의 공공 광장인 마지오 24의 큰 나무에 소년 3명이 매달려 있었다. 이 때문에 광장을 찾은 사람들은 이 소년들이 목매달아 자살하거나 교수 된 것으로 생각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큰 나무에 매달려 있었던 것은 소년 인형이었다. 이것이 바로 카텔란의 목매단 아이들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목매단 아이들’, 2004. 혼합재료, 3개의 실물인형. <출처=Photo by Attilio Maranzano>
그는 아이들의 교육과 삶의 문제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이렇게 설치했다고 하지만, 그것을 본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이었겠는가. 결국 전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42세의 한 남자가 나무에 올라 인형 2개를 잘라 떨어뜨렸다. ‘어린이는 살해하지 않는다라는 게 할리우드 영화의 불문율 중 하나라고 한다. 이 작업은 소년의 교수를 전시했다는 측면에서 윤리적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1997센세이션에 전시되었던 마커스 하비(Marcus Harvey)마이라(Myra)’(1995)도 논란이 됐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의 손바닥에 물감을 발라 찍어 대형 초상화를 그려낸 것으로, 논란이 될 만한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대형 초상화의 주인공 때문에 논란이 됐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희대의 어린이 연쇄살인범 마이라 힌들리(Myra Hindley)였다. ‘마이라는 살인마에게 희생된 아이들의 가족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분노한 관람객이 달걀과 물감을 던져 작품이 손상됐다. 그런데도 표현의 자유라는 우산 아래 전시는 진행됐다. 이렇듯 생명윤리는 사회윤리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예술가는 표현의 자유라는 치외법권 지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금기의 전복과 표현의 자유를 영감으로 포장해 무책임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생활세계를 무시하는 영감은, 영감이 아니라 홀림일 뿐이다. 예술가는 괴짜나 별종이 아닌 생활인이며, ‘표현의 자유는 무한한 자유를 주는 면책 특권이 될 수 없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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