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여행 대신 아이들과 함께 ‘아트 여행’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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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먼 여행 대신 아이들과 함께 ‘아트 여행’ 가볼까 “가족의 소박한 하루를 그리는 스위스 화가” 알베르트 앙커

기사입력2023-08-13 10:00

가족들이 함께 여가를 즐기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행복한 가족의 소박한 여가 시간을 즐기는데 먼거리 여행을 꼭 계획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정한 휴식이란 함께 모여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가족이 함께 하는 휴가철에 소박한 하루의 여가를 즐기는 그림을 소개합니다.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들을 순수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으로 그린 화가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가장 잘 그린 스위스 화가 알베르트 사무엘 앙커입니다. 그는 농촌의 아이들과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을 사실적이면서 따뜻한 인상의 빛으로 담았습니다. 그의 그림 속 아이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며 신문을 읽는 어른들의 모습은 가족을 떠올리게 하죠.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그의 그림은 스위스 온 국민에게 사랑받으며 어느덧 ‘스위스 국민화가’라 불립니다.

시선을 끄는 작품인 ‘뜨개질하는 소녀’에서 바구니에 담긴 하얀 실로 뜨개질하는 소녀에게 고양이가 다가와 장난을 칩니다. 금발의 소녀는 고양이의 장난을 귀여워하고 있는데 하얀 뱃살을 드러낸 고양이도 소녀처럼 금발의 머리털을 지녀 귀여운 커플처럼 보입니다. 어두운 배경이 행복한 아이를 더욱 사랑스럽게 빛내 줍니다.

알베르트 앙커, ‘뜨개질하는 소녀’, 1887년.

알베르트 사무엘 앙커는 1831년 스위스 인스에서 세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수의사였기에 그는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베른시의 대의원을 지내며 마을에서 존경받는 분이었고, 외할아버지도 마을을 관리하는 행정관이었죠. 어린 시절 앙카는 무척 성실하고 규칙적인 성격으로 목사에 뜻을 두어 독일 할레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가 입학한 독일 할레-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르틴 루터가 신학을 가르쳤던 종교개혁의 본산지입니다.

그러나 앙커는 20살 때 갔던 파리 여행으로 인생의 항로를 바꾸게 됩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온 후 신학 외에 어릴 때부터 줄곧 관심 있던 미술에 대한 열정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는 결국 신학대 3학년 때 아버지에게 목사의 길이 아닌 화가의 길을 선택하려는 자신의 꿈을 길게 편지로 남겨 가까스로 허락을 얻었습니다. 23세의 나이로 앙커는 아버지에게 받은 250프랑을 가지고 파리로 가서 노트르담 데 샹스 거리의 53번지에 방을 얻습니다.

그는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 입학했으며 스위스 화가 샤를 글레르에게 야외에서 빛을 그리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 화실에는 모네와 르느와르가 있었던 곳이죠. 그러나 그가 그리고자 한 것은 사람에게 전하는 따뜻한 감성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인상파 화풍보다 자연주의 기법을 고수하게 됩니다. 1860년, 졸업 즈음 아버지의 병으로 고향에 돌아온 후 그는 다락방에 화실을 마련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앙커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많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대가족이었으나 16세에 어머니와 형을 잃었고 21세에는 여동생마저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화가로 성공하는 일보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 안정된 일상을 더 원했습니다.

알베르트 앙커, ‘벤치에서 낮잠자기’, 1878년.

1864년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으로 파리에서 큰 화제를 모았을 때, 앙커는 여동생의 친구였던 안나 뤼플리와 결혼해 스위스의 농촌에 정착했습니다.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시작한 화가의 캔버스에는 이 시기부터 농촌의 소박한 이웃과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담기기 시작합니다. 그의 화풍은 쿠르베나 밀레와 같은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기법이었지만, 사회 비판적인 성향이 아니었기에 너무 평범한 그림이라고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앙카는 ‘그림은 상상 속에서 이상을 형상화하고 무엇보다 그 이상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기에 어렵지 않고 쉬우면서 그가 꿈꾸는 이상을 전달할 수 있는 미술세계를 고수했죠. 그의 그림은 스위스 농촌의 소박한 가정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을 좋아해서 그의 집에 놀러 온 이웃의 아이들이 종종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앙커가 결혼하기 전 그린 ‘일요일 오후’는 어린 시절의 따뜻했던 추억을 소환합니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나서 따뜻한 난로에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첫째가 커다란 성경을 읽는 동안 할아버지는 난로 위에서 평온히 손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여동생은 다소곳합니다. 성경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막내는 이내 벽난로에 기대어 달콤한 잠에 빠졌습니다. 소박한 실내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북돋아 줄 오후 햇살이 따스하게 비춰주는 이 그림은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가정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알베르트 앙커, ‘일요일 오후’, 1861년, 스위스 뉴사텔미술관.

앙커는 6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4명이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생계를 위해 실내 장식일도 겸하며 꾸준히 파리 살롱전에 출품했는데 1866년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그는 스위스 미술협회장을 맡을 정도로 스위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활발히 활동했고, 몸이 쇠약해지기 전까지 30년 동안 가족과 함께 스위스와 파리를 오가며 살았습니다. 여름에 머물던 스위스에서 겨우살이를 위해 파리로 떠나기 전 유럽 여행을 자주 했는데, 특히 이탈리아를 좋아해서 밀라노, 베니스, 만토바와 모데나, 피렌체까지 4차례 여행을 다녔습니다.

‘벤치에서 낮잠 자기’는 방금 맘껏 뛰놀던 소녀가 나무 벤치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한쪽 팔을 뻗고 자는 아이는 무척 피곤해 보입니다. 농가에 소박하게 짜놓은 나무 벤치 아래 벽돌과 돌덩이들은 시골 농가의 정겨운 모습이죠. 소녀 아래에는 밀짚모자 속에 라일락꽃이 한아름 들어있습니다. 누워 잠든 사랑스러운 소녀처럼 모자 속 라일락도 누워서 자는 듯합니다. 가족이 여유있게 모여 책을 읽는 시간도 휴가에서 즐길 행복한 추억입니다.

‘고트헬프 소설을 읽는 소녀’는 농촌의 삶을 묘사한 스위스 작가 고트헬프의 책을 집어 든 첫째 딸 루이자를 그린 작품입니다. 침대 시트를 정리하던 중에 맨발의 편한 자세로 앉은 루이자에게 독서는 일상인 것 같습니다. 신문을 좋아했던 앙커는 농부들이 신문 읽는 모습을 자주 그렸는데 신문은 어른의 독서였습니다.

알베르트 앙커의 그림을 통해 스위스 사람들이 보내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의 휴식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 ‘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