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수록 아픈 직장인…번아웃도 ‘직업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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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일할수록 아픈 직장인…번아웃도 ‘직업병’일까 업무과중·갈등으로 우울증·불안장애 비율 높아…일과 ‘쉼’ 구분하라

기사입력2023-08-08 11:40

김범규 기자 (bgk7@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어느 날 갑자기 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간 것처럼 힘이 없고, 무력감이 밀려왔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은 떨어지고 불안감은 높아졌죠.”

5년 차 회사원 A씨가 얼마 전 겪은 증상이라며 털어놨다.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던 그에게 정신적·신체적으로 이상 증상이 한꺼번에 밀려들자, 그는 퇴사라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현재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쉼’을 선택했다. 실제로 A씨처럼 업무 과다나 직장 내 인간관계 갈등 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직장생활을 접은 후,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직장내 갈등…“‘번아웃’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다”

업무 과중, 직장 내 갈등, 입사 전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엮여 번아웃에 시달리다 우울증, 불안장애 등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진용 교수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현대인이 가장 많이 겪는 정신과적 질환 중 대표적인 것은 우울증이다. 또한, 쉴 새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다 보니 공황장애, 불안장애, 불면증이 생기기도 한다”며, “특히 직장생활 내 갈등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돌입했을 때 사람들은 ‘번아웃’이 왔다고 토로한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정서적 탈진 혹은 소진이 된 상태를 의미하는 번아웃(burnout)된 상태를 말한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정신적·신체적으로 고갈된 상태로, 피로를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번아웃 증후군은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DSM-5 진단체계에는 사용하지 않는 병명이지만, 진료 시 무기력·피로감 등의 주요 증상들에 대한 평가 후 관련한 진단명으로 진단할 수 있다.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건석 교수는 “직업병은 행정적인 용어로는 ‘업무상 질병’으로 정의한다. 업무상 질병이란 업무수행의 과정에서 위험 요인에 노출되거나 그런 요인들이 원인으로 작용해 질병이 발생했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될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며, “업무상 질병의 범주에서 정서적 어려움과 관련된 상태로는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상사 또는 동료로부터의 괴롭힘’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이 대표적”이라고 중기이코노미에 설명했다.

업무 과중, 직장 내 갈등, 입사 전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엮여 번아웃에 시달리다 우울증, 불안장애 등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업무와 관련된 정신과적 질환에는 정서적 스트레스로 인한 적응장애, 급성스트레스 반응,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이 속한다. 이때 진단명은 주요 증상의 원인과 업무와의 관련성 여부가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번아웃 역시 번아웃이 된 계기, 번아웃의 원인이 업무와 연관됐는지 여부가 직업병 판단에 중요한 구분점이 된다.

퇴사를 앞당기는 ‘번아웃 증후군’…일과 ‘쉼’을 구분하라

최근 개인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커지면서 번아웃으로 인해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요즘 직장인 사이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워라밸’, ‘조용한 사직’, ‘조기 퇴사’ 등의 이면을 살펴봐도 번아웃 증후군과 무관하지 않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있다. 통계에 따르면, 청년층의 졸업 후 첫 일자리 평균 근속기간은 1년6.6개월로 전년동월대비 0.2개월 감소했다. 첫 일자리를 그만둔 임금근로자는 66.8%로 전년동월대비 1.2%p 상승했다. 이들이 첫 일자리를 그만둔 이유는 보수·근로시간 등 근로여건 불만족(45.9%)이 가장 많았다. 이어 ▲임시직·계절적인 일의 완료·계약기간 끝남(14.7%) ▲건강·육아·결혼 등 개인적인 이유(14.6%) ▲전망이 없어서(9.1%) ▲창업 등 기타 사유(7.3%) ▲전공·지식·기술·적성 등이 맞지 않음(6.3%) 순으로 나타났다.

즉, 근무여건 만족도와 이를 둘러싼 근무 유연성, 업무성과와 개인의 발전 연관성 유무가 근로자의 퇴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주요 사유가 있다. 바로 ‘직장 내 갑질’이다.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 중 상위권에 랭크된 근로여건, 건강, 기타 사유 안에는 ▲업무시간과 개인시간을 별개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 ▲높은 업무강도와 이에 미치지 않는 보수체계 ▲직장 내 갑질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직장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내포한다.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노동시간을 둘러싼 현장 갑질 사례분석과 시사점’을 살펴보면, 심각한 장시간 노동, 연장근로(강제 근로), 포괄임금약정 문제, 위법 천지인 현장, 시도 때도 없는 업무 연락과 휴식권 문제, 유연근무제 문제 등이 핵심 주제다.

전문가들은 일터와 개인 생활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집에서도 업무를 생각한다거나 업무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집을 일의 연장선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사례에서 전자제품제조업에 다닌다는 한 근로자는 ‘입사할 때부터 업무강도가 세서 늘 늦게까지 남아 일했는데, 추가업무도 계속 주어졌다. 수당도 없었다’라며, 수면 부족과 두통으로 인해 퇴사했다고 털어놨다. 마케팅 회사에 다닌다는 또 다른 근로자는 ‘계속된 야근으로 회사 근처에서 숙박하거나 내부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반복됐고, 이로 인한 심리치료 등 병원비만 200만원 넘게 지출했다’고 했다.

휴식권을 방해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대기업의 시설관리 하청업체에 근무하는 한 근로자는 ‘귀가 후 자거나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카톡으로 업무 관련 응답을 요구하며, 무응답 시 공개적인 인민재판식 문책을 한다’고 괴로워했다. 특수법인단체의 한 근로자는 ‘근무시간 외 카톡과 전화로 업무지시를 하고, 하루 종일 전화로 폭언한다. 이로 인해 오히려 업무를 진행하지 못할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관한 근로기준법 조항의 사각지대에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들은 더 심각하다. 직장갑질119가 2020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에게 받은 이메일 제보 216건을 분석한 결과, 45.7%가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300인 이상 사업장 대비 2배 이상 높은 비율이다.

좋은 인재는 기업의 발전을 위한 필수불가분의 관계다. 기업 차원에서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근로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야 하고, 휴식시간을 노동시간제도의 본질로 접근하려는 인식개선이 중요하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개인 스스로도 적절한 휴식을 통해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휴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일과 쉼의 구분이다.

울산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진용 교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일터와 개인 생활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집에서도 업무를 생각한다거나 업무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집을 일의 연장선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쉴 때도 일과 분리해서 차단된 상태에서 쉬는 것과 계속 일과 연계되면서 쉬는 것은 다르다. 자기만의 시간, 취미가 없으면 쉬어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업무와 자기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