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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아닌 ‘상품’ 되도록 촉진한 화이트큐브

속이 텅 비고 창이 없는 ‘화이트큐브’…전시공간의 두 얼굴㊦ 

기사입력2023-09-13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속이 텅 비고, 창이 없는 흰색의 전시공간을 통상적으로 화이트큐브(White Cube)’라 하는데, 이 공간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 화이트큐브가 예술작품을 전시하기에 좋은 공간이라는 것은 절반 정도만 진실이다. 흰 벽의 텅 빈 전시공간은 관람자에게 그곳에 있는 미술작품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오직 그뿐이다.

 

화이트큐브의 배신=미술작품에 집중하므로 그것이면 된 게 아니냐고 쉽사리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술작품은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다. 작품을 창작한 예술가가 있고,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지역적 특성과 시대적·사회적 상황이 있다. 그 작품이 창작된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이트큐브는 미술작품의 탄생 배경을 관념화함으로써 작품을 미술작품 내부에 철저히 고립시킨다. 모든 외적인 맥락을 끊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와 단절된 미술작품은 이동이 자유로워진다. 어느 나라나 어느 지역에 있든 상관없이 백색의 텅 빈 공간이면 유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쉽게 말해서, 이렇게 맥락이 끊긴 작품은 화이트큐브라면 어디에 전시되어도 상관없게 된다는 말이다. 화이트큐브가 어느 순간 전시공간의 표준이 되어 세계 곳곳에 만들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 곳곳에 이러한 공간들이 생김으로써 미술작품은 지역의 특색이나 역사성,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됐고, 자유롭게 어디로든 옮겨 다니며 전시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뭐가 문제지? 오롯이 미술작품만 볼 수 있으면 좋지 않나? 미술작품 감상 경험이 어느 장소에서나 비슷하다면 좋은 게 아닌가? 세계 곳곳에 이러한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미술작품이 어디서나 자유롭게 전시되고, 더 많은 사람이 같은 미술작품을 볼 수 있으니 나쁠 건 없지 않은가?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뉴욕 콜드 스프링에 있는 ‘마가지노 이탈리아 미술관(Magazzino Italian Art museum)’ 내부, photo by Marco Anelli.

 

여기서 백화점을 떠올려 보자. ‘작품을 위한 미술관과 상품을 위한 백화점. 한쪽은 전시가 주목적이고 다른 쪽은 판매가 주목적이다. 백화점은 창도 없고, 오로지 상품만을 돋보이게 하려고 비현실적 공간처럼 유지된다. 어쩐지 미술관과 비슷하지 않은가? 두 곳 모두 화이트큐브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면 미술관이 백화점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로 미술작품의 상품화다. 외부적인 조건과의 단절로 미술작품은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전시할 수 있게 됐지만, 누구에게나 팔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물건으로 속성이 변했다. 화이트큐브는 예술가의 이름을 꼬리표처럼 달고 세계 어디서나 진열(전시)되고 거래될 수 있는 상품으로서 미술이 되도록 촉진하고 있다.

 

어쩌면 외부적인 맥락을 끊고 이동하는 미술이 상품으로 귀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붙박이로 벽이나 천장에 존재하던 미술에 자유를 준 캔버스는 15세기 유럽의 금융과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가장 활발히 사용됐다. 캔버스 작품은 종이처럼 둥글게 말아서 이동할 수 있기에 상품처럼 판매할 수 있다. 그 당시 베네치아가 상업적인 거래가 활발한 부유한 도시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캔버스가 단순히 작업의 편의성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 당시 베네치아 화단의 중심인물인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는 항상 밀려드는 주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부유한 도시에서 캔버스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은 상품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과거에 벽이나 천정에 붙어 있던 미술이 그곳에서 떨어져 나와 외부 맥락을 끊고 둘둘 말려 이리저리 이동하며 판매되는 상황, 그리고 현대미술 작품이 세계 곳곳의 화이트큐브라는 무성의 공간으로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거래되는 상황. ‘작품상품이 되는 현상을 마주하며 미술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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