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 부르는 인생예찬 ‘VIVA LA 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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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고통 속에서 부르는 인생예찬 ‘VIVA LA VIDA!’ 극심한 고통을 이겨나가는 삶의 태도 ‘인생이여, 만세!!’

기사입력2023-10-21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콜드플레이(Coldplay)의 4집 앨범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들라크루아의 명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난 한때 세상을 지배했었지. 내 말 한마디에 바다가 솟아올랐어. 이제 난 아침에 홀로 잠을 자고, 내가 한때 지배했던 거리를 쓸어. 난 주사위를 굴리며 도박을 하곤 했지, 적의 눈에 서린 공포를 느끼면서. 군중이 노래하는 걸 들어봐. ‘이제 옛 왕이 죽었다! 왕이여, 만세!’ 한때 난 열쇠를 쥐고 있었어.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사방에 벽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어. 그리고 난 발견했지, 나의 성은 소금 기둥. 그리고 모래 기둥 위에 서 있었다는 걸….”

◇콜드플레이와 Viva La Vida=‘I used to rule the world(난 한때 세상을 지배했었지)’로 시작하는 이 글은 영국의 유명 모던록밴드인 콜드플레이(Coldplay)의 노래 가사다. 이 노래는 ‘Viva La Vida’라는 곡으로, 2008년에 발매한 4번째 정규 앨범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의 타이틀 트랙이다. 이 곡으로 콜드플레이는 2009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노래’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명실상부한 콜드플레이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노래의 가사는 뭔가 이상하다. “군중이 노래하는 걸 들어봐. ‘이제 옛 왕이 죽었다! 만세!’…” 등 이해할 수 없는 가사로 가득하다. 사실 이 노래는 시민의 봉기로 일어난 프랑스의 ‘7월 혁명(Révolution de Juillet)’으로 폐위된 샤를 10세(Charles X)가 느꼈을 심정을 담은 곡이다.

1830년 7월27일 프랑스 독재 왕정에 반발한 시민은 정부와 대립을 시작했다. ‘7월 혁명’의 신호탄은 이렇게 터져 나왔다. 다음날인 28일 파리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됐고, 시민군의 무력 봉기가 일어나 국왕군과 격렬한 싸움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금지됐던 삼색기가 거리에 나부꼈고, 시가전은 격화됐다. 29일에는 시민이 왕궁으로 침입해 시가전에서 승리했다. 시민의 승리로 기억되는 혁명은 이렇게 완성됐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는 이 혁명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 그림이 바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이다.

들라크루아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그림은 혁명이 있었던 그해(1830년)에 완성됐다. 한 손에는 프랑스 국기(La Tricolore)를, 다른 손에는 총검을 들고 사람들을 이끄는 여성이 표현된 이 그림은 ‘7월28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당시 소요 사태 중 가장 격렬했던 날인 1830년 7월28일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들라크루아는 혁명에 동참했을 정도로 민주주의 운동에 열성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혁명적인 사고와 행동은 이 그림의 표현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 당시 고상한 미덕과 교훈을 담는 고전주의가 주류였는데, 그는 고전주의 형식을 벗어나 사건의 생생함을 격렬한 필치로 담은 낭만주의 형식으로 이 그림을 표현했다. 이것은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미국의 뉴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국민이 모금 운동을 통해 뉴욕에 세워준 건축물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정치가인 에듀아르 라불레(Edouard de Laboulet)가 1874년에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에게 의뢰해 1886년 완공된 이 여신상은, 앞서 말했듯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바르톨디의 어머니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콜드플레이는 ‘Viva La Vida’에 ‘7월 혁명’에 폐위된 샤를 10세의 심정만 담은 것이 아니다. 이 밴드는 ‘7월 혁명’을 상징하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이 곡이 수록된 4집 앨범 표지로 삼았다. 그리고 이 그림 위에 흰색으로 “VIVA LA VIDA”라는 문구를 휘갈겨 놓았다.

프리다 칼로, ‘Viva la vida’, 1954, Oil on Masonite, 72×52cm. 멕시코 프리다칼로 미술관 소장.

◇프리다 칼로와 Viva La Vida=콜드플레이는 왜 이 그림 위에 Viva La Vida를 썼을까? Viva La Vida는 무슨 의미일까? 이 문구는 스페인어로 ‘인생이여, 만세’ 정도의 뜻이다. 그렇다면 콜드플레이는 폐위된 샤를 10세의 심정을 노래한 곡에 왜 어울리지 않는 Viva La Vida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달았을까? 무엇이 콜드플레이가 “인생이여, 만세”라고 외치도록 만들었을까? 시민이 이끈 혁명의 위대함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가사와 다른 제목을 붙임으로써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려 했던 것일까? 모호할 것만 같은 제목의 의도는 사실 아주 분명하다. 제목의 의도는 고통을 이겨나가는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세상을 떠나기 8일 전 유작 ‘Viva La Vida’(1954)를 남겼다. 설익은 수박부터 잘 익은 수박까지 화면에 가득 그려진 이 작품은 그가 건강 악화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끈질기게 그렸던 작품이다. 칼로는 이 그림의 수박 안에는 누구나 발견할 수 있게 “Viva La Vida”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은 이러한 칼로의 태도에 감명받았다. 마틴은 칼로가 그린 ‘Viva La Vida’을 보며, “모든 악재를 다 당하고도 다시 캔버스를 펼쳐놓고 그림에 몰두한 그가 매우 존경스럽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프리다 칼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고통을 겪었다. 6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으며, 18살 때 그가 탄 버스가 전차에 부딪혀 전차의 강철봉이 그의 척추와 골반을 관통했고, 버스 폭발로 파편들이 온몸에 박혔다. 이 처참한 사고로 꼬박 2년 동안 누워 있다 기적 같이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 유명 화가이자 혁명가였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를 만나면서 교통사고보다 더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병상에서 그린 칼로의 그림을 본 리베라는 “잔인하지만, 감각적인 관찰의 힘으로 관능적이고 생생하게 빛난다. 나에게 이 소녀는 진정한 예술가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그림에 감명을 받았다.

프리다 칼로, ‘가시목걸이와 벌새를 한 자화상(Self-Portrait with Thorn Necklace and Hummingbird)’, 1940, Oil on canvas, 47×61cm. 보스턴 Museum of Fine Arts 소장.

나이가 무려 21살이나 차이 나는 이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시작됐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이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이지만, 리베라는 외도를 자주 일삼았다. 가장 충격적인 외도는 칼로의 동생과의 외도다. 이 사실은 칼로를 괴롭게 했다. 그리고 세 번의 유산을 겪었다. 칼로는 리베라와의 결혼생활로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리베라의 아내’가 아니라 ‘화가’로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1938~1939년에는 뉴욕과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며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알리기 시작했다. 1939년 말에 이혼, 그리고 1년 후 재결합하면서 그나마 평온한 삶을 살았지만, 급격한 건강 악화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게 되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침대에 누워 있는 신세로 보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칼로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53년이 되어서야 칼로는 고향인 멕시코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에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전시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1954년에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칼로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그림을 그렸고, 생의 마지막 작품에 ‘인생이여, 만세(Viva La Vida)’라고 적어 놓을 정도로 삶을 긍정했다.

이러한 삶을 대하는 칼로의 태도를 본 콜드플레이의 마틴은 이 문구, Viva La Vida를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정했다. 그는 프리다 칼로가 지닌 삶의 태도를 노래의 중심에 두고자 했던 것이다. 혁명, 자유, 승리, 고통, 인생, 만세….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부르는 인생예찬은 혁명의 용사들이 치켜든 자유의 촛불처럼 밝게 빛난다. 인생이여, 만세!!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