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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보여주기 위하여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

눈 먼 자들의 그림…이연석 작가 ‘눈 먼 입 Act. 2’ 

기사입력2024-01-05 13:50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다른기사보기

거울이 가득한 공간에서 누군가 움직인다. 하얗고 긴 옷을 두른 퍼포머가 옷자락을 바닥에 끌며 걷고 있다. 배경으로 목소리가 들린다. 단조롭고 무미한, 기계적인 목소리다. 작은 객석에 관객이 앉아 있고 그들은 벽을 등진 채로 있는데, 바로 그 벽에는 수십 개에 달하는 그림이 빼곡하게 붙었다. 공연장도 전시장도 아닌 어떤 곳에서 그림을 등진 관객. 이연석이 제작한 눈 먼 입 Act. 2’(2023)의 풍경이었다.

 

‘눈 먼 입 Act. 2(Eyes Far Lips Act. 2)’ 전경. <사진=uma shin>

 

이연석의 회화를 처음 본 것은 과거의 한 전시에서였다. 영등포 인근의 전시공간에서 열린 ‘Vera Verto’(기획:김나현, 2020)에 그의 작업이 걸려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 두텁고 큰 캔버스 위에 작고 흐릿한 형상을 담아 놓은 회화였다. 아주 먼 곳에서 그림을 바라보는 것처럼, 혹은 두터운 안개 속에서 그림을 마주친 것처럼. 마모된 필치로 묘사되어 잘 보이지 않는 작은 형상에 오히려 눈이 갔다.

 

회화는 인간의 손으로 무언가를 그려 세상에 보여주는 매체다. 회화의 질문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가깝지 그 역은 아니다. 그런 매체를 다루면서도 보여주는 대신 보여주지 않고자 하는 작가의 선택을 곱씹게 되었다.

 

그러다 보여주지 않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 한 편을 마주쳤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쓴 맹인의 기억들:자화상과 폐허였다.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이 글에서 데리다는 그림의 기원이 곧 눈멂이라고 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관찰 대상과 캔버스를 번갈아 본다. 대상을 볼 때는 캔버스를 보지 못하며 캔버스를 볼 때는 대상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림 그리기에 있어 필연이다. 보여주기 위하여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

 

보여주지 않기. 이연석이 흐리게 담아낸 형상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 그림은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동시대의 화가는 이 시간과 의미에 근접할 수 없기 때문에 상실감을 느끼기 쉽다. 오늘날의 작가가 최후의 만찬에 버금가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무언가를 그려 세상에 보여주기라는 회화 매체의 거대한 궤적 안에서 오늘날의 작가는 무기력해진다. 그렇기에 보여주는 대신 보여주지 않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흐릿한 형상은 눈멂이라는 그림의 기원을 상기시킨다. 마침 데리다는 시각이 눈의 본질이 아니라 눈물이 눈의 본질이라고 말한 적 있다. 눈물로 인하여 촉발되는 눈멂이야말로 시각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숨은 힘이었다고 말이다.

 

‘눈 먼 입 Act. 2(Eyes Far Lips Act. 2)’ 전경. <사진=uma shin>

 

이연석은 첫번째 개인전 눈 먼 입’(2022)에서 회화를 마치 벽처럼 세워두었다. 검은 천을 두른 큰 캔버스가 전시공간을 가로막고, 분할하고 있었다. 보여주지 않기 위한 회화들은 회화이기를 멈추고 벽과 같은 것이 되었다. 이후 약 1년 여의 시간이 지나 열린 눈 먼 입 Act. 2’에서 회화는 정말로 무대장치가 되었다. 퍼포머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움직이고, 배경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회화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대상과 캔버스 사이에서 화가가 경험했던 비시각의 공간, 그 눈멂의 공간이 관객과 회화의 사이에서 다시금 벌어지고 있었다.

 

이연석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림의 기원으로 되돌아가고, 그렇게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회화에게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우리가 알던 회화와는 물론 꽤나 다른 모습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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