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다시 한번 심판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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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코리아 디스카운트’ 다시 한번 심판대에 섰다 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1심 선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

기사입력2024-02-02 00:00

김주호 객원 기자 (dream@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팀장

이재용 회장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산의 한 시장을 찾아 떡볶이를 먹다가 주변 상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자 ‘쉿’ 표정을 지었는데, 온라인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언론에서는 익살스럽다거나 “이런 모습 처음”이라는 등 이재용 회장의 친숙함을 부각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지금 이 순간 이재용 회장이 숨기고 싶은 사실이 비단 대중들이 연호하는 자신의 이름 뿐일까.

오는 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린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법합병 과정에서 있었던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의 혐의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불러왔다.

국민 모두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최대 6750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고, 삼성물산의 주주들도 큰 손해를 봤다.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외국 투기자본인 엘리엇에게 1300억 여원을 배상하라는 국제중재판정이 내려졌다. 그 과정에서 삼성물산은 엘리엇의 제소를 무마하기 위해 비밀합의로 회삿돈 724억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자신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승계를 위해 정부와 삼성그룹, 국민과 국민연금, 주주들에게 1조원에 가까운 손해를 입힌 셈이다. 회사를 장악하기 위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기업 회장, 그 수법은 치밀했고 장기간에 걸쳐 실행됐다.

합병 직전이던 2014년 당시 단 0.57%의 삼성전자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던 이재용 회장은 이건희 회장 사후 안정적으로 삼성전자를 장악하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했다. 이재용 회장이 통합 삼성물산의 주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선 본인이 23.2%의 지분을 보유했던 제일모직의 가치는 부풀리고, 지분이 없는 삼성물산의 가치는 떨어뜨려야 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박근혜’ 측에 뇌물 주고, 워렌버핏 직접 만나고

우선 합병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합병법인의 예상 매출액을 부풀렸다. 그 과정에서 별다른 사업계획도 없이 패션 부분의 매출이 5배 폭증한다거나 실제로는 중단되어 추진하고 있지 않은 사업도 합병 시너지 효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합병비율을 이재용 회장에게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에 필요한 자료는 제대로 제공도 하지 않고,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는 고평가하고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저평가하도록 수 차례 요구하고 압박을 넣었다. 그 결과 안진 회계법인은 바이오젠이 보유하고 있는 콜옵션을 부채로 반영하지 않고 모직이 보유한 토지가격을 부풀리는 등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합병 목적이나 효과에 대해 허위 내용을 공표하고 불리한 투자위험은 은폐했다. 합병 공표 이후에 언론, 해외투자자 등의 비판 여론이 일어나자 이재용 회장은 직접 골드만삭스 회장 등에게 수 차례 연락해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워렌버핏을 직접 만나 비밀약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2월5일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 불법합병 사건 1심 판결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다시 한번 심판대에 섰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에게 뇌물을 주고 보건복지부 등을 통해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했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용 회장까지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삼성은 본인들에게 우호적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제일모직 2대 주주인 KCC에 삼성물산 자기주식을 매각하고, 그 과정에서 세부담이 더 크지만 공시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장외거래 방식을 이용했다. 또한 KCC와 삼성그룹의 거래 관계를 확대해주기로 약속하는 등 재산상 이익까지 제공하기로 하고, 거래 경위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삼성물산의 중요 주주이기도 했던 일성신약 측에는 합병 찬성을 부탁하며 그 대가로 일성신약 회사 건물을 삼성물산이 무상 신축하겠다, 일성신약이 보유한 물산 지분을 더 비싸게 매입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계열사인 삼성증권 조직을 동원해 일반 개인주주들의 개인정보를 유용해 찬성의결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상충 위험을 투자자에게 알려야했지만 은폐했다. 주총 이후에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위적인 주가부양 계획을 세우고 삼성증권을 통해 고가매수 주문, 단주주문 등을 통해 주가를 조작하기도 했다. 또 경제계 저명인사들이 인터뷰 등을 이용해 우호적인 언론보도를 유도하고, 미전실 및 삼성물산 홍보팀을 통해 언론사 임직원 및 기자들에게 우호적인 기사 작성을 수시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약 4일에 걸쳐 약 36억원 상당의 의결권 위임 광고를 발주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셈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다시 한번 심판대에 섰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민생토론회에서 300만 구독자를 보유한 경제유튜브 ‘슈카월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지적하며 화제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뜬금없이 상속세를 이야기했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이 삼성물산 불법합병 사건이다.

기업 회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가조작과 분식회계를 저질러 주주들과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대통령에게 뇌물을 줘서 주요 주주인 연기금을 좌지우지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주주에게는 비밀합의로 회삿돈을 빼주고 입막음을 하려는 기업, 그런 범죄를 저질러도 언론을 동원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사법부의 처벌을 피해갈 수 있는 국가에 어떤 투자자가 투자를 하겠는가.

‘자유시장경제’의 상징인 미국에서는 세계 16위 기업이던 ‘엔론’이 1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가 최고경영자가 징역 24년형을 받고 이에 가담한 회계법인은 해체됐다. 그런데 삼성물산 불법합병 과정에서 우리 금융당국이 밝혀낸 분식회계 규모는 4조5000억원에 이르렀지만, 검찰의 구형은 법정 최저형인 징역 5년에 그쳤다. 이마저도 무죄나 집행유예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순위가 아시아 12개국 중에서 9위에 그치고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보다 낮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는 2월5일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 불법합병 사건 1심 판결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다시 한번 심판대에 섰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