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아트의 아버지’ 이전에 ‘TV 해커’ 였다

프린트

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이전에 ‘TV 해커’ 였다 TV를 예술매체로 활용하는 작업 시작…TV 해커 백남준㊥

기사입력2024-03-11 16:03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작가로 꼽히는 백남준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비디오아트의 아버지’이다. 그가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수식어로 그의 활동을 포괄하기에는 부족하다. 비디오는 미리 녹화 및 편집한 영상물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현장성이 아니라, 이미 제작된 것을 재생한다는 의미가 내재해 있다. 하지만 익히 알려졌듯이 그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이나 ‘바이 바이 키플링’(1986) 등의 위성중계 작품을 선보일 정도로 현장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행위예술의 한 형태인 플럭서스의 일원이었다는 것도 그의 작업이 현장성과 관계 깊음을 알려준다.

사실 이 현장성과 TV 기술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진이 영화를 만들었고, 라디오가 TV를 만들었다고 말하듯이, TV는 전파기술로 등장한 매체다. 소리를 전자신호로 변환해 전송한 후 이 전자신호를 받아 다시 소리로 디코딩해 재생하는 것이 라디오 시스템인데, TV는 이 시스템을 발전시켜 소리와 영상을 전자신호로 바꿔 송수신한다.

백남준이 비디오 이전에 관심을 뒀던 것은 실시간으로 송수신되는 전자신호 시스템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위성중계 작품을 선보인 것이나 방송국을 통해 자신 및 타 예술가의 영상작품을 송출한 것을 봐도 그의 관심분야 중 하나가 실시간 송수신하는 TV 시스템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전시장면, 2016년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국립현대미술관. <출처= MMCA>

1960년대까지만 해도 TV는 대부분 생방송이었다. 녹화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보다 열악한 이미지 해상도를 보여주고 있어 TV로 예술작업을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남준은 1960년대 TV를 예술매체로 활용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미지 해상도가 너무 떨어지는 TV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백남준은 1965년에 록펠러 재단의 지원금으로 휴대가 가능한 소비자용 초창기 비디오카메라를 구매했고, 그 이후 점차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라는 수식어에 맞는 작업을 선보였다. 1960년대 점차 소형 비디오카메라와 녹음기가 보급되어 녹화가 쉬워지면서, 그의 관심도 녹화 및 편집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비디오가 아니라 전파신호의 수신과 TV 수상기의 작동방식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전파신호를 디코딩하는 TV 수상기를 조작함으로써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예술을 선보였다. 그는 TV 수상기를 분해해 내부장치를 조작, 화면에 독특한 형상이 나타나게 했다.

이런 방식이 백남준의 초창기 작업방식이었다. 이는 TV 영상기술에 대한 공격이자 해킹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던 이에 따르면, 작업실은 전선과 낡은 회로로 뒤덮여있었고, 백남준은 감전되지 않으려고 고무장화를 신고 다녔다고 한다. (계속,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