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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시간과 많은 것을 영원히 영원히 간직하자

언제나 나를 맞아준 누군가와 헤어짐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기사입력2024-03-17 10:00
박선호 미술작가 (sunhopark.info@gmail.com) 다른기사보기

4호선 회현역 인근 건물 3. 이곳에 내 작업실이 있다.

 

몇 해 전, 대학원에 다닐 때 안식년 시기를 보내게 된 지도교수를 따라 휴학했다. 학교 실기실에 더 이상 짐을 둘 수 없었다. 일 년 정도 학교에 다니다 보니 (그리다 만) 그림, 재료와 책이 산더미처럼 늘었다. 방학이 끝날 때쯤 이것들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우연히 친구의 공동 작업실에 남는 자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작업실을 구경하러 갔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은 언젠가의 더운 여름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선풍기를 켜주고 예쁜 유리잔에 차가운 커피를 내려줬다. 나는 그 커피 맛이 마음에 들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약간의 월세를 나누고 함께 작업실을 쓰기로 약속했다. 세 명의 친구와 작업실을 함께 쓰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이었던 작업실 구성원은 한 계절이 지나 세 명이 되었고, 어느 순간 네 명이 되었다가 다시 세 명이 되었다.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기 전까지만 머무르겠거니 했는데 어느새 5년이 흘렀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열네 개의 전시에 참여했고, 학위논문을 작성했으며,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크고 작은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짐을 둘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굴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작업실을 같이 쓰던 친구들 역시 자신의 삶을 잘 가꾸며 여러 개의 전시와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해냈다. 주로 테이블에 앉아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드는 나와 달리 친구들은 다양한 질감과 색을 가진 여러 재료를 다뤘다. 며칠 동안 작업실을 개방하는 오픈 스튜디오(Open Studio) 행사를 열기도 했고, 산이 좋고 물이 좋은 곳에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맑은 겨울밤을 수놓은 별을 함께 봤던 기억이 난다. 고민이 많은 나와 다르게 추진력이 있고 실행력이 높은 친구들에게 많이 배웠다(누군가가 게으름을 피울 때는 서로 잔소리를 해주기도 했다).

 

헤어진 이후 우리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그동안 충분히 좋은 시기를 지났다고. 함께한 시간과 우리가 그간 많은 것을 함께 이뤘다는 걸 간직하자고. 영원히 영원히. <사진=박선호>
작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온전히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는 건 쉽지 않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 때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한 공간에서 같은 길을 가는 친구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가인 내게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나를 잘 아는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혼자 살던 집에서 나와 가족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학업을 마쳤을 때, 레지던시(Artist’s Residency)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작업실에 돌아오면 언제나처럼 나를 이해해 주고 맞아주는 누군가가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정확하고 세밀한 삶의 모양을 꿈꾸게 된 것 같다. 목표가 또렷해지면, 그것을 이루고 지키기 위해 힘을 내야 한다. 작가 활동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게 된 나는 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원했다. 한편, 친구들은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를 원하며 홀로서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작업실을 함께 쓰던 두 친구는 조금 더 자기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사하기로 했고, 우리는 작년부터 천천히 헤어지고 있다. 며칠 전 커다란 폐기물차를 불러 그간 이 공간을 채웠던 짐과 잡다한 것들을 정리했다.

 

친구들이 작업실에서 독립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추운 저녁 늦게까지 함께 있으며 타코야키를 간식으로 나눠 먹고, 여름에는 커다란 얼음을 넣은 예쁜 잔에 시원한 커피를 나눠 마시며, 연말에 공모 지원서를 함께 썼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리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어 좀처럼 작업실에 올 수 없었다. 작업실이 아닌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 애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남겨진 사람처럼 느껴져 쓸쓸했다. 하지만, 내가 남겨졌다기보다 어딘가에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준비 과정에 도달하게 된게 아닐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헤어짐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떤 시기에 누군가를 위해 서로의 곁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난다. 마치 메시지를 전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천사와도 같이 말이다. 만약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히 이어지고 영원히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면. 분명히 우리는 어느 한 시기에 영영 머무르기만 했을 거다.

 

오늘은 다음 달에 작업실에 새로 입주할 친구들을 위해 얼룩덜룩해진 벽면에 흰 페인트를 발랐다. 페인트를 바르며 생각했다. 헤어진 이후 우리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그동안 충분히 좋은 시기를 지났다고. 함께한 시간과 우리가 그간 많은 것을 함께 이뤘다는 걸 간직하자고. 영원히 영원히.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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