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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2차원 내부에 이미 3차원 세계가 잠재해 있다

유행에 머물지 않는 추상회화는 세계와 관계 맺을 때 가능해질 것 

기사입력2024-03-13 09:30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다른기사보기

‘무제(두께가 있는 표면)’,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2개 부분, 각:40×20×3.5cm. <사진제공=작가, 촬영=양이언>
추상회화는 전위적 예술이 아니라 상품이다. 이런 말은 이제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2014, 미국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월터 로빈슨은 당시 미술시장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추상회화를 가리켜 좀비 형식주의라고 부른 적 있다. 재현적 회화를 비판하기 위해 전개되었던 추상회화가 하나의 유행이 되었고, 추상적이고 반시각적인 화면은 아무거나그려도 된다는 일종의 허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의 평론은 추상회화가 지녔던 급진성에 대한 뒤늦은 마침표와 같았다.

 

그러나 로빈슨이 추상회화에 좀비라는 이름을 주었던 시점으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오늘날, 시장은 또 다른 대체재를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좀비 추상의 유행은 막을 내렸고, 더 화려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담은 그림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흥미롭다. 어쩌면 하나의 예술이 끝났다는 생각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단지 지루한 순환과 유행뿐이다. 반복되는 유행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조상은의 회화는 추상회화라는 형식에 알맞아 보인다. 그의 작업에는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회화 위에 자리 잡은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물감이다. 작가는 자신의 회화를 두께가 있는 납작한 표면으로 정의한 적 있다. 언뜻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회화는 언제나 두께가 있는 납작한 표면이상의 것이 되고자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곤 한다. 심지어 이미지가 전혀 없는 추상회화 앞에서도 그렇다. 이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을 두께가 있는 납작한 표면이라고 잘라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회화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포함한다.

 

‘무제(두께가 있는 표면)’,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53×53×4cm. <사진제공=작가, 촬영=양이언>
조상은의 정의는 회화가 어디까지나 세계 속의 사물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한다. 그림은 자신이 사물이라는 사실을 세계로부터 숨긴다. 자신이 캔버스라는 사실, 물감을 이용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전부 감춘다. 이렇게 숨겨지고, 감추어지고, 잊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가끔은 예술가가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상은은 물감을 두텁게 쌓고, 그렇게 쌓은 것을 찢어 캔버스를 드러내면서, 잊힌 회화의 사물성을 다시 찾아내어 되돌려준다. 회화는 여기서 평면이자 또한 사물이 되고, 그래야만 한다.

 

조상은은 첫번째 개인전 ‘A (Plane) Is a Flat Surface with (No) Thickness(2020)’에서 소설 플랫랜드(1884)’를 인용한 적 있다. 플랫랜드는 19세기의 신학자 에드윈 A. 애벗이 남긴 소설이다. 풍자소설에 가까운 이야기 속에서는 2차원 세계에 사는 사각형이 화자로 등장한다. 사각형은 우연히 3차원 세계를 엿본 뒤, 면으로 이루어진 2차원 세계를 초월한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플랫랜드는 차원 개념과 기하학에 대한 흥미로운 해설을 곁들였기에, 최초의 SF소설로 불리고는 한다. 하지만 줄거리는 종종 신학적으로 해석된다. 화자인 사각형이 살고 있는 세계 너머 초월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서사는 신학적 세계관과 분명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초월적 세계관을 전제할 때, 화자인 사각형이 속하는 2차원 세계는 비교적 열등한 것으로 취급된다.

 

조상은은 회화가 두께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3차원 사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플랫랜드속 세계를 작가의 작업과 견주어 보자. 2차원 평면인 회화가 곧 3차원 사물이라는 말은, 2차원 너머에 3차원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2차원 내부에 이미 3차원 세계가 잠재해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초월적 세계는 너머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는 것. 이렇게 바라볼 때 작업은 회화 형식에 관한 실험을 넘어, 세계를 향한 진술로 작동한다. 단순한 유행에 머물지 않는 추상회화는 그것이 이처럼 세계와 관계 맺을 때 가능해질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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