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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미룰 수 없다

제대로 ‘주주 보호’ 이뤄지지 않아…충실의무 확대 명문화 “적기” 

기사입력2024-07-02 00:00
김윤진 객원 기자 (jin@pspd.org) 다른기사보기

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최근 상법 개정이 뜨거운 이슈다. 정부에서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함과 동시에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현안을 뽑으라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일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직접 재계를 만나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에게 확대하는 방안을 설득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나서서 재계에서 꺼리는 방향의 상법 개정을 진행하고 있다니 좀 어색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 환영할 일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야기하는 현행 상법

 

현행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이사회가 회사의 이익이 된다는 명분으로 물적분할, 분할상장 등 지배주주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소액주주에게는 공평한 이익이 되지 못 하거나 오히려 손해가 되는 선택을 하는 일들이 벌어져 주주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2022LG화학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배터리 사업을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신설했다. 물적분할한 자회사는 상장하면서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했고, 모회사도 자회사 지분을 일부 팔면서 2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했다. LG의 지배주주인 오너일가는 그룹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도 12조원이 넘는 자금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LG화학은 유망한 사업부가 떨어져 나감으로써 주가가 떨어졌고, LG화학의 일반주주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그 외에도 SK케미칼, 카카오, DB하이텍, 후성 등 많은 기업들이 물적분할 후 상장으로 또는 물적분할 소식이 들려온 것만으로도 주가가 떨어졌다.

 

물적분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법합병 사례처럼 이사들이 지배주주 또는 그룹 오너의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림으로써 회사와 주주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기업의 가치는 별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증가하지만 일반주주들의 가치는 저하되고, 소액주주의 부가 지배주주에게로 이전되는 결과만 가져오는 선택을 하더라도 이사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한국 시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나를 손해보게 하는 기업에 어떤 사람이 투자를 하겠는가?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과 함께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포함시키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포함하는 것이 본래 취지

 

나를 손해보게 하는 기업에 어떤 사람이 투자를 하겠는가?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과 함께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포함시키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현재 판례상 대법원은, 이사는 주식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지,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며,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할 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경영진의 주주보호 의무 및 주주와의 이해상충 해소 의무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법만으로는 실무적으로 소액주주를 보호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정부 주도로 상법 제382조의 3이 제정되면서 이사의 충실의무가 도입됐다. ‘15대 국회 제198회 제13차 국회본회의(19981202) 부록에서 당시 개정안을 낸 법무부의 입법취지를 보면, 영미법에 있는 이사의 신인의무와 충성의무를 모두 도입하는 것이 본래의 의도였다(채이배, ‘상법 제382조의 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 필요성이사 및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방지를 위하여’, 이슈&분석, 경제개혁연구소, 2013, 4~5). 정부 발의안의 제안이유에도 상법 개정으로 소수주주 권리 강화를 통해 기업 경영자의 책임을 강화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함으로써 건전한 기업 발전을 촉진하며 극대화하여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것이라고 나와있다.

 

, 이사의 충실의무는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까지 포함해 지배주주와 이사회로 인해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본래의 취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이를 너무 좁게 해석하는 판례만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판례가 바뀌기만을 기다리기보다는 법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입법론적 해결책이 불가피하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명문화 지금 적기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포함된다면 불공정한 합병이나 배임죄 등에 대해 해석론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지배주주의 불공정한 이익추구에 맞서 실질적으로 소액주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상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서 오랜 시간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 제21대 국회에서도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들이 임기 종료로 그대로 폐기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비슷한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됐고, 정부에서도 상법 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주주 손해를 이유로 이사가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당하거나,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다면 기업의 경영활동에 제약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협상카드로 배임죄 폐지를 꺼냈다.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포함하는 대신, 그로 인한 민형사상 처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상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배주주와 재벌의 권한 남용 및 폭리 추구를 막을 수단이 충분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배임죄 폐지론을 꺼내는 것은 충실의무 확대의 취지를 또 한 번 무색하게 할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최대 지분을 가진 주주도 아니고, 경영권을 가진 주주도 아니고, 모든 주주가 주식회사의 주인이다. 주식회사에서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곧 주주를 위해 일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기업 밸류업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라도 투명한 시장,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이 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포함시키는 방안이다. 충실의무 확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모처럼 정부와 야당의 의지가 일치한 지금,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문화해야 한다. 정부와 이복현 금감원장도 재계의 눈치를 보느라 괜한 협상카드로 상법 개정의 취지를 흐리지 말고 투명하고 건강한 시장을 위해 결단력을 보이길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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