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지각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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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인간 지각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기술 기술과 예술은 원래 한 몸이었다㊦

기사입력2024-08-26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시각예술의 가장 큰 변화는 상용 사진술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됐다.

사진은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가 1839년 8월29일에 공개한 ‘파리 탕플 대로(Boulevard du Temple)’를 시작으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1890년대부터는 과학뿐만 아니라 일상의 전 분야까지 퍼져나갔다.

사진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1839년 당시 다게르의 사진을 본 프랑스 역사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는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고 탄식했을 정도다.

루이 다게르, ‘파리 탕플 대로’, 다게레오 타입, 1838년경.

사진술과 카메라의 등장은 외부 대상의 재현을 목적으로 했던 미술의 역할을 심각하게 위협했고, 미술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미술이 더는 어떤 것을 사실적으로 그릴 필요가 없어졌다.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야수주의, 미래주의, 전위예술 등이 사진이 등장한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때부터 미술이 어떤 대상을 그대로 그릴 수도, 그릴 필요도 없어졌다.

인간의 시야를 넘어서고 있는 기술매체

흥미로운 점은 이때부터 기술매체가 인간의 시야를 넘어서는 모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술처럼 인간이 보지 못한 것을 사진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마이브리지, ‘달리는 말의 동작’, 1872. 말이 네 다리를 모두 펴고 공중에 뜨는 경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테오도르 제리코, ‘엡솜 경마장’, 1821, 캔버스 위에 유화, 92×122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의 말은 네 다리가 펴진 상태로 공중에 떠 있다.

1877년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J. Muybridge)는 12대의 카메라로 뛰는 말을 연속 촬영해 1878년 12월14일자 프랑스 과학잡지 ‘자연’에 게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인간의 눈으로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말의 동작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말이 달리는 모습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엡솜 경마장(Derby at Epsom, 1821’에 그려진 말처럼 어느 특정한 순간 네 발 모두가 땅에서 떨어져 공중에 떠 있게 된다고 여겨졌고, 이것이 통념이었다.

하지만 마이브리지의 연속 촬영된 사진들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인간이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지각을 넘어선 기술매체는 인간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며 인간의 감각을 새롭게 재구성하게 했다.

빌헬름 륀트겐, ‘뢴트겐 부인의 손, X-레이 사진’, 1895년 12월22일, 독일 박물관 소장.

사진술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까지 나아갔다. 바로 뢴트겐 사진, 일명 X-레이 사진이다.

1895년 빌헬름 뢴트겐(Wilhelm Röntgen)이 실험 중에 발견한 X-레이를 사용해 X-레이 사진을 선보였는데, 이 사진은 보이지 않는 신체 내부를 보여줌으로써 사진의 마술적 경이로움을 촉발했다.

기술이 인간의 시야를 넘어선 것은 사진매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와 전파, 소리를 기록 및 재생할 수 있는 축음기, 마그네틱테이프, 움직임을 재생할 수 있는 영화, 0(off)과 1(on)로, 무차별적으로 기록 및 재생하는 디지털 체계 등 기술은 인간 지각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