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메커니즘 구축이 ‘한국 AI 경쟁력’의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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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시장 메커니즘 구축이 ‘한국 AI 경쟁력’의 관건 “AI 3대 강국의 핵심은 기술이 아닌 시장 활성화”

기사입력2025-10-22 00: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AI(인공지능)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술 경쟁보다는 ‘시장 메커니즘의 활성화’와 ‘규제 혁신’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와 국회입법조사처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미 혁신성장 생태계와 AI시대 미래 전략 세미나’에서 ‘대한민국 AI 3대 강국 로드맵’을 주제로 발표하며 “지금 한국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AI 정책 10년의 흐름은=정 조사관은 대한민국의 AI 국가전략이 세 정부를 거치며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AI 국가전략의 출발점은 2019년 문재인 정부의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이었다”며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정부가 AI를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축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기술 개발 중심, 즉 AI를 ‘활용’하기보다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독자적 전략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AI 글로벌 3위(G3)’를 비전으로 제시하며 산업적 활용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정 조사관은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AI를 이용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려는 접근이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정부는 현재 ‘AI 3대 강국’을 내세우며 ‘AI 기본사회’ 실현을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정 조사관은 “이재명 정부는 기술 경쟁을 넘어 국민 복지와 삶의 질 향상에 AI를 접목하겠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며 “누구나 AI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 구현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AI 비전은 3대 강국인데=정 조사관은 문재인 정부 이후 모든 정부가 ‘글로벌 AI 3대 강국’을 비전으로 내세워 왔지만, 세부 목표는 여전히 달성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그는 “AI 기술개발, 인프라, 인재양성, 기업육성 등 카테고리는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그만큼 지속적으로 중요한 영역이지만, 동시에 2019년부터 제시된 목표들이 아직 이행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목표 달성이 지연된 이유로는 코로나19 이후 정책 우선순위가 바뀐 점을 먼저 들었다. 2019년 이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디지털 뉴딜 등 고용 중심 정책으로 전환되면서 AI 정책이 후순위로 밀렸다는 것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 시절 탄핵 정국으로 정책 추진력이 약화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구조적 한계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정 조사관은 “이재명 정부는 외부적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AI 국가전략을 실현할 수 있는 첫 기회를 맞고 있다”며 “정부와 민간 모두 관심과 투자를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AI 생태계 가장 큰 약점은=정 조사관은 “AI 3대 강국 달성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술도, 인력도 아닌 ‘시장 메커니즘의 부재’”라고 단언했다.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막대한 자본투자를 통해 AI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은 자국의 상황에 맞는 AI 시장환경을 만들어 AI 기술·서비스의 산업화를 보장하고 있다.

그는 “정부와 대학, 민간기업 등 플레이어들은 이미 역할을 알고 있지만, 이들이 상호작용할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미국은 자유경쟁 시장, 중국은 정부 주도의 시장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한국은 그 중간에서 정책이 시장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또 “한국은 AI 특허 보유량 등 기술개발 지표에서는 우수하지만, 이를 산업화하거나 응용모델로 확장하는 단계에서는 뒤처지고 있다. 이는 시장이 기술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라고 말했다.

◇이제 규제 명확히 해야할 때=정 조사관은 한국의 AI 산업이 활력을 잃는 이유는 ‘명시적 금지’가 아니라 ‘모호한 허용’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AI로 사업을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된다’고 명확히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이 모호성이 스타트업과 투자자에게 리스크를 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인허가 시스템이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 방식임을 문제로 꼽았다. AI는 아직 법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신산업이기 때문에 인허가 체크리스트에 ‘허용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책임을 감수하며 새로운 허용을 내릴 수도 없는 구조다. 정 조사관은 “이 모호성을 제거하는 규제 혁신이 AI 산업 성장의 첫걸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