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法요건 엄격 ‘轉職금지 약정’ 대두

프린트

Live 중기 ㅣ 지금 중기에선 영업비밀 法요건 엄격 ‘轉職금지 약정’ 대두 법원 ‘사용자 이익, 근로자에게 대가 제공’ 약정 유효성 판단

기사입력2015-07-17 14:00

채송화 기자 (songhwa012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10~2014년까지 최근 5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영업비밀 유출 사건의 80%가 전·현직 직원 등에 의한 내부 유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전직 직원을 통한 유출이 52.8%에 이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기업에게 퇴직자로 인한 영업비밀 유출은 골칫덩이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경법)에서 영업비밀 보호수단을 취하고 있지만,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들이 엄격하고 재판에서 영업비밀이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 때문에 최근 ‘전직(轉職)금지 약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직금지 약정은 근로자가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아 사용자와 맺는다. 법원에서 여러 요건을 검토해 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한다.

©중기이코노미

법무법인 지평이 지난 15일 개최한 ‘ICT기업이 알아야 할 영업비밀 보호와 노동법 세미나’에서 최정규 변호사는 “재작년부터 전직금지 가처분 관련 소송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 지고, 영업행위가 중요해진 만큼 인재 이동에 예민하기 때문”이라며 “부경법상 영업비밀 보호수단이 있긴 하지만 이는 이미 발생한 손해를 회복하는 조치에 불구하다. 반면 전직금지 약정은 퇴직 후 일정기간 경쟁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예방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단기간이지만 강력한 효력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전직금지 약정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부경법상 영업비밀 보호수단이 여러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업비밀 요건 자체가 엄격해 기업들이 입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부경법에 따르면, 영업비밀은 ▲비공지성(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음) ▲경제적 유용성(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지님) ▲비밀관리성(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됨)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최 변호사는 “부경법상 영업비밀 요건은 지나치게 엄격하다. 특히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비밀관리성”이라며 “기업이 합리적인 노력을 통해 비밀로 유지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기업의 영업비밀이 공개될 가능성이 큰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영업비밀 유출을 막기 위해 전직금지 약정을 활용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법원에서는 전직금지 약정을 원칙적으로 유효하게 보고 있지만, 사용자와 근로자간 이익이 충돌한다는 점을 고려해 유효성 여부에 대해 제한을 두고 있다. 쉽게 말해 전직금지 약정을 통해 기업이 영업비밀 등의 이익을 보호하면서도 근로자가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등 근로권을 침해 당하지 않는 경우에만 약정의 유효성을 인정한다.

유효성 판단기준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제시 등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 이익’과 ‘대가의 제공 유무’다.

법무법인 지평이 지난 15일 개최한 ‘ICT기업이 알아야 할 영업비밀 보호와 노동법 세미나’ ©중기이코노미

최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일단 사용자의 이익을 인정하면 약정을 무효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정도로 사용자의 이익이 핵심 이슈”라며 “다만 전직자체를 금지하거나 경쟁사업자의 시장진입을 배제하는 것은 사용자의 이익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다. 최근 법원에서 대가의 제공 유무를 본격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하는 추세”라고 했다.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는 자체로 당연히 계약 종료 후 전직금지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전직금지는 근로자가 추가적인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가를 제공해야 사용자와 근로자간 균형이 맞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가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전직금지 기간을 단기로 정해야 한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대가 지급은 평소 지급받은 임금에 전직금지의 대가가 포함돼 있거나, 금적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장기간 고용보장, 특정 분야의 전문성 함양, 승진이나 승급 등을 제공했는지를 중요하게 따진다. 그는 “근로자가 전직금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회사에게 추가의무를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가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에는 전직금지 기간을 축소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에서 이 내용을 정리해 곧 밝힐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직금지 기간은 약정마다 다르게 산정된다. 기간 산정시 고려하는 요소는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퇴직 경위 ▲근로자에 대한 대가 제공 여부 등으로 유효성 판단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 변호사는 “판례를 검토한 결과, 전직금지 기간은 대부분 1년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대가 제공여부에 따라 기간이 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약정서를 작성할 때 경쟁사 혹은 동종 유사업체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직원의 담당 직종과 주요 경쟁업체를 나열하는 것이 좋다. 법원에서는 그렇게 세세하게 명시했는데도 전직했다는 점을 고려해 전직금지 기간을 늘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모든 직원들에게 일률적으로 동일한 양식으로 징구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해당 직원의 지위, 근무기간, 접근가능 정보가 얼마나 있는지 등을 파악해서 개별적으로 약정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퇴직자가 취급했던 영업비밀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것도 필요하다. 영업비밀이라고만 기재하지 말고 퇴직자가 취급했던 업무와 회사의 어떤 이익과 연관됐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